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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욤뇸 Sep 28. 2022

노견은 안돼요

강아지 미용에 대한 기록.

재롱이의 미용 일기



재롱이가 아픈 지 오래되었다.

우리는 재롱이가 어릴 때부터

재롱이 털 미용을 꼭 샵에 맡겼다.


혹여 내가 발톱을 자르다 실수로

재롱이를 아프게 하진 않을까

너무 무서웠다.

우리 가족 모두 무서웠다.


털을 깎는 일부터

발톱 정리까지 모두 샵에 맡겼다.

그게 재롱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라 여겼다.


재롱이는 분기별로 한 번씩

샵에 가서 미용을 했다.


"어떻게 디자인해드릴까요?"


"그냥 싹 밀어주세요."


남자 미용실로 따지자면

Mr. 바리깡 / 블루클럽에서 스포츠형 머리를 하듯


재롱이는 남김없이 털을 싹 밀었다.


가끔은 미용사 재량대로

꼬리털을 남겨주거나

귀에 있는 털을 남겨주기도 했지만


우린 무조건 싹-다 밀어달라고 주문했다.

재롱이는 그냥 개였으니까.


미용을 하고 나온 재롱이는

영화 -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집요정 도비 같았다.

싹다 밀고 털이 조금 자란 재롱이. '정신이 드니?'짤


미용을 하고 온 재롱이는

하루 종일 부들부들 떨며

개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구나 싶어

그날이면

더 맛있는 간식을 밥그릇에

올려주었다.





그렇게 재롱이가 14살 되던 무렵이다.

나이 든 재롱이를 데리고 샵에 갔다.


그런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재롱이 미용 안 되겠어요. 주인분이 와서 잡아 주시던지
안 그럼 저희 미용 못합니다."



너무 놀랐다. 미용 거부를 당한 건 처음이었다.


재롱이가 한쪽 눈이 없어져서일까

사람들은 재롱이에게 너무나 차가워졌다.


나는 다 버릴 옷을 입고 오라는 미용사 말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동물병원으로 뛰어나갔다.

재롱이 털 미용을 시켜야 했으니까.


재롱이는 미용하는 게 꽤 스트레스받는지

이빨을 드러내고 씩씩 거렸다.

아직 어디가 아픈 걸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위생상 미용은 해야 했기에 그대로 진행했다.

1시간을 실랑이 한 끝에 재롱이의 미용이 끝이 났다.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매번 함께 가서 미용시키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으니까.



16살의 재롱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재롱이는 밥을 잘 먹지 않아

털도 많이 빠지고

볼품없어졌지만,


나에게는 

똑같은 내 강아지였다.


시간이 흐르고


발톱이 길고 털이 길자

미용을 맡길 시즌이 되었다.


"아, 나이 들어서 미용 안돼요."


"아니 원래부터 여기서 매번 맡겼는데 안된다니요?"


"나이가 많아서 암튼 안돼요."


샵에서는 갑자기

재롱이를 받아줄 수없다고 했다.

혹여 강아지가 미용 중 죽고 나서

책임을 물 수 있기 때문에

받아줄 수없단다.


나와 엄마는 작디작은 재롱이를

안고 사정했다.


"발톱이 너무 길어서 강아지가 불편해해서 그래요.

발톱만 잘라줘요.

우리가 할 줄 몰라서 그래요. 

돈은 달라는대로 더 드릴게요."


부끄러웠다. 16년 동안 강아지를 키우면서

발톱 하나 잘라주지 못하는

주인이라니, 가족이라니


재롱이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재롱이의 사랑을 받았을 뿐이었다.


미용샵 주인은 어쩔 수없다는 듯이

돈을 받고

발톱만 잘라주기로 했다.


발톱만 겨우 자른 불쌍한 내 강아지는

긴털로 눈앞이 가려진 채

샵을 나왔다.


속이 상했다.

건강하고 이쁠 땐 어디서나

환영받던 재롱인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새끼 강아지용 바리깡을 구매했다.

유튜브를 보며 털을 미는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발톱 깎기는 어렵지만

지저분한 털이라도 밀어주겠노라고


그동안 제대로 관리해 주지 못한

자격 없는 주인이지만

다 늙은 너를 늦게나마

제대로 관리해주겠다고


기력 없는 재롱이를 붙잡고

배변이 자주 묻는 털을 정리해줬다.


나는 나쁜 주인이었다.

아프고 늙은 강아지를 데려다

내가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 건가.

너를 괴롭히는 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진작 너를 위해서 미용이나 발톱 깎기를 배워둘걸.

재롱이는 무슨 생각인지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으르렁 대고

나를 물었으면 좋겠는데


재롱이는 가만히

그냥 가만히 있었다.


개를 관리해주는 샵은

예쁘고 어린 강아지들만

가는 곳인 걸까


그러고 보니 나이 든 개들이

샵에 있던걸 본 적이 없네


나이 든 개들은 그럼 어떻게 지내는 거지?


속이 무척이나 상했다.


나한테는 여전히 예쁜 강아지 재롱이다.

미용을 못했지만 여전히 귀여운 재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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