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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베이커 Nov 20. 2023

[아트 한입] 권옥연 고유의 청회색 빛 초현실적 풍경

전시 | 현대화랑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 2023.11.15-12.16

[아트 한입] 권옥연 고유의 청회색빛 초현실적 풍경 © 2023. ART BAKER


《KWON OK YEON: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Photo: ART BAKER


현대화랑은 권옥연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KWON OK YEON: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을 오는 12월 16일까지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부인 초상>(1951), <절규>(1957), <달맞이 꽃>(1986), <귀향>(1999) 등 1950년대부터 1999년작까지 권옥연 화백의 주요 작품 총 20점을 선보입니다.


[ KWON OK YON: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 ]

 @ 현대화랑 GALLERY HYUNDAI

• 기간 : 11.15(수) ~ 12.16(토)

• 장소 : 서울 종로구 삼청로 8

• 시간 :  10:00 ~ 18:00 (화~일)

• 무료 관람 / 사전 예약 없이 방문 가능 / 주차 불가




01 구슬처럼 깨끗하게


권옥연, 풍경, Oil on canvas, 15.8 x 22.7 cm.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Photo: ART BAKER


권옥연 화백(1923-2011)은 함경남도 함흥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로부터는 한문과 서예를,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로부터는 음악을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옥연'이라는 이름에는 '구슬처럼 깨끗하라 ‘는 조부의 뜻이 담겼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장 처음으로 들은 음악이 ‘미뉴에트’ 같은 클래식이었으며, 음악가가 되길 꿈꾸던 그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미전(선만전)에서 특선 등을 하며 두각을 보였으며, 1941년에는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꽃>을 출품하여 수상하며 그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렸습니다.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Photo: ART BAKER


1942년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권옥연 화백은 한국에 돌아온 뒤 6·25 전쟁 등 격변기에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1953년 제5회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문교부장관상,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02 평생의 동반자, 무대미술가 이병복


권옥연, 부인 초상, 1951, Oil on canvas, 91.5 x 59 cm.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1951년, 권옥연은 이병복(1927-2017)이라는 여학생과 결혼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 무대미술가로 활동한 이병복과 권옥연 화백은 평생 서로에게 가장 무섭고 날카로운 비평가였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말을 해준 적이 많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도 권 화백이 가장 즐겨 그렸던 모델이 아내였다고 하니, 둘 사이에는 깊은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 회고전에서도 이병복의 초상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그는 1953년 4월 부산에서 열린 제5회 대한미협전에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부인 초상>(1951)을 출품하여,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합니다.


1957년 권옥연과 이병복은 함께 프랑스 유학을 떠납니다. 한국무대미술 1세대인 아내 이병복은 귀국 후, 1966년 극단 자유를 창단하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따라지의 향연>,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햄릿>, <피의 결혼>, <억척어멈> 등의 100여 편의 무대에 우리의 얼과 멋이 담긴 색과 재료로 독보적인 미학을 완성했습니다. 박정자, 김용림, 윤소정, 최불암, 김혜자가 창단 멤버였습니다. 1969년에는 명동에 소극장 카페 떼아르트를 권옥연과 함께 두 사람이 열었으며, 이는 소극장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병복은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연극계의 역사를 만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 무대연출의 대모인 이병복은 2015년 3월 27일, 무대의상 스케치, 공연 및 작업 사진 등 소장 자료 2,476점을 기증하여 현재 그의 작품은 아카이브화되어 있습니다.




03 권옥연과 예술가들


권옥연, 무제, 1975, Oil on canvas, 73.3 x 117 cm.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권옥연에게는 아메데오 클레멘테 모딜리아니, 파울 클레, 폴 세잔이 젊은 시절의 스승이었습니다. 나이기 들어가며, 주변의 작가들의 그의 스승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심미안이 뛰어났던 그는 국전에서 박수근이 떨어졌을 때 다시 심사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권옥연은 박수근을 존경했습니다. 또한, 박수근과 같이 꾸밈없는 그림을 그리는 도상봉의 그림 또한 나이가 들며 점점 고귀하게 여겼습니다.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권옥연보다 한 살 위인 그의 9촌 아저씨였는데, 권옥연은 1988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권진규의 회고전에서 생명을 느꼈다고 회상하며, 그를 스승으로 여겼습니다.




04 권옥연 고유의 청회색빛 초현실적 풍경


권옥연, 몽마르트르 거리 풍경, 1957, Oil on canvas, 100 x 65 cm.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청회색이 주조를 이룬 추상과 구상을 넘어선 초현실적 풍경은 작가의 작품을 묘사하는 가장 큰 키워드입니다.


권옥연은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체취를 중요시했습니다. 체취를 다른 말로는 포에지, 노래라고 하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목청만이, 그 사람만의 톤으로 낼 수 있는 표현이 담긴 그림이 제대로 된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권옥연의 빛깔은 그의 고유의 그레이, 청회색일 것입니다.


이병복과 함께 프랑스 유학을 떠난 권옥연은 그랑드 쇼미에르아카데미(Académie de la Grande Chaumiere)에서 3년간 서양화를 공부하며  《살롱 도톤(Salon d'Automne)》(1957, 1958), 《칸느 그랑프리전(Cannes Grand Prix Exposition)》(1958), 《레알리떼 누벨전(Salon des Réalités Nouvelles)》(1958) 등에 참여했습니다.


권옥연, 절규, 1957, Oil on canvas, 80.3 x 116.8 cm.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파리에서 권옥연은 자신을 찾기 위해 방황하며 상형문자, 토기, 민속품 등을 소재로 한 반추상작품을 그렸는데요. 이 시기에 그려진 <절규>(1957)에는 문자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문자가 되는 추사의 경지가 현대미술의 조형감각으로 재탄생하여 담겨있습니다.


권옥연, 여인, 1988, Oil on canvas, 91 x 65.5 cm. Courtesy of the artist, Gallery Hyundai


1960년, 귀국 후에는 제9회 파리 쉬르레얼리즘전(1960), 제8회 상파울로비엔날레(1965), 일본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한국현대회화전(1968) 등 해외 전시에도 왕성하게 참가했습니다. 198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어 대한민국 예술원상(1986), 보관문화훈장(1990) 등을 받았습니다. 2000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2001년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습니다.




05 무의자 박물관의 비하인드 스토리


권옥연 화백과 무대미술가 이병복 부부가 늦가을 날 ‘무의자박물관’ 앞에 나와 섰다. ⓒ 조선일보,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권 화백은 아내와 함께 조선시대 고택과 궁집의 보존에도 관심을 갖고 약 50년간 애정을 쏟아왔습니다. 조선의 국왕 영조가 막내딸 화길옹주에게 지어준 궁집이 1964년 폐기될 상황에 처하자 이를 매입했고, 신정왕후 조 씨의 친정집이었던 '군산집', 조선말 송병준대사의 가옥 '용인집' 등을 이전· 복원해 남양주시 평내동 8000평 대지에 금곡박물관을 조성했습니다.


1999년에 금곡박물관은 문화재청 관리 주관으로 지정됐고, 권옥연의 호를 딴 '무의자박물관'으로 변경됐습니다. ‘무의자(無衣子)’는 권옥연 화백의 호로, 옷을 벗은 벌거숭이라는 뜻입니다. 2011년 6월에는 무의자문화재단이 출범했고, 같은 해 12월 화가는 향년 89세로 타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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