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가 스며드는 순간
평일 아침 8시 40여분이 되면 나를 제외한 가족이 모두 집을 빠져나간다. 혼자 있는 집의 시간은 고요해서 평화롭거나 적막해서 졸리거나 둘 중 하나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없는 오전에는 아차 하는 순간 알아서 두 다리가 침대로 걸어가 드러누워버리기 십상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침대 위에서 나의 오전 시간을 홀랑 날려 버릴 수 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하염없이 게을러질 수 있는 마의 9시 고비를 넘겨야겠다 싶은 날에는 이불 빨래를 한다. 세탁기가 꺼지면 바로 꺼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한껏 널브러지고 싶은 충동을 잠재울 수 있다. 오전 중에 세탁을 하고 말려야 밤에 은은한 유연제 향을 풍기는 포실포실한 이불을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오전 열 시의 햇살'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오전 열시는 차갑기만 했던 아침 햇살에 서서히 온기가 스며드는 순간이다. 햇살이 닿는 곳의 패브릭 색깔의 농도가 명확해진다. 뭉근했던 그림자의 윤곽도 선명해진다. 한낮의 쨍한 빛과는 달리 포근하다.
난 이 시간의 햇살이 아침 해가 뜬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햇빛이라 여긴다. 그래서 건조기에 넣지 못하는 빨래는 꼭 이 시간에 널어야 한다는 일종의 관념이 있다. 세탁기 안에서 탈출한 축축한 빨래에게 따스한 온기를 쐬어주기 시작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
개운하게 빨아낸 이불을 널어두고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늘어지고 싶었던 마음도 개운하게 사라진다. 매시간 챙겨 먹어야 하는 영양제는 제대로 먹어본 적 없지만 매시간의 햇살은 부지런히 챙겨 곱씹는다. 영양제가 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