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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Nov 22. 2023

 어택 (attack)    

마음이 기억하는 곳에 잠깐 머물다 가세요

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다리고 있어서 인지

 올해 봄은  유난히도 더디 오는 듯했다.

일 년 중 반년이 흰 눈으로 덮인 이곳 겨울을 10년째 지나온 탓일까

11년째의  봄은 기다리는 게 몹시도 힘이 든다.


한국의 벚꽃봄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이곳의 봄은,

3월이 가고 4월마저 마지막 날을 달려가도  

회갈색 여전히 시린 가지다.

이국땅 겨울은 아직도 낯설다.

 

구스 한쌍은 어째서 이른 봄 이곳을 벌써 왔을까

먹을 것 하나 없는 꽁꽁 언 땅을 괜스레 주둥이로

빈 입질만 해대며 서성인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기다릴 수 없다면

스스로 봄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저 구스 부부만 아니었어도

저 구스 부부가 살얼음물에 목욕하는 모습을

보지만 않았어도

나의 일상은 작년과 다름이 없었을 테다.

어쩌면 일부러  봄을 찾아 나서는 일도 없었을 테다.

 

될 수 있는 한 봄꽃이 만발한 곳을 물색했다.

무조건 꽃이 있어여야만 한다.

스텐리 공원, 퀸 엘리자베스 공원, 잉글리시 베이 비치,

카필라노브리지, 그랜빌 아일랜드...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부풀어 올랐다.

큰 도시, 복닥대는 시내의 거리,

고풍과 현대적 분위기가 이색적으로 어우러진 건물들,

사람들, 맛집, 바다와 산, 벚꽃

흥미롭고 기대되었다.


새벽공기도 반갑고,

공항까지의 차속 대화도 즐겁다.

빈속을 따라 들어가는 뜨끈한  커피 한잔까지 이 얼마나

완벽한 행복의 순간인가!

적어도 밴쿠버행 비행기를 타기 전 까지는 그랬다.


보딩 후 착석,

 늘 그렇듯 안전수칙을 경청하는 시간.

갑자기 한없이 부풀어 오르던 풍선이 빵!  터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당했다.

머리가 생각이란 걸 할 틈도 없이  아랫배가 아려왔고

온몸은 힘이 빠지며 사지는 속에서부터 달달 떨렸다.


공포는 빠르게 온몸으로 퍼저나 갔다.

안전수칙 속에 숨어있던 악마가

모습을 드러 냈다.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비행기를 먼지 털듯 흔들어서

저 깊은 바닷속에 뚝 떨어뜨릴 테다. 넌 수영도 못하잖아

옆에 앉은 니딸은 또 어떻게 구할 거니? 넌 지금 출입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

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출입구로 몰려든다면

넌 나가지도 못하고 죽게 될 거야"


이해도 안 되고 논리도 없는 시답잖은 속삭임에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아?

어림없어!!

스톱!  

스톱!

생각은  이미 컨트롤 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발진이다.

 눈은 재빠르게 주위를 살핀다.

갑자기 시야가 좁혀져 온다.

비좁은 실내, 흔들림 속 굉음,

  보이지 않는 출구, 탁한 공기,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심지어 잘 입고 있던 옷까지  

답답하게 조여 오는 느낌.

 호흡이 멈출 것만 같다.

.

.

.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때마침 귀에 에어팟이 꽂아지고 들려오는 노랫소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몰랐던 그대와 단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살며시 손등을 덮는 부드러운 손길.

"엄마, 내가 자주 듣는 노래야

한번 들어봐 도움이 될 거야"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옆에 앉은 딸아이  얼마나 놀랬을까

그러나 일부러 한없이 평안하다.

평안은 다시 평안을 만든다.

.

.

.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

.

.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스쳐 지나간 건가 뒤돌아보지만
그냥 사람들만 보이는 거야
다 와 가는 집 근처에서
괜히 핸드폰만 만지는 거야
한번 연락해 볼까 용기 내 보지만
그냥 내 마음만 아쉬운 거야

걷다가 보면 항상 이렇게 너를
바라만 보던 너를 기다린다고 말할까

.

.

.

사투를 벌이며  음악을 듣기는 또 첨이다.

곡 두 개가 끝날 때쯤

완전한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아무 잘못 없는 내게

왜 이러냐고

나는 그저  꽃이 보고 싶었노라고,

커다란걸 바란게 아니었노라고,

봄을 만나

아이처럼 마냥 웃고 싶을 뿐이었노라고...


따지고 싶지만 숨이 다시 편해 졌으니  안심 이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냥 감사 하기로 했다


2023년 해 나의  봄은

꽃을 만나러간 여행길에  공황을 얻어왔다.

마치 예고없는 어택을 당한 것처럼...


성악에서 어택은 발성 직전

모든 호흡이 잠시 멈춘 구간을 말한다.

이 구간이 잘 훈련될수록

소리를 조절하는 단전은 강해지고

그 외 부분들은 유연해진다.


아랫배 꽉 쥐고 멈춘 호흡은

음을 내기 전 어택을 받아 순식간에

 힘차고 아름다운 소리로 넘어간다.

그리고 멀리까지 울러 퍼진다.


  내게도 이건

그동안 모든 기관과 횡격막을 열어 들이마신 호흡을

'잠시 멈춤'  신호다.

 발성은 어택을 받지 않으면

결코 강하고 고운 소리를 낼 수 없다.


 어택의 구간에서 나는

  내 인생 제2막의 악보를 어떻게 노래할 것인지

파악하는 중이다.

  단전을 강화시키는 연습 중이다.

여유로움과 유연성은 당연히

덤이길...

듣는 이가 힘을 얻고 위로를 받길...


나의 무대가 화려하거나  멋지지 않다 할지라도

온 맘과 온몸으로 노래할 것이다.

내 노래가 기대되는 밤이다.       




노래가사 참고 : 벛꽃엔딩/장범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버스커버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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