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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욤뇸 Sep 28. 2022

재롱이와 인사하던 날

가을 하늘이 새파랗게 시린 날


길고 긴털에 묻은 오줌들로 재롱이 몸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재롱이는 이제 더 이상 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재롱이는 추운 겨울에도

베란다에 나가 대소변을 가리는

영리한 개였다.


그런 재롱이가

누워있는 그대로 오줌을 질질 지렸다.

얼마나 찝찝했을까.

 

우리 집엔 강아지 전용 패드가 한가득 주문되었다.

재롱이는 그 위에 가만히 누워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재롱이에게 달려가

오줌이 묻은 몸을 뜨거운 물로 씻기고 따뜻한 바람에 말려주었다.

매일매일 깨끗이 닦아주었지만 하루 종일 누워있는 재롱이의 털은 노랗게 물들었다.

지린내는 여름에 더욱 심해졌다.


그 날도 어김없이 재롱이는 잠을 설치며 끙끙거렸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고 베란다 바깥으로 데라고 나가 소변을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몇 번을 넘어지던 재롱이는 결국 소변을 보지 못했다.


나는 재롱이를 다시 온장판을 틀어 놓은 침대 속으로 뉘여

토닥이면 잠을 청했다.


새벽 3-4시였을까 갑자기 후다닥 하며 발버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 불을 켜 재롱이를 보니

한쪽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 어둠 속에서 놀란 듯이 말이다.


재롱이가 태어나서 처음 침대 위에 소변을 보았다.

재롱이도 너무 놀라는 듯 보였다.

그렇게 아파도 한 번을 실수하지 않던 강아지가

소변 실수를 하고 깜짝 놀라 했다.

나는 재롱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빨면 되지.'


불을 켜고 오줌이 묻은 이불을 모두 빨래통에 넣고

오줌 범벅이 된 재롱이를 따뜻한 물이 담긴 세면대에 넣어주었다.

어디선가 물속에서는 아픈 강아지의 고통이 덜하다는 이야기를 보고 그랬던 듯하다.

목욕하기 싫어하던 강아지는 그저 고요히 있었다.

물속에 잠겨도 살려달라고 하지 않을 정도로 가만히 물에 둥둥 한참을 떠있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재롱이를 정말 보내줘야 할 때가 왔구나. 깨달았다.


다음날 엄마는 재롱이를 보내주자고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고,

전날의 재롱이를 떠올리며 나도 재롱이를 보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알았어.. 내가 퇴근하고 재롱이 병원 데려갈게'


가족들은 모두 잔인했다. 나는 가족 모두를 원망했다.

아무리 개는 개답게지만 마지막을 함께 할 수는 없는 건가.

나보고 데려가서 재롱이를 안락사시키라니

너무 차디 찬 사람들이라고 속으로 몰래 욕을 해댔다.


출근 직전 재롱이를 개집에 눕혀놓고

담요를 둘둘 말아주었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추욱 늘어져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재롱아 누나 회사 금방 갔다가 올게'하고 쓰다듬으며 인사하고 나갔다.

엄마는 지각하겠다며 나의 출근길을 재촉했다.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러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눈앞에 재롱이가 어른거렸다.


퇴근하고 나서 재롱이를 병원에 데려가면 

좀 더 살 수 있는 재롱이를 내가 죽이는 게 아닌가.


내가 퇴근하기 전에 차라리 

재롱이가 먼저 떠나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솔직하게 들었다.


재롱이를 내가 직접 안락사 시켜 보내느니 

스스로 먼저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사실이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불안해졌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채

급하게 2시간 휴가를 쓰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5시였다.


문을 열고 '재롱아!'하고 불렀다.

재롱이는 역시 아침에 덮어 놓은 담요를 두른 채 누워있었다.

목을 가누지 못한 채로 여전히 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외출해 있었고 나는 이 또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아픈 강아지를 혼자 있게 놔두다니 화가 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재롱이가 누워있는데 

존재가 없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손을 대 보았다. 

너무나 차가웠다. 추웠나 싶어 한번 더 만져보았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 몰라 귀를 가슴 쪽에 대고

심장소리를 들어보려 했지만


들리는 건 뱃속에서'꾸룩꾸룩꾸룩'하는 소리뿐이었다. 심장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절규했다.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무릎을 꿇고 재롱이를 흔들며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지 한참을 지나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일하러 나가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다.

왜 혼자 두었느냐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 재롱이가 죽었어 재롱이가 죽었어 !!흐어'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함께 울기 시작했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던

엄마도 나와 함께 울었다.

일을 마치고 갈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는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을 울어댔지만 재롱이는 여전히 차갑게 누워있을 뿐이다.

나는 재롱이를 담요에 싸서 덮어주었다.


안락사시키기 전에

먼저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겁쟁이 주인의 마음의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서 너무나 미안했다.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었는데

이 세상에 와서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고 가는

가여운 강아지가 모두 내 탓인 거 같아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지쳐 방에 들어가 누웠다.

핑크색 극세사 이불에서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재롱이 냄새가 진하게 올라와 견딜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걱정이 되었는지 새빨간 눈으로 내 방에 들어왔다.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았다.


'엄마.. 이불 이불 좀 치워줘 재롱이 냄새가 나.

재롱이가 생각나.'


재롱이가 보고 싶었지만 그 진한 냄새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어 돌아왔다.

죄책감까지 더해져 그랬을까 나는 한참을 잠에 들었다.


노견 일기를 쓰던 SNS에도 마무리 글을 올렸다. 

재롱이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슬퍼하는 그 순간에도 SNS를 하는

나는 미친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슬픔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누군가에게 내 슬픔과 고통이 

하찮은 모습으로 비치는 게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SNS 속 애견인들은 내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았다. 

아직 재롱이가 살아있을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날은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그리고 그동안에 재롱이는 혼자 고독하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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