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래 쓰는 마음

1부 : 멈춤의 시간들

by 별하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 쓰는 사람보다, 오래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때로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 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단어,
조금 더 부드럽게 읽히는 문장.
모두 천천히 쓰는 마음에서 나오기에

지금, 누군가에게는
천천히 써야만 나올 수 있는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뒤처진 것은 아니다. 그건 단지, 오래 남을 문장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함께 천천히, 오래 쓰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1. 글이 내게로 오는 속도


아침마다 책상 앞에 앉는다. 습관처럼, 버릇처럼. 창문을 활짝 열면 아직 식지 않은 새벽 공기가 얼굴을 쓰다듬는다. 커피를 내리고, 수첩을 펼치고, 어제 쓰다 만 문장들을 다시 읽는다. 마치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오던 이야기가 잠시 멈춘 것처럼, 문장 끝에서 텅 빈 여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앉아도, 어제와 똑같은 문장은 쓰이지 않는다. 매일의 글이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 이유다.

나는 종종, 글이 오는 속도를 생각한다. 어떤 날은 쏟아져 들어오는 문장들을 따라가기 바쁘고, 어떤 날은 아무 말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럴 땐 내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빈 잉크병처럼.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금 잉크는 천천히 채워진다. 그건 결코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조용히, 아주 느릿하게, 내 안에 쌓인다. 천천히 오래 쓰는 마음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나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좋은 문장을 꿈꾸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 오래도록,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루에 한 줄밖에 못 써도 괜찮다. 다만 그 한 줄을 쓰기 위해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쓰지 못한 시간도 결국 글의 일부가 된다는 걸, 나는 조금 늦게야 깨달았다.

누군가는 속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오늘은 몇 자를 썼는지, 이번 달은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 출판은 언제 할 수 있을지. 나도 그 조급함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래 쓰겠다는 마음은 속도보다 방향을 택하게 한다. 멀리 가겠다는 마음은, 잠깐 멈추고 쉬는 시간마저 품게 만든다. 결국은 그 모든 쉼표들이 문장을 이룬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단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으며. 그러다 문장이 나를 찾아올 때, 나는 그것을 반갑게 맞이한다. 아니,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기다린다. 천천히 오래 쓰는 마음으로.




2. 묻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


어떤 날은 문장 하나를 쓰는 데 반나절이 걸린다. 다른 날은 단어 몇 개조차 건지지 못한 채, 그대로 하루가 저물기도 한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왜 이렇게 써지지 않을까? 나는 정말 작가가 맞을까? 이제는 다 끝난 게 아닐까?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끝없는 물음표들 속에서 마음은 무거워진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글을 써보니 알게 되었다. 그 질문들이, 오히려 글을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글이 써지지 않는 날, 나는 질문을 멈추기로 했다. 이유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저 조용히, 내가 돌아올 자리 하나만 남겨두기로 했다. 글이 나를 떠나 있다면, 언젠가 다시 돌아올 테니까. 나는 그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그치지도 않고, 설명을 강요하지도 않고. 마치 떠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이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힘이 든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결과도 없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감각이 사람을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가장 깊은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가장 단단한 문장도 긴 침묵에서 태어난다. 나는 그것을 안다. 무수한 무의미한 시간들이 결국은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예전에는 멈춰 있는 시간이 허무했다.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느낌.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단단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글은 언제나 흐르지 않는다. 때로는 고이고, 썩고, 그곳에서 다시금 생명이 자란다. 침묵은 썩지 않는다. 침묵은 흙이 되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품을 자양분이 된다. 그러니 묻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매일 책상 앞에 앉는다. 글이 오지 않아도.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도. 내 마음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그 기다림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다. 나와 글 사이의 신뢰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 그리고 그때를 위해 오늘도 나를 이 자리에 두는 것. 나는 이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천천히 오래 쓰는 사람은 결국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3. 글이 되지 않는 날에도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단 한 문장도 써지지 않는 날이 있다. 생각은 떠오르는데 글이 되지 않고, 마음은 복잡한데 문장이 되지 않는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말들은 형체를 갖추지 못한 채 흩어지고, 키보드 위에 올려둔 손끝은 무기력하게 멈춰 있다. 이런 날엔 글이 나를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나를 잊고 다른 사람에게 가버린 듯, 나는 문장에게서도 거절당한 것만 같다.

예전의 나는 이런 날을 무서워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존재가 흔들렸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았고, 나는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무능할까, 왜 아무것도 쓸 수 없을까, 나에게 글은 끝난 걸까. 그렇게 매일을 자책으로 보냈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이 상태가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다시는 문장에 닿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글이 되지 않는 날에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걸, 오래 걸려서야 깨달았다.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건, 글을 놓고 오래 기다려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글을 기다리는 시간까지도 끌어안는 일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무얼 두려워하고 있지, 나는 지금 어디쯤을 걷고 있지. 어쩌면 그 하루는 글을 쓰지 못했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들이 결국 나중에 더 깊은 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글이 멀어진 날은, 오히려 나와 더 가까워지는 날이었다.

어느 날은, 다 쓰고 나서야 안다. 그 하루 동안 아무것도 못 쓴 줄 알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글로 옮길 수 없었던 것들이 말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그 모든 ‘글이 되지 않았던’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글이 가능하다는 걸. 그렇게 지나온 모든 멈춤의 순간들이 다시금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걸.

그 사실을 깨닫고부터 나는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도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억지로 문장을 끌어내려고 애쓰지 않고, 조용히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로 했다.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하루를 마치더라도, 그 하루가 글을 위한 시간이었음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천천히 오래 쓰는 마음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배우는 중이다.




4. 익숙해질 때까지 오래 걷기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일이 늘 설렘으로 가득할 줄 알았다. 문장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는 기쁨,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단어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경이로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모든 것이 마치 오래도록 꿈꾸던 세계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오래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일은, 설렘과 동시에 낯설고, 반복되고, 고요하고,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일이라는 것을.

글쓰기란 결국 익숙해지는 일이다. 자기 생각을, 자기 언어를, 자기 리듬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매일 조금씩 나를 쓰는 일이다. 나의 감정, 나의 기억, 나의 문장. 그렇게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내가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일이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번에 얻을 수 있는 통찰도 아니고, 단숨에 다다를 수 있는 고지 같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오래, 낯설고도 익숙한 길을 천천히 걷는 일이다.

이런 생각은 내가 걷는 길에서 왔다. 나는 걷는 일을 좋아한다. 아무 목적 없이 그저 걸을 수 있는 시간.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거리. 그 속에서 나는 나에게 집중한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잡념들이 걸음마다 조금씩 정리되고, 마음속 응어리들이 몸의 움직임에 따라 조용히 풀려나간다. 처음에는 걷는 게 버겁지만, 어느 순간 내 발걸음과 호흡이 일치하기 시작하면 걷는 일은 하나의 흐름이 된다. 글쓰기도 그렇다. 처음에는 내 마음이 내 문장에 익숙하지 않지만, 오래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과 문장이 하나의 리듬을 갖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매끄럽지 않다. 어떤 날은 내 문장이 너무 거칠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내가 쓰는 글이 나를 전혀 닮지 않은 것 같아 낯설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간다. 한 문장, 한 단어, 하나의 마음. 그렇게 가장 작은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 반복의 시간을 통해 나는 조금씩 내 문장에 익숙해지고, 내 글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오래 걷는 사람만이 풍경을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오래 쓰는 사람만이 자기 언어를 갖게 된다.

이 과정은 작고 느리다. 한 줄이 마음에 들기까지 수십 번을 고치고, 한 단어를 선택하기까지 무수한 망설임을 겪는다. 때로는 내가 쓰는 이 말이 아무런 의미도 없을까 두렵고,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왜 쓰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쓰는 건, 그 끝에 닿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붙잡아주었을 때, 내가 내 마음을 정확히 알아보았을 때, 글은 다시 나를 걸어가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걷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생각과 감정 사이를, 익숙함과 낯섦 사이를. 그리고 걷는 이 길이 비록 느리고 멀어 보여도, 이 길 끝 어딘가에는 내가 닿고 싶은 어떤 문장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지금 그 문장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천천히, 오래 걸어가는 중이다.




5. 작은 문장 하나의 무게


글을 쓰면서 문장 하나에 이토록 오래 머물 줄은 몰랐다.
한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고, 그러다 결국 처음 썼던 그 문장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단어 하나에 매달려 며칠을 보내는 날도 있다.
그럴 땐 참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글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작은 문장 하나에 담긴 무게는 때로 나 자신보다 더 크다.
그 속에는 지금껏 내가 살아온 시간, 마주한 감정, 꾹 삼킨 말들이 눌려 있다.

문장이란 결국 어떤 마음의 단면이다.
나는 무언가를 겪고, 그 겪음을 내 언어로 조심스럽게 길어 올린다.
그 길어 올린 것들이 뚝뚝 떨어져, 종이 위에 머문다.
그리고 그걸 다시 읽는다.
때로는 너무 날것이라 창피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라 덜어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순간들을 통해 문장의 무게를 배운다.
그 문장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 때조차, 그것이 내가 진짜로 생각하고 있던 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지운다.
다시 썼던 문장을 지우고, 덧칠하고, 다듬는다.
그 반복 속에서, 어떤 문장들은 살아남는다.
그 문장들은, 다시 읽을 때마다 나를 멈추게 한다.
아무 장식도 없고, 소리도 크지 않지만, 분명한 울림이 있다. 그건 아마도, 그 문장이 내가 가장 오래 고민했던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 문장을 썼을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문장 뒤에 있는 시간을 읽으려 한다.
그가 그 단어를 고르기까지 멈춰 섰던 시간, 쓰다 지우다 했던 반복의 시간, 망설이던 손끝의 흔들림.
그 모든 것이 문장에 스며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그래서 문장을 가볍게 쓰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단순히 ‘좋아한다’고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를 기억한다. 그 감정을 진짜로 느꼈는지, 혹시 누군가를 닮고 싶어서 흉내 낸 건 아닌지, 나도 모르게 편한 길로 가려 한 건 아닌지. 그 모든 물음 끝에야 비로소 한 문장을 남긴다.
그리고 그 문장은, 나의 진심 한 덩이를 가진 채 존재한다.

누군가는 글을 빠르게 쓴다. 재능 있고 감각 있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나는 초조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나의 속도로 쓰는 법을 택했다.
내가 천천히 쓰는 이유는, 나에게 문장이란 그런 것이다.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마음, 그래서 오래 들여다보고 꺼내는 마음. 그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게 글쓰기는 마음의 형상화를 넘어서, 마음의 견딤이다. 견디고, 견뎌서 쓴 문장은 단단하다. 내가 가장 약할 때 꺼낸 문장도, 다 쓰고 나면 어느새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문장은,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읽는 사람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문장을 오래 바라본다.
단어 하나를 수십 번 되뇌고, 문장의 끝을 말없이 지켜본다. 이 문장이 내게 묻는다. 정말 이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다시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장과 내가 딱 맞닿는 지점이 생긴다. 그때 나는 멈춘다. 그리고 그 문장을 남긴다.

세상에 그리 대단한 문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문장은, 누군가의 시간을 붙잡는다. 어떤 문장은, 내 삶의 고비에 스스로 건네는 말이 된다. 그럴 수 있다면, 그 문장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한 문장을 위해 하루를 건다.




6. 마음이 오래 머무는 자리


나는 종종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 멈추어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이야기가 되기 전의 순간들, 아직 언어가 붙지 않은 감정들,
그 조용한 자리에 나의 마음이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를 되짚는다.
그 자리는 쓰인 문장보다 더 길고, 더 깊고, 더 정직한 시간이다.
말이 되기 전의 마음은, 언제나 가장 진짜였으니까.

글이란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단박에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겨울을 견딘 땅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그 마음은 충분히 어둡고 충분히 고요한 시간 속에서 자란다.
나는 그 마음이 자라도록 기다리는 사람이다.

어떤 글은 감정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쓸 수 있다.
그 감정의 열기가 식고, 눈물이 마르고,
혼자 중얼거리던 말들이 가라앉은 뒤에야 나는 비로소 펜을 든다.
왜냐면 그 감정의 중심에 있을 때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까.
말은 마음이 한 번 가라앉고 나서야, 천천히 길을 찾는다.

기억을 떠올릴 때 나는 되도록 천천히 걷는다.
마치 오랜만에 찾은 동네 골목을 걷듯,
발자국을 조심히 옮기며, 오래 머물렀던 자리에 눈길을 준다.
그리고 그 마음이 머문 자리를 지나치지 않도록,
나는 나의 감정을 한 번 더 돌아본다.
그 자리에 어떤 슬픔이 있었고, 어떤 기쁨이 있었는지를.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과의 관계도,
시간이 얼마나 오래 마음에 머물렀는가를 기준으로 바라보게 됐다.
순간의 대화나 사건보다도,
그 일이 내 마음 안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 있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오래도록 떠오르는 얼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말 한마디.
그런 것들이 결국 나를 글 앞으로 데려온다.

마음이 오래 머문 자리는 쉽게 떠나지 않는다.
때로는 그 감정을 애써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같은 마음이 되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나는 안다. 아, 이건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그리고 나는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그 자리에 머물던 나의 마음과 마주 앉아,
이제는 조금 더 다정한 말로 그 마음을 불러낸다.

글이 되기 전의 마음은 미완성이다.
하지만 그 미완의 마음은 때로 훨씬 더 정직하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 표현으로는 부족한 떨림.
그 모든 것들이, 오래 머문 자리에 고여 있다.
나는 그 고인 마음에 손을 대며, 천천히 단어를 찾는다.
조심스레 문장을 만들어가며, 그 마음에 모양을 입힌다.

그 마음이 말이 되었을 때, 나는 조금씩 비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씩 채워지기도 한다.
쓴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잃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일.
내가 먼저 말하고 나면, 누군가가 그 마음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다른 사람의 언어로 다시 피어난다.

마음이 오래 머문 자리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그 자리로 돌아가 글을 쓴다.
그 자리에 다녀온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져서 돌아오고,
그 마음이 다시 문장을 낳는다.
문장은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돌아보고, 멈추고, 다시 바라보며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전에 나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듣기 위해서.
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을 알아야,
그 마음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으니까.
그 손끝이 닿은 자리에 비로소 한 문장이 놓인다.
그 문장은 내가 가장 오래 바라본 자리에서 나온 문장이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7. 지워도 남는 문장들


문장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그 문장을 얼마나 지웠는가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 지움은 실패가 아니라 선택이다.
지운다는 것은 결국 나를 더 명확히 알아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문장을 걷어내고,
말 아닌 말들을 걷어내다 보면,
그제야 마침내 남는 문장이 있다.

나는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수십 번의 지움 끝에 도달한다.
그건 결코 손이 느려서도, 확신이 없어서도 아니다.
도리어 그 반대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것이 아닐 때는 용감하게 삭제한다.
삭제 버튼 하나에
나의 몇 시간이 사라질지라도,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진짜 문장이 남는다.

지운다는 것은 감정을 덜어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의 중심만 남긴다는 말이다.
지우고 또 지우다 보면,
내가 정말로 견디지 못했던 말,
도저히 꺼내지 않고는 안 될 말,
그 단단한 알갱이만 남는다.
그게 바로 ‘지워도 남는 문장’이다.

이따금 내 글을 읽는 이들이 말한다.
“이 문장은 정말 오래 남았어요.”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문장이 몇 번의 지움 끝에 태어났는지를 떠올린다.
처음부터 그렇게 단단했던 문장은 없다.
애초에 단단한 문장은
쓰는 사람의 흔들림과 무너짐에서 온다.
지움은 나를 꺾는 과정이고,
그 꺾임 위에 새로 피어난 문장이
진짜 나다운 말을 품는다.

지운다는 건 포기와는 다르다.
포기는 가능성을 닫는 일이지만,
지움은 가능성을 더듬는 일이다.
내가 쓰고자 하는 말이 이게 맞는지
한 문장, 한 단어씩 다시 더듬어보는 일.
그러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던 말이
어느 날 불쑥 올라온다.
그건 결코 계산하거나 계획해서 꺼낼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지움은 그 말을 마주하기 위한 고요한 터닝이다.

나는 아직도 어떤 문장을 끝내 지우지 못해
몇 년째 붙들고 있는 글이 있다.
몇 번이고 다시 써보지만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어휘,
완성되지 않은 어조.
하지만 그 문장을 ‘남겨두는 일’ 또한
하나의 지움이라 생각한다.
지우지 않기 위한 지움.
시간에 맡겨 잠시 내려놓는 지움.
그 또한 글쓰기의 일부다.

가끔은 나도 묻는다.
이 문장을 꼭 써야 할까?
누구도 모를 이야기인데,
굳이 이 말이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할까?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내 안에서 계속 남아 있는 문장이 있다.
마치 낙서처럼 한쪽에 새겨져
지워도 자국이 남는 문장.
그런 말이 결국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킨다.

지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쓰기’다.
무언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고자 하는 방향을 더 명확히 하는 일.
그래서 지움 끝에 남은 문장은
언제나 나를 닮아 있다.
누구를 흉내 낸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들으려는 말도 아니다.
지운 끝에, 비로소 내 말이 된다.

나에게 글쓰기란
지우고 지워도 결국 남는 그 마음을
하나의 문장으로 붙잡는 일이다.
그 말은 오래 준비되어 있었고,
수없이 걸러지고,
마침내 나에게 허락된 말이 된다.
지운다는 건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워도 남을 것을 믿고,
그 남는 것이 결국 자신일 것을 아는 사람.

나는 이제 예전처럼
지움에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건 쓰지 않은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미 충분히 써봤기에 지울 수 있는 것.
그건 애정이고, 확신이고, 때로는 용기다.
지움의 흔적 위에 남는 단 한 줄의 문장.
그 문장 하나로 나는 다시 하루를 견딘다.
그리고 또다시 쓰기를 시작한다.




8. 다시, 천천히 오래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아무도 모를 길을
혼자 걷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길은 지도도 없고,
때론 너무 멀고,
가끔은 아무 말도 없어서 외롭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을 걷기로 했다.
조급하지 않게,
그 누구의 속도와도 비교하지 않으며,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걷기로 했다.

‘천천히, 오래 쓰는 마음’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가 이 길을 걷는 방식이다.
누구는 더 빠르고,
누구는 더 정확하고,
누구는 더 많은 말을 쏟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만
내가 품을 수 있는 말만을 천천히 꺼내고 싶었다.
그 말이 온전하게 나를 닮을 수 있도록.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게 오래 걸려 글을 쓰면 지치지 않나요?”
나는 그 물음에 조금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천천히 쓰는 거예요.
지치지 않기 위해서요.”

빨라야 할 이유도,
급해야 할 까닭도
이제는 내 글쓰기에서 사라졌다.
천천히 쓰면 좋은 게 있다.
작은 감정도 놓치지 않고 살필 수 있다.
문장의 사이사이에서
비로소 흘러나오는 내 마음을 만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단어 하나도,
한참을 멈춰 바라볼 수 있다.

오래 쓰면 좋은 것도 있다.
오랜 시간 안에서
말이 나를 기다려 준다.
나는 늘 말이 나를 따라와 주길 바랐지만
사실은 내가 그 말에 도달하는 시간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 말과 내가 함께 늙어갈 수 있도록,
내가 늦게 도착해도 괜찮은 말이 되도록.

천천히 오래 쓰는 마음은
결국 내 삶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무엇인가에 쫓기고
비교당하며 살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조용히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호흡으로
이 말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어떤 글은 쓰는 데에 10분이 걸렸고,
어떤 글은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 모든 글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글을 쓸 때마다
그저 한 문장만 떠올린다.

“천천히, 오래 써야
오래 남는다.”

그 마음으로
오늘도 다시 쓰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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