조용히 다녀오는 마음

1부 : 멈춤의 시간들

by 별하

조용히 다녀왔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는 마음이 있다

누군가의 마음은 자리를 떠난 뒤에야 비로소 들리기도 한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다녀온 기억이 더 오래 내 안에 남아 있곤 했다.





#1. 마음에도 여행이 필요할 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녀올 수 있는 마음의 여행이 있다면, 나는 매일 그곳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문득 어디론가 조용히 가고 싶어지는 날. 커다란 결심도, 웅장한 계획도 없이, 그냥, 조용히.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아도 괜찮은 여행. 돌아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는 여행. 그런 마음의 여행이 있다면, 어쩌면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다녀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여행을 이야기할 때 대개 목적지를 먼저 떠올린다. 바다, 산, 도시, 낯선 나라. 나는 그런 공간보다 마음의 구석을 먼저 생각한다. 오래 열어두지 않았던 감정의 서랍, 말없이 덮어둔 페이지, 잊은 줄 알았던 풍경 같은 것들. 그곳을 다시 열어보는 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어떤 면에서 실제 여행보다 더 조심스럽다. 눈을 감고도 닿을 수 있는 거리이지만, 마음을 열지 않으면 영영 닿을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니까.


나는 언젠가부터 ‘여행’이라는 단어를 삶의 거대한 이벤트가 아니라, ‘마음의 숨구멍’ 같은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건 꼭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카페 구석자리에서, 햇살 드는 창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낯선 골목을 아무렇게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순간 ‘조용히 나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었는가’였지, 멋진 풍경을 찍었는지,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일 그런 여행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날은 반복되었고, 일정은 빽빽하게 채워졌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 안쪽 어딘가에서 늘 조용히 짐을 싸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아주 가볍게. 단지 멀리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어쩌면 이 조용한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한 준비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떠날 이유를 조용히 정리하고, 돌아올 타이밍을 묻지 않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를 내 마음에 조용히 남겨두는 것.


그렇게 나는 몇 번이고 마음의 여행을 다녀왔다. 글이 막힐 때, 관계가 버거울 때, 사랑이 어긋날 때, 무엇보다 나를 잃을 것 같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물러나 마음의 어느 풍경을 찾았다. 그곳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오래된 벽지처럼 빛이 바랜 감정, 촘촘하게 쌓인 단어의 기억, 아직 말이 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조금씩 나를 회복했다. 그리움처럼 나를 지켜보던 시간들,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이던 순간들. 마음의 여행이란, 결국 그런 조용한 위로를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혼자만의 여행’이란 표현은 흔하지만, 나는 더 조용히 말하고 싶다. 그것은 ‘마음만의 여행’이라고. 아무도 동행하지 않는, 그래서 더 솔직해지는 여정. 손에 쥔 지도가 아닌, 마음에 새겨진 풍경을 따라 걷는 길. 길을 잃어도 괜찮고, 돌아가는 길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여행. 조용히 다녀왔다는 말조차 필요 없는 그런 마음의 여행을, 나는 가끔 떠난다. 그리고 다녀오면, 늘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발견한다. 그런 여행은 말이 없다. 대신 말보다 더 깊은 숨결을 남긴다.




#2.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짐 하나

마음속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언제나 조용히 짐을 쌌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나조차 모르게. 여행은 가볍게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의 여행은 어쩌면 가장 무거운 짐을 싸는 일이다. 아무도 모르게 들여다보는 내면의 서랍. 그곳에 조용히 손을 뻗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여행을 떠날 때, 짐은 그 사람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필요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챙기고, 어떤 사람은 가서 사면 된다고 웃으며 텅 빈 가방을 들고 간다. 그런데 마음의 여행 앞에서는 그 기준이 조금 달라진다. 실제로 뭘 챙기느냐보다 ‘무엇을 숨기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감정, 정리하지 못한 기억, 아직 결론 나지 않은 관계. 그런 것들을 가방 안 깊숙이 밀어 넣고, 조용히 지퍼를 닫는다. 들키지 않으려고. 묻히지 않으려고.


나는 종종 그런 짐을 꾸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슬픔을 무겁게 들고 다니기보다, 그것을 단정히 개어 마음 구석에 넣어두고 떠나는 사람. 누구에게도 해명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조용하게 나를 데리고 나서는 사람.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짐이 무엇인지 직면해야 했다. 대개는 스스로조차 피하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실패, 후회, 두려움, 비교, 상처. 글을 쓰면서 나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짐을 쌌다. 그리고 매번 다짐했다. 이번 여행에는 이건 안 가져가야지. 하지만 막상 떠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그 짐을 다시 꺼내어 가방에 넣었다. 어쩌면 익숙해서였고, 어쩌면 그 짐이 없으면 내가 나 같지 않을까 봐서였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혼자만의 짐칸'이 있다. 그건 타인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부분이지만, 실제로는 너무 오래 덮어둔 탓에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핀 그런 구석이다. 그래서 더 조용히, 더 은밀하게 숨기게 된다. 나도 그랬다. 웃는 얼굴로 안부를 묻고, 잘 지낸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 짐이 나를 무겁게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사람들은 자주 ‘가볍게 사는 법’을 묻지만, 나는 차마 그 짐을 덜어낼 용기조차 갖지 못한 날이 많았다. 여행이 아니면 도무지 마주할 수 없는 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글쓰기란 ‘짐을 싸는 행위’와 닮아 있었다. 어떤 문장은 감정을 개어 넣는 것이고, 어떤 문장은 기억을 꺼내어 펼치는 일이다. 오래된 후회는 신발 밑창처럼 바닥에 넣고, 갓 피어난 감정은 흰 셔츠처럼 잘 접어 위에 올린다. 글을 쓰기 전 나는 늘 묻는다. 이번엔 무엇을 넣고 갈 것인가. 그리고 돌아와 나는 또 묻는다. 무엇을 다시 꺼내어 놓고 왔는가. 이 단순한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갔다. 어떤 짐은 이번에야말로 내려놓았고, 어떤 짐은 다시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조용히 짐을 싸도, 마음의 무게는 눈빛에 드러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다녀온 것 같아도, 늘 누군가는 눈치채곤 했다. “요즘 좀 피곤해 보여.” “생각이 많아졌네.” 아무렇지 않게 던져지는 그런 말속에 내가 조용히 싸들고 간 짐이 비쳐 있었다. 나는 처음엔 그게 불편했다. 들킨 것 같아서, 방어적으로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런데 나중엔 그 말들이 나를 붙잡아주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혼자 싸들고 가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짐을 꾸리는 일은 늘 외로운 작업이었다. 나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것을 꺼내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외로움 덕분에, 나는 진심으로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행지의 풍경이 아니라, 내 표정의 미세한 변화, 문장 하나에 담긴 감정의 깊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여전히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들. 그것들이 여행에서 돌아올 때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주 조용히 짐을 싼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그러나 언젠가, 그런 짐조차 당당히 꺼내어 보여줄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3. 머물지 못한 감정들의 안부

지나간 감정도 가끔은 안부를 묻는다. 머물지 못했지만, 사라지지도 않았기에.

떠나보낸 감정들도 때론 돌아온다. 그리고 되돌아온 감정이 때론 묻곤 한다. 그 물음 앞에서 조용히 대답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감정을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그들의 안부를 기억하는 일일테니.


문득, 오래전에 한 사람이 내게 말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네 감정은 자주 이사를 가는구나.”

그 말은 처음엔 날카롭게 들렸고, 다음엔 슬프게 들렸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설명해 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래 머무는 감정을 잘 견디지 못했다. 그건 사랑이든 후회든, 기쁨이든 상실이든 마찬가지였다. 감정은 내게 늘 갑작스럽게 찾아와, 잠깐 머물다가는 다시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아니, 내가 떠나보냈던 걸지도 모른다. 너무 깊이 머물면 감당이 안 될까 봐. 내 안의 방 한 칸을 온전히 내어주는 일이, 어쩌면 가장 두려운 일이었을까 봐.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들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떠났다고 믿었던 감정들은, 오히려 내가 가장 방심한 순간에 불쑥 찾아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 문득 본 하늘의 색, 책 속 문장 하나, 익숙한 노래의 멜로디 같은 것들이 그 감정들을 다시 데려왔다. 그 감정들은 내게 말한다.

“잘 있었니?”

“그때 나, 사실은 그런 마음이었어.”

“왜 그렇게 갑자기 나를 내보냈어?”

나는 대답할 수 없는 안부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때야 깨닫는다.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디에 조용히 묻혀 있다가, 나를 불러낸다는 것을.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안부에 정성껏 답하는 일이기도 하다. 감정을 다시 불러내어,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네는 일. “미안해, 너를 너무 빨리 보냈지.” 혹은 “고마워, 나를 그 순간 살게 해 줘서.” 머물지 못한 감정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나는 글 안에서 배웠다. 그 감정들이 머물지 못한 이유는, 내 탓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때로는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도 했고, 어떤 감정은 그저 내 삶과 리듬이 맞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감정들이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살아 있고, 내가 원할 때 다시 꺼내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감정들은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프고, 어떤 감정들은 생각보다 덤덤해져 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나로 살아 있다. 머물지 못한 감정들도 나의 일부였다. 그때는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외면했지만, 지금은 아주 조용히, 그 감정들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슬픔아, 아직도 내 안에 있니?”
“그때의 설렘아, 너는 어디쯤 남아 있니?”
그렇게 묻는 일 자체가 이미 하나의 회복이었다. 감정이 돌아올 때 나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한자리에 앉아, 감정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것을 듣듯이, 혹은 파도가 밀려왔다 다시 빠지는 것을 기다리듯이.


사람들은 감정을 오래 간직하는 것보다, 감정을 잘 보내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보내는 법보다, 감정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감정과 함께 앉아, 그 감정이 남긴 온도와 향기, 무게와 빛깔을 정리하고 싶었다. 어떤 감정은 잊히는 게 아니라, 더 정확한 언어를 만나야 비로소 지나갈 수 있으니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는 마음의 조각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문장으로 적어 내려가며, 나는 비로소 그 감정에게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살아가다 보면 다시는 느끼지 않을 줄 알았던 감정들이 다시 돌아온다. 낯선 모습으로, 혹은 같은 옷을 입은 채. 그럴 때마다 나는 그 감정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예전처럼 피하지 않는다. 잠시 머물러도 좋고, 금방 떠나도 괜찮다고. 그 감정이 내 안에 머물 자리가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나를 잘 돌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머물지 못한 감정들과도 다시 인사를 나누며, 나는 나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된다. 감정의 이름을 부르고, 그 안부를 묻는 시간. 그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4. 익숙함에 한걸음 물러날 때

모든 익숙함은 이별의 연습이기도 하다. 한 걸음 물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마음이 있다.

삶은 늘 익숙함과 변화 사이에 있다. 익숙한 것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은,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기도 한다. 그 한 걸음이 두려워도, 천천히 물러나본다. 익숙함 너머에 새로운 감각이 기다리고 있기에.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 익숙한 하루. 익숙함이란 참 묘한 감정이다. 따뜻하고 편안하면서도, 때로는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남긴다. 뭔가를 오랫동안 곁에 두고 지내다 보면, 그 존재가 있는 것도 잊게 된다. 마치 오래된 시계처럼,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제자리를 돌고 있는 듯한 감각. 그 익숙함이 때로는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감각을 흐릿하게 만드는 안개가 되기도 했다.


나는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과,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감정일 때도 있었고, 장소나 일상, 심지어는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일 때도 있었다. 매일 가는 카페의 창가 자리,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의 맛, 몇 해 째 입고 있는 코트, 매번 비슷한 시간에 찾아오는 외로움까지. 그 모든 익숙함은 내 하루를 구성하는 퍼즐 조각들이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익숙함 속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글을 쓰면서, 자주 한 걸음 물러서는 연습을 했다. 내가 반복해서 쓰는 문장의 리듬, 자주 떠오르는 단어, 비슷한 패턴으로 흐르는 문장들. 익숙함은 나를 편하게 해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하고, 다른 단어를 선택해보기도 했다. 낯선 구조로 문장을 짜보기도 하고, 평소라면 쓰지 않을 주제에 대해 적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내 글의 익숙함을 조금씩 해체해 나가는 과정은,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나는 정말 이 자리에 있어도 괜찮은가?”
“혹시, 너무 오래 멈춰 있었던 건 아닐까?”


한 걸음 물러선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익숙함은 나를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니까. 더군다나 그 익숙함이 ‘좋은 것’일수록, 나는 더욱 쉽게 자기 위안을 삼고 만다.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지’, ‘이 사람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 ‘이 길도 결국 나를 데려갈 곳이 있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를 피하고, 지금 있는 이곳을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라 명명하며.


하지만 정말 괜찮은 삶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너무 많은 감정의 이별 끝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익숙함은 나를 편하게 해주는 척하지만, 사실은 나를 무디게 만들고 있었다. 내 마음이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익숙함 속에 파묻혀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눈을 떠보니, 내가 좋아하던 일에서 아무런 떨림도 느껴지지 않았고, 함께하던 사람에게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이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라 무감각이었다.


그제야 나는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자리에서, 익숙한 말투에서, 익숙한 관계에서.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재확인이었다. 내가 정말 이곳에 있어도 좋은지, 이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인지, 내가 여전히 나를 좋아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그런 물러남은 때로는 큰 용기를 요구했다. 사람들은 늘 말하니까. “괜히 흔들지 마”, “괜찮은 걸 왜 바꾸려고 해?”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흔들림이 없이는, 나 자신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본 내 삶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였고, 당연하게 지나쳤던 감사가 새삼스레 와닿았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하루는, 사실 나를 지켜준 하루이기도 했다는 것을. 그러니 물러서서 보는 일은, 익숙함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함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더 이상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를 다시 채워주는 익숙함이라면, 나는 그곳으로 천천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갈 수 있는 익숙함이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삶의 축복이다. 하지만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야 한다. 나와서 확인해야 한다. 익숙함이 여전히 나에게 맞는 옷인지, 아니면 이제는 좀 작아진 옷인지. 우리는 변하고, 마음도 변한다. 그러니 익숙함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먼저 이별을 연습해야 한다. 손을 떼는 일이 아니라, 손을 다시 잡기 위한 준비처럼.


글을 쓰면서 나는 자주 그런 감정을 겪는다. 문장을 끝맺지 못할 때, 다시 읽고 지울 때, 다른 문장을 시도할 때. 모든 과정은 물러섬의 반복이다. 하지만 그 물러섬은 나를 후퇴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나를 밀어 올리는 힘이 된다.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고, 그 안의 나를 다시 이해하는 일. 익숙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은 곧 나를 새로이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익숙한 자리에서 잠시 물러선다. 그 자리에는 바람이 들어오고, 빛이 스며든다. 그리고 나는 그 빛 속에서 다시 나를 꺼내본다. 익숙함을 사랑하지만, 그에 잠식되지는 않는 나로 살기 위해서.





#5. 나지막한 속도로 산다는 것

삶이 빠를수록 마음은 더 쉽게 길을 잃는다. 그렇기에 나에게 맞는 속도는 언제나 조용했다.


'빠르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칭찬이 되었다.
빠르게 성공하고, 빠르게 이해하고, 빠르게 회복하는 사람. 그들은 능력 있고, 똑똑하며, 감정까지도 효율적으로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끊임없이 환영했고, 나도 오래도록 그 속에서 숨차게 달려왔다.


하지만 나는 빠른 것이 항상 나에게 맞는 속도였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억지로 빨라지려 애썼다는 사실을. 사람들보다 느린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생각이 느린 나를 감추려 애썼던 날들이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늘 나보다 한 걸음 앞에 있는 사람들을 따라가느라 숨이 찼다. 그들과 같은 속도로 살아야만 나도 괜찮은 사람일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이 내 발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분명히 무언가를 하고는 있는데, 마음이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도, 사람을 만나면서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도.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음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 내가 잃어버린 건 시간이 아니라, 감각이었음을.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단지 주변의 풍경이 아니라, 내 안에서 조용히 말 걸어오던 마음의 조각들이다. 평소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감정, 그냥 지나쳐버릴 문장, 애써 넘겼던 슬픔들. 그 모든 것이 천천히 걸을 때,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여기 있었어.’
‘지금이라도 괜찮아.’
‘조금 늦어도 돼.’


나는 그 말들을 너무 오래 듣지 않고 살았다. ‘이 정도면 괜찮아’,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라며 자신을 위로하는 대신, 마음의 느린 걸음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를 감싸주던 말들보다, 나를 다그치던 말들이 익숙했다. “더 빨리 해”, “왜 이렇게 느려”, “이건 이 타이밍에 끝내야지.” 그런 말들 속에서 나는 점점 나의 리듬을 잃어갔다.


글을 쓰면서조차, 나는 너무 많은 속도에 쫓겼다. 마감, 반응, 속도, 효율. 그 모든 단어들은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결국 나를 무디게 만들었다. 문장을 끝내야 하니까, 단락을 채워야 하니까, 마침표를 찍어야 하니까. 그 당위들 속에서 나는 진짜 내 목소리를 잃어갔다. 글이 가볍고 매끄러워질수록, 마음은 점점 텅 비어갔다.


그런 나에게 ‘나지막한 속도’는 처음엔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천천히 움직인다는 건 누군가에게 뒤처지는 것 같았고, 게으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속도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으며,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나지막한 속도는 나를 내 안으로 다시 데려다주었다.


나는 요즘, 아침을 천천히 시작한다. 블루베리를 갈아 블루베리 우유를 마시고, 햇살이 드는 창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본다.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두세 번 고개를 끄덕이고, 한 문장을 적기 위해 그저 앉아 있는 시간을 견딘다. 누군가 보기엔 비효율적일 수 있고, 느리고 답답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에게는 꼭 맞는 문장이 한 줄 남는다. 마음을 잃지 않은 문장, 나를 떠나지 않은 문장.


느리게 살아간다는 건 단지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너무 빠르게 스스로를 재촉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감정들을 스쳐버릴 수 있다. 사랑, 슬픔, 기쁨, 후회, 용기 같은 것들. 그것들은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자라난다. 기다려주지 않으면, 결국 떠나버리는 감정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말하려 한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고. 누구보다 빠르지 않아도 좋고, 모두의 속도를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그 길에서 내가 내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내가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 그 모든 것은 빠른 속도 위에서는 놓치기 쉽다. 조용히 걷고 나서야, 비로소 내 눈에 들어온다.


나지막한 속도로 산다는 건, 결국 나에게 말 걸어오는 시간이다.
“지금, 괜찮아?”
그 물음에 “응”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위해 나는 오늘도 잠시 멈추고, 다시 걷는다.


삶을 너무 빠르게 살다 보면, 마음이 따라오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나에게 맞는 속도는 언제나 조용하고 조금 느렸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진짜 나를 다시 만났고, 놓쳐왔던 감정과 문장들을 천천히 되찾을 수 있었다.




#6. 마음에도 그림자가 생길 때

환한 마음 아래엔 언제난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 외면했던 감정이 가장 먼저 나를 부른다. 우리는 늘 괜찮은 척하며 살아갔지만, 마음속 그림자는 조용히 자라난다. 그것을 마주할 때 비로소 진짜 짜나를 만날 수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마음에도 늘 어딘가 어두운 부분이 남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기쁨과 슬픔을 번갈아 겪고, 희망과 체념 사이를 오가고, 사랑과 두려움을 함께 안고 있다. 그런 감정들은 선명한 순간이 되기도 하고, 흐릿한 그림자로 스며들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 그림자를 얼마나 자주 외면하느냐다. 더 밝고 건강하고 환한 나를 보여주고 싶어 할수록, 나는 나의 어두운 구석을 더욱 외면하게 되었다.


내 마음에 그림자가 생겼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 건, 오래전 한 계절의 끝자락이었다. 이유 없이 우울한 날들이 이어지고, 평소라면 설렐 일에도 무감각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나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꺼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햇살은 여전히 밝았고, 사람들은 나를 반갑게 맞았고, 일상은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의 안쪽 어딘가는 서서히 침잠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것을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피곤한가 보다, 날씨 때문인가 보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매일을 버텼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내 마음속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졌고, 나는 점점 더 감정에서 멀어졌다. 억지로 밝은 말을 골라야 했고, 웃고 있어야 할 자리에선 괜히 더 애를 써야 했다. 감정의 결이 어긋날수록, 나는 더 피로해졌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게 되었다. 아주 평범한 저녁, 손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가 무심코 거울을 마주했는데, 그 안에 있는 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피곤한 얼굴, 건조한 눈빛, 말없이 서 있는 어깨. 그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딱히 슬픈 일도 없었는데, 이유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건 ‘지금’ 울고 있는 눈물이 아니라, 아마도 그동안 쌓여 있던 감정의 무게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거였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나의 그림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했던 감정들을 가만히 다시 불러 보았다. 오래전 꾹 눌러둔 슬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분노,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외로움들. 그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내 안 어딘가에 쌓여 있었다. 나는 그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이름 붙였다. 무작정 없애려고 하지 않고, “그래, 네가 있었구나” 하고 말을 걸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때로는 고통스러웠다. 나는 감정을 피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내게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다면, 나는 늘 “괜찮아”라고 대답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괜찮다는 말 안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숨어 있었는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괜찮다’는 말을 방패처럼 사용하곤 한다. 진짜 괜찮아서가 아니라, 복잡한 감정을 설명할 여유도, 용기도 없어서.


글을 쓰면서도 나는 그런 감정들을 많이 마주했다. 어떤 문장은 너무 솔직해서 쓰기 힘들었고, 어떤 단락은 마침표를 찍는 게 두려웠다. 그것은 단지 이야기가 끝나서가 아니라, 그 문장을 끝냄으로써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그래서 나는 자주 돌아섰고, 다른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온 건, 언제나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이었다. 그림자를 외면한 문장은 나를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마음속 그림자를 돌본다는 건, 내가 나에게 가장 먼저 정직해지는 일이라는 걸.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가끔은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되고, 이유 없이 우울한 날을 그저 그렇게 보낼 수도 있다. 그런 날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틀린 사람이 되는 것도, 나약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감정들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 나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오늘은 어떤 감정이 있었어?”


그리고 천천히 떠오르는 마음의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본다. 기쁨, 서운함, 안도감, 질투, 애틋함, 지침, 그리고 고요함. 그 모든 감정이 함께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단 하나의 감정만으로 나를 정의하지 않고, 모든 감정을 함께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에도 그림자가 생긴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태양을 향해 걷고 있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어두운 면이 있다. 중요한 건, 그 어둠까지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용기. 그 용기가 있다면, 그림자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7. 말 대신 전해지는 것들

어떤 마음은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그리고 말보다 더 오래 남는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오히려 말을 얹으면 흐려지는 마음도 있다. 언어라는 건 정교하지만 한계가 있다. 마음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인데, 말은 그것을 고정시키려는 틀에 가깝다. 그래서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온전한 전달일 때가 있다. 너무 많이 설명하면 오히려 왜곡되는 감정이 있다. 말이라는 그릇이 다 담지 못한 것들은 늘 침묵 속에 머문다.


내가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던 건,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였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 손에 따뜻한 커피를 쥐어주며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이거 네가 좋아하던 거지?”라는 짧은 말과 함께. 그 한마디보다 더 선명했던 건, 말보다 먼저 전해진 온기였다. 나는 그 순간 그 친구가 나를 얼마나 세심하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조용히 나를 응원하고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쓸 때도 그런 순간이 있다. 어떤 문장은 화려한 수식 없이도 마음에 박힌다. 문장 너머에 있는 진심이, 독자에게 먼저 가닿기 때문이다. 간혹 내 글을 읽은 이들이 “그 문장이,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았어요”라고 말해줄 때가 있다. 그런 반응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말보다 더 먼 곳까지 닿은 어떤 울림을 느낀다. 그것은 문장이 아니라 마음이 만든 일종의 여운이다.


우리는 자주 말에 의존한다. 좋은 관계를 위해, 오해를 풀기 위해, 혹은 상처를 지우기 위해 말을 건넨다. 하지만 모든 말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은 아물어가는 마음을 다시 덧나게 하고, 어떤 말은 진심을 담고 있어도 닿지 못한다. 그럴 땐, 차라리 한 발짝 물러선 침묵이 더 다정할 수 있다.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을 덜어내고 감정을 남기는 방식이다.


예전에는 누군가 울고 있으면 “왜 울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던지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그냥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울음은 이유보다 감정의 무게에 가깝다. 그 무게를 말로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건, 때로는 폭력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저 함께 있어주는 방식으로 내 마음을 전한다. 말보다 먼저 가닿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그 말이 그 사람의 하루에 어떤 식으로 닿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단 한 문장이라도 진심으로 쓴 것이라면,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말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건 단순한 위로나 응원이 아니라, 함께 견뎌주는 감정의 증명이다. 그리고 그런 문장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그냥 괜찮다”는 말을 대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 스스로 말하지 못한 마음을 내가 대신 건네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는 문장에 무게를 싣는다. 그 무게는 화려한 단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솔직했는가에서 비롯된다. 말은 꾸밀 수 있지만, 마음은 꾸미기 어렵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따뜻했던 위로는 어떤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한밤중에 도착한 짧은 메시지,
생일이 아님에도 건네받은 꽃 한 송이,
아무 말 없이 두고 간 과일 한 봉지,
그리고 눈을 마주치며 꺼낸 아주 조용한 미소.
그 모든 순간은 말이 없었지만, 누구보다 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문장도 결국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느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에 아주 조용히 스며드는 문장. 그 사람의 하루를 조금 덜 고단하게 만들어주는 문장. 그것이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말은 다 마음을 담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마음은 말없이도 전해진다. 마음이 담긴 글이 누군가의 하루에 녹아들어 마음으로 닿길 바란다. 조용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 함께 있을 수 있기를.




#8. 조용히 다녀오는 마음

마음이 가는 길은 멀고 조용하다. 다녀오는 데는 말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조용히 다녀오는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은 같은 여정을 겪은 사람이다. 걸어온 나의 마음의 길이, 당신의 걸음에 작은 등불이 되기를.


문득, 어딘가를 다녀오는 마음이란 표현에 마음이 붙들린다. 여행이든 만남이든, 혹은 어떤 기억 속이든,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다녀옴’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다녀옴은 언제나 물리적 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마음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아주 멀리까지 다녀오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그 여정을 누구에게 설명할 수도, 쉽게 보일 수도 없다. 조용히 다녀와야만 하는 마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늘 조용한 사람에게 들킨다.


나는 자주, 혼자서도 다녀올 수 있는 여행을 꿈꾼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골목, 천천히 걸어도 되는 길, 한참 앉아 있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벤치. 그런 곳은 대개 말이 없는 풍경이다. 나를 부추기거나 흔들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시간들. 그 안에서 나는 복잡하게 얽힌 마음을 한 올씩 풀어내며, 다녀오는 것이다.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 혹은 오래 전의 나로부터.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귀환.


그런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조금 더 단순한 사람이 된다. 말이 적어지고, 말보다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어떤 감정은 발화되지 않은 채 더 오래 남고, 어떤 생각은 말로 옮기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그 여정을 말보다 마음으로 기록하고 싶어진다. 글도 결국 마음을 다녀오는 과정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다.


조용히 다녀오는 마음은, 때로는 상처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프다. 그 아픔은 누구에게도 전부 설명될 수 없기에, 사람은 홀로 그 마음의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는 책을 펼치고, 또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 길을 지난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그 여정을 인정해 주는 태도다. “다녀와도 괜찮아”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이따금, 글을 쓰다 보면 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건 단지 단어를 고르느라 머뭇거리는 시간이 아니다. 내 마음속 어떤 장소를 다녀와야만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만나기 위해 나는 조용히 과거를 들여다보고, 오래된 풍경을 천천히 다시 걷는다. 마음이라는 시간 여행은 조급함과는 거리가 멀다. 돌아오더라도, 그 마음은 아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문장 하나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내가 마음으로 다녀온 그 긴 여정이, 누군가의 마음속 어떤 자리에 닿는 것. 그것은 작은 기적 같다. 마치 손 편지를 오랫동안 품었다가 전해주는 느낌이다. 그 사람이 글을 읽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알지 못하지만, 어딘가엔 분명히 닿는다는 확신만 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다녀온다. 때로는 기꺼이, 때로는 견디며.


누군가는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그렇게 매번 다녀오는 게, 너무 피곤하지 않아?” 그 말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피곤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피로가 있었고, 그렇다고 그 여정을 멈추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피로가 나를 쓰게 하고, 멈추게 하고, 다시 나를 데려가는 것 같았다. 삶이란 결국, 다녀오는 마음의 연속이 아닐까. 사람 사이에서도, 계절 사이에서도,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다녀옴’은, 아무도 모르는 날이었다. 특별한 일도, 특별한 장소도 아니었는데, 유독 가슴이 먹먹했던 하루. 그날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조용히 다녀오는 마음’을 자주 떠올리게 됐다. 사람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여행을 한다. 아주 오랫동안, 아주 천천히.


오늘도 누군가는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걷고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다녀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등에 지고. 그런 사람에게, 이 글이 말이 되지 못하더라도 마음처럼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고, 나도 조용히 다녀오는 길 위에 있다고, 언젠가 그 길 끝에서 잠시 마주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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