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1부 : 멈춤의 시간들

by 별하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말은, 그동안 쓰지 않았던 시간들을 견딘 후에야 꺼낼 수 있는 고백이다.

어떤 마음은 끝내 문장까지 닿지 못한 채,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어디서부터 이상하게도, 글을 쓰지 않으면서도 계속 쓰고 있었다.

노트 앞에 앉지 않았을 뿐, 마음속엔 매일매일 문장들이 생겨나고 사라졌다.

이제는 그 오래 멈춰 있던 마음을 다시 문장으로 옮기려 한다.

아직 흐릿한 문장이라도, 다시 쓰기 시작해 본다.





#1. 쓰지 않았던 시간의 무게.

"언제부터 안 썼지?"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다. 명확한 날짜는 없다. 처음엔 '조금 쉬어가야겠다'는 마음이었고, '조금'은 곧 '꽤 오래'가 되었다. 그 시간을 나는 쓰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늘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글을 멈춘 시간은 그냥 시간이 아니었다. 그건 어딘가에 눌러둔 감정이 쌓이고, 무게가 되어 마음 안에 가라앉는 시간이었다. 일상 속 대화 하나에도 문장이 걸려 있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쓰고 싶은 장면이 스쳐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록하지 않은 기록들'을 마음속에 고이 묻었다.


그런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다시 쓰는 일은 조금씩 멀어졌다. 무언가를 꺼낸다는 것은, 그에 앞서 그만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글을 쓰는 일은 기교보다 진심이 먼저라, 도무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손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해받고 싶지 않으면서도, 이해되지 않기를 두려워했다.


가끔은 '글을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쓸 수 없다는 감각이 쌓이자, 쓰지 않기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어진 것이다. '이제는 다른 길을 가도 괜찮지 않을까', '글이 아니어도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의 생각들은 조용히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질문들이 나를 다시 이 자리로 데려왔다.


쓸 수 없었던 시간에도, 누군가의 한 문장을 읽으며 눈물이 났고 이름 모를 글귀 앞에서 숨이 잠시 멎었다. 그런 순간들을 지나며 알게 됐다. '나는 여전히 문장에 기대 살아가고 있구나"


다시 쓰기로 마음먹는 데에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어쩌면 모든 계기는 이미 지나간 무수한 날들에 있었다. 말이 되지 않던 마음들이 천천히 단어를 찾아가고, 그 단어들이 문장이 되는 속도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그러니 다시 써보기로 했다. 못 쓴다고 믿어왔던 마음의 문을 다시 두드려 보기로.





#2. 문장은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다.

어떤 문장은 내가 찾지 않아도, 먼저 나를 찾는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처럼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두드린다. "이제 괜찮아. 천천히 시작해도 돼" 그런 위로를 말없이 건네며, 다시 글 앞에 앉게 만든다.


다시 쓰기 시작한 날의 나는 조심스러웠다. 손에 쥔 펜이 낯설었고, 키보드 소리도 어색하게 들렸다. 뭘 쓰고 싶은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도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 말이나, 아무 생각이나 써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쓰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다시 살아났다.


무언가를 오래 쉬고 나면, 그동안의 감각을 잃어버린 듯한 두려움이 따라온다. 특히 글을 쓰는 일은 '익숙함'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에 의해 만들어지기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장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쓰는 사람이고, 어쩌면 쓰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 본성 같은 것이 아닐까.'


쓰지 않았던 시간 동안에도, 내 안에는 계속 글이 자라고 있었다. 일기처럼 적지 않았을 뿐, 마음속에서 서자라던 언어들은 다시 문장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조용히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문장이 먼저 나를 데리러 왔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고 나서,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왜 그토록 오래 쓰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글을 멈춘 이유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시간이 나에게 어떤 말을 걸었는지, 어떤 감정을 남겼는지를 알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을 멈췄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화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대화가 불가능해진 순간, 나는 문장과도 멀어졌다. 스스로를 외면하는 동안, 글도 나를 피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시간들 덕분에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쓰기 위해선, 무언가를 겪어야 하니까. 말로 하지 못한 감정이 충분히 쌓인 다음에서야, 비로소 단어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가끔 독자들이 내게 묻는다.

"글을 쓰는 데에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요?"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사라져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의 여유요"


글은 애써 잡으려고 할수록 더 멀어진다. 억지로 써보려는 날에는 문장이 자꾸 틀에 갇히고, 마음은 자꾸 공허해진다. 하지만 멀리 돌아가더라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야 알았다.


한대 나는 계속 써야만 진짜 작가이고, 멈추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 안의 조급함과 불안이 만든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멈췄던 시간도, 썼던 시간만큼이나 귀한 기록이었다는 것을. 돌아오지 못할 거라 여겼던 마음도, 언젠가는 문장을 따라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어느 날, 오랜만에 쓰기 시작한 문장을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그 친구는 내게 조용히 말했다.

"너는 여전히 글 속에서 너답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한 문장이, 내가 글로 돌아와야 했던 모든 이유였기 때문이다.


다시 쓰기 시작한다는 건, 예전처럼 쓰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전보다 더 조심스럽고, 더 느리게, 더 깊이 쓰겠다는 뜻이다. 더 이상 '잘 쓰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장은 언젠가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는다. 그걸 나는 이제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작게 중얼거린다.

"다시 쓰기 시작합시다."

그 말속에는 그동안 쓰지 않았던 모든 날들이 함께 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한 문장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문장을 살아간다.





#3. 천천히 다시, 작게 시작하기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때, 우리는 본능처럼 과거의 속도를 따라가려 한다. 예전에 몇 장을 썼었는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집중했는지, 얼마나 빨리 완성했는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기억이 오늘을 조용히 짓누른다.


하지만 끝내 알게 된 것은 모든 시작은 처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해 보일지라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고, 지금의 마음과 그때의 마음은 완전히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쓴다. "천천히 다시, 작게 시작합니다."


이 문장은 마치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그 속에는 거창한 목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지도 없다. 그저 오래 굳었던 몸을 푸는 스트레칭처럼, 오래 잠들었던 감각을 깨우는 습작처럼, 조심스러운 출발이 있을 뿐이다.


다시 쓰기 시작한 날들에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매일 한 문단씩 써야지.', '일주일에 한 한편은 완성해야지'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오래 쓸 수 있었고, 또 쓰고 싶어질 수도 있었다.


처음엔 하루 한 줄이었다.

'비가 내린다. 마당에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그 속에 하늘이 비친다.'

그 문장이 오늘 내 기분을 설명하는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단순한 문장이 내 안에서 오래 울렸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작고 얇은 마음이었구나.'라며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내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다음 날, 두 문장을 썼다. 그다음 주에는 네 문장이 되었다. 그렇게 글은 문장 하나씩 늘어났고, 나는 점점 나 자신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그건 다 지워진 도화지 앞에 다시 선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잊고 다시 배운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전에 써놓았던 글을 다시 읽으며 나는 자주 멈춰 선다. 그때는 왜 이런 문장을 썼을까. 왜 그렇게 썼어야 했을까. 그리고 지금이라면 이 말을 어떻게 다르게 적을 수 있을까. 그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자꾸만 '이전과 다른 방식'에 대한 유혹을 던진다.


하지만 그 유혹을 따라가다 보면, 또다시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내가 다시 쓰기로 한 이유는 '이전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 쓰기 위해서'였으니까.'


다시 쓰기 위해서는 먼저 멈춰야 했다. 그 멈춤 속에서 많은 것을 지켜봤다. 다른 사람들의 글, 소리 없이 번져가는 계절의 공기, 내 주변을 지나가는 이야기들. 모두가 바쁘게 흘러가는 동안, 나만 멈춰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멈춤 덕분에 나는 더 많은 걸 본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그걸 알게 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글을 쓰지 않던 시간에도, 여전히 나는 쓰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렇다면 내가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그때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천천히 다시 시작하는 마음. 작게 적어 내려가도, 깊게 가닿는 말들.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의 체온을 기록하는 일이다. 체온은 단어로는 명확히 측정할 수 없다. 하지만 느껴진다. 문장의 리듬, 호흡, 공백, 심지어 오타마저도 그 안엔 그 순간의 체온이 묻어 있다.


나는 한동안 내 체온을 잃었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하거나, 안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체온은 잃는 것이 아니라, 단지 느껴지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시 손끝을 움직인다. 내 체온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 내 마음이 내 안에 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글을 다시 쓰는 일은 하나의 작업이자, 하나의 회복이다. 그것은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다시 작은 균형을 잡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을 더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내일은 오늘보다 덜 기대하며 그 대신 오늘의 문장을 온전히 적는다.


하루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된 이 글은 지금, 나를 다시 한 문장으로 이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기 위해,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알기 위해.


문장은 결국, 나를 나에게로 이끌어주는 가장 정직한 한길이라는 걸, 나는 매일 한 줄씩 다시 배워가는 중이다.





#4. 글을 멈춘 시간도 글이었다.

어떤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상에 앉지도 않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원고 파일은커녕, 메모장조차 열지 않은 채 하루가 지났다. 아니, 몇 날 며칠이 흘렀다. 아침이면 마지못해 눈을 뜨고, 창밖을 보며 또 하루를 흘려보낼 준비를 했다. 글이 내 곁을 떠났다는 느낌은 무거웠고, 그 무게는 내 몸을 바닥에 붙들어 두었다. 그런 날이 이어졌다. ‘이제는 진짜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는 글을 멈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멈췄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날들에도, 나는 아주 조용히 쓰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문장으로 옮기지 않았을 뿐, 마음 안에서는 매일 조용히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아침의 바람, 물 잔을 들다 흘린 한 방울의 물,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친구의 웃음, 잠들기 전 문득 떠오른 누군가의 말투.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작은 파동처럼 번지고 있었다.


글을 멈춘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면의 소음이 더 또렷하게 들리던 때였다. “왜 못 쓰고 있을까?” “이제 정말 못 쓰게 되는 걸까?” “이걸로 끝일까?” 같은 질문들이 물처럼 고이고, 침묵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아주 작고 미세한 이야기가 자라고 있었다. 비록 나조차 그 성장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마음의 밑바닥에서 말이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무기력했고, 초조했고, 부끄러웠다. 한참을 쓰지 못한 뒤 누군가 “요즘은 글 안 써요?” 하고 물으면,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좀 쉬고 있어요.” 사실은 쉬는 게 아니었다. 쉬는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조차 나를 속이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날들의 그 무게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글을 멈췄다는 자각은 쓰는 사람에게 큰 패배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쉼표가 아니라 숨표였다. 숨 고르듯 멈춘 시간. 마치 긴 문장을 쓰기 위해 한 문장쯤은 비워둔 것처럼, 그 멈춤은 내게 필요했던 텅 빈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침묵의 시간은 글의 뿌리가 자라던 토양이었다.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그곳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시간 덕분에 다시 쓸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쓰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공백이 있었기에 이 문장이 가능해졌고, 그 멈춤의 체념이 있었기에 다시 붙잡은 단어들의 떨림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글을 멈춘 시간도 글이었다. 기록되지 않았을 뿐, 분명히 내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글을 쓴 시간’만을 성과라고 여겨왔는지도 모른다. 출력된 페이지 수, 저장된 파일의 용량, 눈에 보이는 결과물만을 기준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다. 쓰지 않았던 시간도 내 글이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믿었던 날들에도, 나는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노라고.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이 문장이 가능했다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글을 멈춘 채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의욕도, 말도, 방향도 없이 그저 숨만 쉬며 버티는 중일지도.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다. 당신은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이다. 그저 아직, 문장 바깥에 있을 뿐.





#5. 다시 쓰는 일의 두려움에 대하여

한 문장을 고르기까지 오래도 망설였다. 글을 쓴다는 건 늘 그러하다. ‘쓸 수 없다’는 두려움은 글을 잘 쓰지 못할까 봐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써놓고도 부끄러워서, 심지어는 진심을 다했음에도 그 누구도 읽지 않을까 봐 무서워서 생긴다. ‘글을 쓴다’는 것이 단순히 문장을 엮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에 나를 들키는 일이라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주 체감한다.


다시 쓰기 시작하는 나날의 처음은, 조용한 비명을 질러야 하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타자기에 손을 얹기 전에, 노트북을 열기 전에, 펜을 들기 전에 나는 얼마나 많은 실패의 문장을 떠올려야 했던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끝냈던 날, 그걸 ‘성공’이라 부르긴 어렵지만, 어쨌든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던 그날 이후,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 작은 공포를 안고 있었다. ‘다시는 못 쓸 수도 있다’는, ‘그만큼의 마음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두려움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막막했다. 어떤 공포는 정체가 뚜렷할 때 맞서기가 오히려 쉽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방향을 모르기에 피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독자의 반응도, 원고 마감일도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의 조건이었다. 정말 두려웠던 건 나 자신이었다. 다시 쓸 수 있을까? 다시 쓰고 싶기는 한 걸까? 나는, 정말 작가인가?


‘작가의 정체성’이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은 매일매일의 ‘작은 반복’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글을 쓰지 않는 날, 나는 내가 작가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건 직업을 부정당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글과의 끈을 놓은 채 살아가는 자신이 낯설어서다. 글을 쓰지 않으면, 나는 내가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나 아닌 상태’가 너무 익숙해질 때도 있다.


‘잠시 쉬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과연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자라난다. 처음엔 조그만 씨앗처럼 보였던 의문은, 점점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치고, 결국엔 온 마음을 덮어버린다. 그때쯤이면, 단 한 문장조차도 두렵다.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아닌, 마음이 주춤거린다. 왜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걸까.


돌아보면, 이전의 글쓰기 역시 매번 두려웠다. 처음 책을 출간할 때, 처음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처음 어떤 문장을 공개적으로 내놓았을 때. 항상 긴장했고, 항상 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 있었던 건, 두려움보다 ‘쓰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컸기 때문이다. 그 아주 작은 차이가 나를 계속 쓰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겨내는 것이다. 그날그날 다시.


내게 글쓰기란, 결국 용기의 다른 말이다. 기꺼이 내 마음을 펼쳐 보이겠다는 용기.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을 세상에 내어놓는 용기. 누군가의 비웃음을 감수할 각오.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써야만 하는 내 마음에 대한 책임. 그 모든 것을 안고도 다시 책상을 마주 보는 것. 그게 글쓰기다.


그러니 다시 쓰기 시작한다는 건, 단지 ‘창작을 재개한다’는 말이 아니다.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서겠다는 선언이고, 여전히 살아 있겠다는 몸짓이다. 그런 마음으로 책상에 앉는다. 매일이 첫날 같다. 언제나 서툴다. 또다시 두렵다. 그런데, 그러니까 더욱 진심이다.


누군가 물었다. “그렇게까지 힘들면 왜 계속 써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땐.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들어도 안 쓸 수 없으니까요.”


그 대답은 글 쓰는 사람이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문 같기도 하다. 내 마음이 글을 향해 자꾸만 움직이는 걸 보면, 나는 아마도 다시 무너질 것이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쉼표를 지나, 문장으로 향할 것이다.





#6. 내 문장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다

작가는 늘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자리를 떠났다고 해서 문장도 함께 자리를 비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떠나 있는 동안에도 문장은 그 자리에 남아, 돌아올 사람을 기다린다. 그 자리는 원래 그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언젠가 다시 돌아와야 할 자리, 어떤 말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리. 나는 지금, 그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떤 날들은 물 흐르듯 지나갔고, 어떤 날들은 돌덩이처럼 무겁게 가슴에 박혔다. 마음이 쉬었다는 말은 사실 반쯤만 진실이다. 쉬는 동안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제 다시 쓸 수 있을까?' '그 문장의 끝에서 나는 여전히 나일까?' '멈춘 마음은 어디까지가 쉼이고, 어디부터가 두려움일까?'


그 모든 물음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문장. 나의 문장. 타인의 말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 언어의 자리를 다시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그 길에는 목적지도, 표지도 없었다. 오히려 불확실하고, 낯설고, 초조했다. 내가 한때 그렇게도 익숙했던 나만의 리듬과 호흡조차도 다시 배워야 하는 듯했다. 문장에 돌아간다는 건, 단순히 키보드를 두드린다는 뜻이 아니었다. 마음을 일으키고, 감각을 다시 세우며, 흐름을 받아들이는 일. 그 모든 과정을 마치 처음처럼 다시 살아내야만 했다.


한동안은 내가 쓴 문장을 읽는 것조차 두려웠다. 지나간 감정이 낯설게 느껴졌고, 그 감정을 말로 남긴 나 자신이 어딘지 멀게 느껴졌다. 어떤 문장은 너무 솔직했고, 어떤 문장은 너무 조심스러웠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다시 물어야 했다. 그 시절, 그 마음으로 쓴 문장을 다시 마주하는 건 일종의 자기 검열 같았다. '이건 정말 나였어?'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했고, '왜 이렇게 썼을까?'라는 의심 앞에서 괜히 민망해졌다. 그러다 문득, 그런 질문조차 내가 다시 문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늘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으니까. 어설프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정직하게.


다시 문장을 써보자고 마음먹은 날, 나는 낯선 문서를 하나 열고 커서를 깜박이며 앉아 있었다. 단 한 줄도 써 내려가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나는 오래전 써두었던 문장을 하나 복사해 그 문서에 붙여 넣었다. 이상하게도 그 문장 하나가 시작이었다. 다시 쓰는 글이 아니라, 다시 만나는 나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바라보며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생각했다. 연결될 수 있을까? 감정은 여전히 이어질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나는 매일 조금씩 문장을 썼다. 때로는 겨우 한 줄, 때로는 한 문단.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문장이 나의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내가 그 문장에 마음을 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몇 줄이 쌓였고, 몇 개의 페이지가 생겼다. 다시 글을 쓰는 건, 다시 나를 쓰는 일이기도 했다. 멈췄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다는 걸, 문장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자리에서 나는 문장을 새롭게 본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결이 보이고, 흘러간 감정의 여운이 다시 읽힌다. 문장 하나에 담긴 마음의 농도, 단어 사이의 숨결, 그것들이 더없이 또렷해졌다. 쉬는 동안 내가 잃은 줄 알았던 감각들은, 어쩌면 더 깊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문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돌아오는 법을 잊지 않았다.


문장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시 채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비워두었던 마음을 조금씩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 마음이 다시 문장이 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의 자리로 돌아왔음을 느낀다. 이제는 조금씩,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





#7. 문장이 내게 돌아오는 순간

어느 날이었다. 특별히 기쁜 일도 없었고, 슬픈 일도 없었다. 그저 그런 오후였고, 창문 너머 빛이 고르게 책상 위를 덮었다. 나는 늘 그렇듯 노트북 앞에 앉아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자꾸 창밖의 고요가 신경 쓰였다.


그리고 그 조용한 틈새로 아주 오래전 써둔 문장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마음이 부서질 때마다, 나는 가장 조용한 언어를 찾는다.”

아, 이건 내가 쓴 문장이었다. 언젠가 누군가를 떠나보낸 밤, 내 마음을 수습하지 못하고 쏟아내듯 남긴 글귀. 그게 다시 돌아온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치 흘려보낸 편지를 세월이 거꾸로 배달해 온 것처럼.

생각해 보면 글을 쓴다는 일은 그런 순간들의 축적이다.


내가 썼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문장 하나가,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를 일으키는 순간. 그건 어떤 위로보다 강력했고, 어떤 충고보다 정확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스스로 건넨 말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그 문장을 노트북 화면에 띄워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네가 그때 그렇게 썼다면, 지금도 그 마음은 내 안에 어딘가 살아 있을 거야.’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을 쓰는 마음은 쉽게 식기도 하지만, 단 하나의 문장이 다시 불씨가 되어 되살아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오늘 내가 발견한 나의 문장처럼, 언젠가 당신의 문장도 당신에게 돌아가길.




#8. 다시, 이야기로 가는 길목에서

글을 멈췄던 시절의 나는 한동안 사람이 아닌 언어를 그리워했다. 누군가의 목소리보다, 문장 하나가 더 가까웠다. 말보다 문장이 오래 남고, 기억보다 문장이 더 선명했다. 그 사실은 내게 다정한 위로가 되기도 했고, 뾰족한 현실이 되기도 했다.


“언제 다시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매일 아침처럼 나를 깨웠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매일, 쓰지 못한 채로 하루를 끝내고, 그래도 언젠가 쓰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이곳까지 왔다.

쓰지 못한 날들의 껍질을 벗기고 나면, 그 안에는 언제나 조용히 자라고 있던 문장이 있다. 보이지 않을 뿐, 문장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을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이야기는 언제나 어떤 갈피에서 시작된다. 때로는 기억 속 오래된 냄새에서, 때로는 누군가의 한 마디에서, 어쩌면 오늘처럼 아무 일 없는 고요 속에서도.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다시 써볼까?” 하는 마음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그 마음에 귀 기울인다. 글이 멈춘 곳에서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머문 자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쓰고 있고, 누군가는 쓰지 못하고 있다. 그 모든 시간이 글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나도, 당신도, 다시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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