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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l 22. 2020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의미

강아지 등록부터 보호자 교육과 전용 놀이터까지 개 존중 사회의 모든 것

"대소변 못 가린다.." 40대 남자, 아파트 9층에서 강아지 2마리 던져


지난 7월 9일 한국 뉴스에 실린 기사다. 배변을 제대로 못한다고 자신이 기르던 말티즈 강아지 2마리를 아래로 던졌는데 나무에 부딪힌 뒤 화단으로 떨어져 죽지는 않았지만 심하게 다쳤다고 한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반려견 학대와 무책임한 유기 소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작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면서도 점차 둔감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유발 하라리는 2014년 발간한 <사피엔스>에서 혁명적으로 진화된 인지능력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곳곳으로 이동하면서 얼마나 많은 토착 동물들을 멸종시켰는지 충격적으로 설명한다. 그 와중에 천만다행으로 개와 고양이 등 일부 동물들은 애완용으로 분류되어 변덕스러운 호모 사피엔스의 동반자가 되었다.


물론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들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마음에 안 든다고 학대하고, 심지어 식용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1만 년 전 생태계의 파괴자였던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고, 자신과 함께 사는 반려동물을 소중한 생명체로 존중할 줄 아는 현대적 인간으로 발전했다.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강아지를 입양하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한국과 다른 여러 가지 사회제도와 시민문화를 확인하게 되었다. 때로는 참 유별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공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보호가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모습을 비엔나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비엔나에 도착한 첫날, 임시로 머문 호텔에서 주변 거리를 검색하다가 '훈데존(Hundezone)'이라는 명칭을 발견했다.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반려견 전용 놀이터를 의미했다. 세상에나!


비엔나 시내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이 공간에서는 목줄을 풀어놓아 개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고 다른 개들과도 스스럼없이 교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형견은 '훈데슐레(Hundeschule)'라는 개 학교를 반드시 수료하고 교육을 충실히 받았기 때문에 함부로 다른 사람이나 동료 개들을 무는 일은 거의 없다. 


반대로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거나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은 공원이나 놀이터에는 '훈데베어보트(Hundeverbot)'라는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서 함부로 개를 데리고 다니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요컨대 비엔나에서는 일부 개 출입금지 지역을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개와 함께 산책할 수 있으며 훈데존에서는 개 목줄을 풀고 자유롭게 놀 수 있다.


기본적으로 비엔나는 잔디밭과 공원, 들판 등이 많이 있어서 개들이 뛰어놀기에 천혜의 조건을 지니고 있다. 우리 집 바로 앞에도 넓은 잔디공원이 있고, 5분만 걸어가면 아생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자두처럼 아직 어린 강아지부터 저먼 셰퍼드와 골든 리트리버 같은 대형견까지 다양한 종의 개들이 갈대밭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다. 

   

우리 집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드넓은 야생 들판이 나온다. 한참 뛰어놀다가 잠시 쉬고 있는 자두의 모습


밖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다른 개와 종종 만난다. 지나가던 퍼그와 반갑게 인사하는 자두


사소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더운 여름날 개와 함께 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목이 말라 혀를 축 늘어뜨리고 헥헥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일 때가 있다. 어디에서 물이라도 좀 먹이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앞에서 '훈데-트렌케'라는 표지를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개를 비롯해 주위의 반려동물들이 마실 수 있도록 그릇에 깨끗한 물이 가득 담겨있다.


이처럼 비엔나에서 개들은 강아지부터 성견까지 야외에서 걷거나 뛰고 싶은 본능을 충분히 만끽하며 살아간다. 자연환경 자체가 최적의 조건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써 그에 마땅한 존중과 배려를 받고 있다. 

 

숲길 산책로 어귀에 누군가 마련해놓은 물그릇.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절로 느낄 수 있다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개를 입양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 입양부터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주니가 자두를 입양하기까지의 과정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자격증을 보유한 브리더나 개 보호시설에서만 입양할 수 있고, 본인이 개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나와 주니는 가족 중 적어도 한 사람이 강아지를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예전에 개와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운 경험이 있으며 진정으로 개를 사랑한다고 정성껏 작성했다. 만약 이 사실이 허위로 밝혀지고 개를 장시간 방치하거나 산책을 시키지 않으면, 이웃주민들이 신고하고 경찰이 출동한다. 실제로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에서 만난 유기견 중에는 그런 슬픈 사연을 지닌 아이가 몇 마리 있다.  


힘들게 강아지 입양에 성공하면, 펫 패스포트와 펫 카드를 전달받는다. 상단에 EU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청색 표지의 패스포트에는 소유자와 강아지의 신상정보, 강아지 몸에 삽입된 마이크로칩의 등록번호, 강아지를 처음 진찰한 수의사 정보, 접종기록 등이 기재되어 있다. 펫 카드에도 앞뒷면에 보호자와 강아지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혹시라도 개를 잃어버렸을 때 증빙자료로 활용된다. 


자두의 패스포트와 펫 카드. 보호자와 강아지의 신상정보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강아지 입양 후 2주 이내에 소유주 대상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독일어와 영어 교육 중 선택할 수 있으며 강의시간은 4시간이다. 나와 주니는 자두를 입양한 다음날 비엔나 교외의 동물병원에서 진행된 교육에 참가했다. 편한 분위기 속에서 강아지 건강관리와 예절교육 등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받았다.


패스포트와 교육 이수증을 첨부하여 거주지 관할 행정관청에 강아지 등록을 신청하면 모든 전산처리가 완료된다. 각 과정마다 비용이 발생하며, 등록이 완료되면 매년 반려견 보유 세금을 내야 한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반려견을 파양해야 할 경우,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금을 내고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례는 거의 드물다.


자두를 입양한 다음날 나와 주니는 비엔나 동물병원에서 주최한 의무교육을 수강했다. 


비엔나에서는 대형견과 함께 걸어가는 시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함께 가는 주인도, 묵묵히 따라가는 개도, 그것을 바라보는 행인도 모두 무덤덤하다. 대부분의 비에니즈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식당이나 공원에서도 항상 개와 함께 한다. 이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경이로운 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충동적 선택이 아닌 심사숙고를 통한 결정, 개인과 사회가 함께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그 숭고함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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