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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나 Aug 21. 2024

똑띠다 똑띠!

쉰 살 엄마에게 인생 조언을 건네는 스무 살 딸에게

통곡이,

터진다.

때로

연륜과 상관없이

영혼의 침잠으로

감당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 내게 되는

인생의

어떤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눈물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 나와야 한다

의도치 않은 이러한 장면들과의 마주침에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이유가

진짜 별 것 아닌 것들의

어정쩡한 조합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슬픔에 완전히 장악된 자아는

삶이 마치 벼랑 끝에 있는 듯

절망  앞에 서게 되고

과거의 회한은

절망의 무게에 이유가 되어주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러한 찰나!

유일하게 생각나는 이가 있다면

이제

바야흐로

살 길이 열리는 순간이다


중년의 어느 여름밤

시답잖은 갈등과

호르몬 부족 증상,

수면 부족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자

 '억울함'이라는 감정에

과몰입하며

눈물 콧물을 쏟게 되었다

한참이 지난 뒤

서울 간 딸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갈래갈래 찢어진 듯한

엄마의 심상찮은 목소리는

단번에

로 났다.


"왜 그래 엄마, 울어? 왜?"

 "아니야(간신히 나오는 목소리로)"

"이야기해, 왜? 무슨 일이야?"

"아니야"

반복되는 이야기에 딸아이는 이내

"이야기 안 할 거면 끊어"

라고 하니,

이내 섭섭함이 더해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답답함에

다시 전화를 건 딸아이는

"이야기를 하라고 엄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몰아붙이는 목소리가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나도

내 슬픔

내 절망

내 억울한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위로다


딸아이는

한참 이야기를 듣더니

"엄마,

상하목장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잊어버려!

상처 주는 사람들은 그냥 변하지 않는 거고

그냥 표현을 그렇게 밖에 못하는 거야!

그런 거는 맛있는 거 먹고

잊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엄마가 해놓은 게 왜 없어?

나도 잘 키웠고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도 많이 도왔고

힘들었던 문제들도 다 넘어왔는데

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해?

그리고

이제부터  제발

엄마 인생을 좀 살아

가족들을 신경 쓰고 돌보는 것도 좋고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것도 좋지만

엄마가  하고 싶은 게 많다며?

그런 일에 이제 집중해 봐

스스로를 좀 돌보라고!"

전화기 너머의 딸아이는

인생의 핵심을 이미 간파한 듯

일장 연설 쏟아낸다

이 아이가 스무 살에 알고 있는 것을

깨닫기까지

미련퉁이 나는

장장 오십 년이 걸렸단다...

는 깨달음이 온 순간

"그래 니 똑띠다 똑띠"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인생이 그리 단순하더냐 하는 탄식에 더해

넌 어쩜 그렇게 빨리 인생을 깨달았니 하는 감탄 플러스

절망을 막 헤치고 일어선

제정신 차린 엄마가 할 수 있는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마디 말이었다.


수많은 중년의 인생들은

지금의 아이들처럼

자신의 것에 집중하며 사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부모를 걱정하고 돌보는 것도 자기 몫이고

자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세대였다

양 어깨에 짊어진 무게는

그들이 숨쉬기 힘들 정도로

압박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

이기적이고

사랑 없는 인격으로 여겨지던  시대를

살아왔기에

.. 것.. 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모든 것에

서툴다

그래서

가끔은

별 것 아닌 외부의 충격에 대미지를 입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처럼

비틀거리고

자빠진다

그런데 실상은

딸아이의 긴급처방대로

상하 아이스크림 하나면

해결되는

쪼잔하고 별 것 아닌 것들인 것이다

스무 살 딸아이의

상하 아이스크림 처방은

죽을 것 같던 영혼의 어두움을

순간 빛으로 인도하는

괴력을 보여줬다


때로 인생의 심각한 고비에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일격이

우리를 일어나게 할 때가 있다

혹은

어쩌면 우리 인생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의 실체

상하 목장 아이스크림 처방이면 되는

그런 가소로운 것이었을 수도!

어찌 됐든

엄마의 위기의 인생을 건져  스무 살 딸아이의

통찰에

놀라며

정신이 번쩍 들며

흐뭇던  날,

동시에

민망함으로

다시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니 똑띠다 똑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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