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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Oct 12. 2021

나아지고 싶어서 시작한 일


“너네 집에 있던 라면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아이를 낳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한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먹고 싶어 하는 딸의 건강을 위해 친구의 부모님은 사주지 않으셨던 거겠지. 그렇다고 우리 집도 라면만 먹고사는 건 아니었는데. 아빠가 라면 회사에 다니는 일은 왠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당당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라 서글펐다. 건조한 라면 사리처럼. 마음이 툭- 부서져 버렸다.





아빠는 라면 회사에서 평생을 일하셨다.

월급날마다 라면 두 박스를 안고 퇴근하던 아빠는 ‘이제는 지겹다. 지겨워’ 하시면서도 하루 한 끼를 라면으로 넘기셨다. 국물 없이는 안되고 뭐든 간간해야 드시던 아빠에게 라면은 꽉 막힌 인생을 잠시나마 가볍게 풀어줄 음식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했다. 사골국에도 라면 스프를 넣어 드시던 아빠에게 아무리 말씀드려봐야 되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라면 스프에 인이 박였어!”






그런 아빠가 재작년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

엄마 몰래 구급차를 타고. 누군가를 걱정시키거나 귀찮게 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자주 아팠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 집 안의 모든 걱정을 안고 살던 아빠는 정작 본인 건강에는 소홀하셨다. 심혈관질환 센터에 앉아 아빠의 혈관을 보게 될 줄이야. 석회화되고 혈전이 쌓이고 좁아져 있는 혈관들. 혈관 하나를 가리키며 거의 막히기 직전이었다고. 위험했다고 했다. 며칠 체한 것처럼 아팠던 원인이 이것 때문이었다. 이게 다 술, 담배, 어쩌면 그 라면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년퇴직으로 회사는 떠났지만 라면은 늘 같은 자리에 쌓여 있었으니. 다행히 이번 스텐트 시술은 잘 되었지만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




퇴원하겠다고 막무가내인 아빠에게. 아직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병원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소용없었다.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고 말하는 아빠를 우리 가족은 잘 알고 있다. 대항하면 할수록 반사적으로 굳어지는 아빠의 고집을.





다행히 담배를 끊으셨다.

대신 배가 더 불룩하게 나오셨지만. 입이 심심해져서 먹게 되는 간식을 자연스러운 금단현상이라고 엄마는 지인의 말을 빌려 정당화했다. 모두가 그랬다. “못 바꿔! 사람은 안 변해.” 유일한 아군이던 언니마저도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건강하게 입맛을 바꾸는 일. 그건 정말 불가능한 걸까. 드시고 싶은 거 맘껏 드시게 하는 일이 진짜 효도인 걸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잔소리는 아무런 힘이 없다. 역효과만 불러일으키지 않아도 다행일 뿐.




그럼 나라도 달라지자고 생각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공유하던 식습관을 유전이라고 믿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들을 챙겨 먹이면서도 내 식단은 엉망이었고, 약골에 비실거리던 내가 운동도 시작했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몸이 조금씩 건강해지자 마음에도 서서히 여유가 찾아왔다. 하나씩 나아지고 싶은 것. 나아지는 것들에 대해 기록해 나갔다.





“아이고- 약 먹는 게 지겹다”


엄마는 수북이 쌓인 약봉지를 보며 말씀하셨다. 약이 지겹지만 약은 먹어야 된다는 엄마. 만성변비까지 더 심해져 힘들어하셨다. 어쩌면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빠의 힘듬이 고집으로 굳어졌는지도 모른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 기운이 전염된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아픔의 연결 고리를 보면서 언니와 나는 자랐다. 그래도 분명 나아지는 방법은 있으거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엄마, 아침 공복에 따뜻한 물 마시면 좋아진대!"

"걷기 운동 꾸준히 하면 좋고."

"변비에 좋은 차 보냈어!”

“장에 좋은 음식은 말이지....”




그리고 묻지도 않는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챙겨 먹고 사는지, 운동을 얼마나 꾸준히 하는지. 아침마다 벽을 마주하고 물구나무를 서는 인간으로 변했는지를 조잘거렸다. 살갑지 못한 둘째 딸의 요란한 전화가 자극이 되었을까.


엄마에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unsplash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은 왠지 슬프다. 땅 속에 묻어 둔 씨앗이 이미 썩어버렸다고 단정 짓는 것만 같아서. 이제 막 자라 오르려는 새싹을 툭- 잘라버리는 것만 같아서. 작은 가능성마저 버리고 포기하는 것 같아서.




“언니, 아빠 술 끊으셨대!”

“뭐, 정말??”



살면서 백번도 넘게 들은 말이지만 이번에는 진짜다. 과일은 입에도 대지 않으셨던 아빠가 토마토를 드시고 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에 과일 있어요?” “엄마, 요즘도 운동해요?”라고 슬며시 묻는 일이다. 새벽 5시마다 운동화 끈을 묶는 엄마의 노력을 알아주고 응원하는 일. 엄마가 건강해지니 아빠의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가 찾아왔을까?


“요즘 엄마 아빠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나아지는 일은 내게 그런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시작한 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할 때 포기하지 않는 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멋진 세상에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




아무 재주도 없는 사람이

어딘가로 긍정적인 영향을 흘려보내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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