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종일 모니터 앞에 있으니 눈이 피곤해서 잠시라도 모니터와 떨어질궁리를 하다 악기를 배우기로 했다. 여러 악기 중에서 드럼을 택한 건 드럼이 쉬워 보여서다.
드럼 첫 시간, 강사가 나를 연습용 북 앞에 앉히더니 스틱 잡는 법을 알려줬다. 스틱을 잡은 손이 어릴 적 처음 연필을 잡았을 때처럼 어색했다. 북 치는 걸 연습했다. 두 개의 스틱으로 북을 번갈아 두드리는 단순한 동작인 데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글씨 쓰기를 배우기 전에 선 긋기 연습을 하는 아이처럼 북을 삐뚤빼뚤 두드렸다.
북을 두드리는 게 조금 익숙해지자 드럼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사가 악보를 가져와 악보 보는 법과 북 치고 페달 밟는 법을 후루룩 알려주더니 드럼을 쳐보라고 했다. 종이 가득 그려진 콩나물 대가리에 현기증이 나 못한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음표를 한 개씩 보면서 드럼을 더듬더듬 쳐 나갔다. 손발이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제 멋대로 움직였다. 오른손을 쳐야 하는 자리에 왼손이 나가고 왼손을 쳐야 하는 자리에 오른발이 나갔다. 따딴따딴 따따딴따. 간신히 한 마디를 치고 다음 마디를 치기 시작하면 스틱들이 허공에서 허부적대다 안경과 뺨을 때리고 자기들끼리 박치기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손발을 제어하느라 몸에 힘이 들어가 목과 어깨가 뻣뻣하고 발목과 종아리가 저렸다. 따딴따딴 딴따딴따. 비트를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며 스틱을 두드리는데, 강사가 다가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벌써 끝났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네. 시간이 금방 가지요?” 강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
국민학교에 들어가 연필을 심이 뚝뚝 부러지게 힘주어 쥐고 숙제를 하던 기억이 났다. 국어책의 문장을 열 번씩 써가는 숙제였는데 그걸 다 쓰려면 저녁 내내 방바닥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글자를 쓰는 게 아니라 그렸다. ㅂ을 쓸 땐 ㅁ을 그리고 그 위에 작대기 두 개를 그려 넣었으며 ‘이’를 쓸 땐 ㅣ를 먼저 그리고 그 옆에 ㅇ을 그려 넣는 식이었다. 글자를 작게 쓰기 힘들어 글자가 자꾸만 공책의 네모칸 밖으로 삐져 나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웬만큼 하니까 대단치 않게 여겨서 그렇지 글자를 주어진 지면에 맞춰 안정된 획으로 가지런히 쓰는 건 예사로운 경지가 아니다. 국민학교만 졸업한 할머니들의 글씨가 예외 없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건 그들에게 충분한 훈련 기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에 입학해 선 하나를 똑바로 못 긋던 내가 휘갈기는 글씨부터 커닝 페이퍼의 깨알 글씨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기까지는 긴 훈련 과정이 필요했다.
요즘은 교실마다 전자칠판이 있어서 판서할 일이 적지만 예전엔 수업 시간 내내 선생은 판서하고 아이들은 그걸 공책에 받아 적는 게 일이었다. 판서를 하던 선생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들은 가로로 긴 칠판을 삼등분해 칠판 맨 왼쪽 꼭대기에서부터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반듯한 명조체로 자를 대고 쓴 듯 줄 맞춰 글씨를 써내려 갔고, 중간중간 색 분필을 활용해 중요 사항을 보기 좋게 강조하는 게 공을 들였으며, 칠판을 빼곡히 채우고 칠판 맨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대작을 끝낸 화가처럼 한 발작 물러나 판서한 걸 살피고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친 뒤에야 만족한 얼굴로 분필을 놓았다.
선생들은 교과서를 줄줄 읽는 식으로 수업을 성의 없이 하면서도 판서에는 성의를 다했고, 아이들은 공부를 안 하면서도 노트 필기는 열심히 했다. 얼굴로 글씨를 쓰는 것처럼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인 채 입꼬리를 씰룩대며 노트 필기에 몰두하던 60명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를 몰두케 한 건 지식이 아니라 미에 대한 추구였다. 우리는 한석봉과 같은 열정으로 글자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는 법, 우리는 여러 글씨체를 따라 썼다. 선생의 글씨체를 따라 썼고, 책받침에 멋 부려 쓴 목마와 숙녀의 글씨체를 따라 썼으며, 무엇보다 서로의 글씨체를 따라 썼다. 한 아이가 ㅇ을 작게 쓰면 온 반 아이들이 그걸 따라 ㅇ을 작게 썼고, 또 누군가 ㅇ을 크게 쓰면 얼마 뒤엔 온 반 아이들이 ㅇ을 크게 썼다. ㅇ은 작을 땐 한없이 작아져 점이 됐다가 커질 땐 글자의 곱절로 커지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서체를 섭렵하며 자신의 서체를 만들어갔다. 우리는 필기구도 아무 거나 쓰지 않았다. 내 짝 미선이는 0.5미리 볼펜만 썼다. 특유의 작고 정갈한 글씨체에 0.5미리가 적합하기도 했지만 심이 두꺼워지면 거기에 비례해 볼펜 똥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0. 5미리도 볼펜 똥이 아주 안 나오는 건 아니었다. 미선이는 볼펜 똥이 나올 때마다 투덜대며 그걸 공책이 아니라 교과서에 닦았다. 낙서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미선의 공책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가 그처럼 정성을 다해 완성한 공책이 몇 권이나 될까?
그 뒤로 긴 시간이 흘러 참으로 오랜 만에 고집스럽게 버티는 몸과 싸워가며 새로운 기예를 익힌다. 요즘 나의 일상은 살면서 수도 없이 여러 번 반복해온 것들로 채워져 있고 나는 그것들을 거의 자동으로 한다. 잘 한다는 건 아니고 오차 범위 안에서 일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내가 한 음식은 루틴하게 맛이 없고 글은 루틴하게 잘 안 써진다. 실패까지도 익숙하고 예상가능한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만일까? 뭔가를 이렇게 처음 해보는 게. 나는 드럼 채와 싸우면서 우스꽝스러운 지경으로 서툰 나 자신이 신선했다.
쉬는 동안 내 안에서 나 모르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한 주 뒤 드럼 앞에 앉으니 전 주에 연습했던 비트가 한결 수월하게 쳐졌다. 나의 실력은 매주 업그레이드돼서 차차 악보 보는 걸 겁내지 않게 됐고 채를 잡은 손이 자연스러워졌으며 몸에 힘이 빠져 어깨와 다리가 편안해졌다.
강사가 비트가 좀더 손에 익으면 노래를 연주해 보자고 했다. 기대된다.
(2023.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