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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an 11. 2021

12월의 몰타, 노을 진 지중해를 산책하다

따사로운 겨울 햇살 아래 자두와 몰타 해안가를 거닐다

힘들었던 2020년을 마무리하며 따뜻한 힐링의 연말을 보내기 위해 우리 가족은 몰타로 떠났다. 처음에는 우리가 사는 비엔나 인근이나 알프스 산맥이 있는 티롤 지역에서 성탄 휴가를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2차 락다운이 지속되면서 호텔과 식당이 모두 폐쇄되었다. 결국 우리는 고민 끝에 지중해의 보물로 불리는 몰타에서 올 연말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도착한 12월 23일에 몰타는 밝은 햇살로 이방인들을 반겨주었다. 보통 일주일에 3일은 맑고 나머지는 흐리고 비가 내리는 게 몰타의 일반적인 겨울 날씨인데, 우리가 머문 6일 동안 정말 다행스럽게도 하루만 빼고 모두 화창했다. 유럽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가장 그리운 것은 따사로운 햇빛이다. 스산하고 흐린 비엔나의 겨울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몰타는 밝게 빛나는 태양을 축복처럼 선사했다.


비엔나에서 몰타로 가는 직항 편이 없는 관계로, 우리는 뮌헨을 경유하는 장거리 여정 끝에 몰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와 몰타는 시간대가 같기 때문에 시차 적응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낯선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조그마한 섬나라인 몰타의 도로는 좁고 꼬불꼬불했으며 경사가 심했다. 여기에 택시 운전사의 현란한 운전 솜씨까지 더해지니 숙소로 잡은 호텔에 도착할 무렵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비엔나 시민들은 길거리나 공원에서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다닌다. 실내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이지만, 야외에서는 자유롭게 활보한다. 반면 몰타에서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립된 섬이고 의료 인프라가 취약하다 보니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동안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던 나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현지 상황에 군소리 없이 적응해야 했다.

  

낯설다는 것은 새로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호기심 많고 모험심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어느새 제 것인 양 즐기게 된다. 타지로의 여행을 좋아하고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이런 부류라고 할 수 있다.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평탄하고 느긋한 비엔나의 운전 문화와 자유롭고 목가적인 유러피언 라이프에 익숙해있던 나에게는 몰타의 새로움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몰타는 이탈리아 남단의 시칠리아 섬 바로 밑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지중해의 신선한 해산물과 이탈리아 특유의 화려한 요리 솜씨가 조화를 이룬 멋진 레스토랑들이 많다.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던 나는 몰타의 소문난 해산물 맛집에서 여행의 즐거움에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2차 락다운 이후 비엔나에서는 배달음식밖에 먹지 못했지만, 이곳에서는 근사한 바닷가 식당에서 와인을 곁들인 이태리 정통 요리를 맛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관광지로 소문난 지역이 항상 그렇듯이, 몰타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유구한 문화유적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머문 호텔 테라스에서 지중해의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본 순간,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맑고 잔잔한 지중해 물결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노을이 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바다와 구름,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힘들게 떠나 온 여행길을 위로받았다.


도착 다음 날, 우리는 본격적으로 지중해 바닷가를 거닐었다. 아쉽게도 몰타의 해안은 완만한 모래사장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와 방파제로 이루어져 있다. 섬 어딘가에 모래언덕이 있는 바다가 있긴 하지만, 우리 호텔 근처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떠랴. 나와 아내, 주니와 자두는 점심 식사 후 바닷가로 가는 길을 따라 신나게 산책을 나섰다.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자두


방금 물놀이를 해서 털이 젖은 채, 서서히 노을 지는 바닷가 바위해변에 한껏 폼 내며 서 있는 자두


지중해 파도가 바위를 넘실거리는 해안가로 접어드니 바닷가 특유의 짭조름한 냄새가 날아왔다. 간혹 거대한 바위 사이를 건너뛰는 모험도 곁들여가며 우리는 바다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경험한 자두는 잔잔한 파도에도 깜짝 놀라 도망쳤다. 겨우 물가에 다가가 발을 담그더니 짠 내음에 연신 발을 핥았다. 도나우 강에서는 자신 있게 물속으로 뛰어들던 녀석에게도 지중해 바다는 예사롭지 않았나 보다.


바닷가 바위 곳곳에 편안히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저 바다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우리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각자 편한 바위 언덕에 앉아서 바다를 쳐다보았다. 기대에 부풀어 시작한 비엔나 생활과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비상사태 등 전혀 예상치 못했던 2020년이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힘들게 비행기 이동을 한 만큼, 우리뿐만 아니라 자두에게도 이번 여행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나와 주니는 열심히 노력했다. 몰타가 말티즈의 출생지인 까닭에, 길을 가다가 말티즈 자두의 고향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도 컸다. 하지만 정작 몰타에서 토종 말티즈를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길고양이들과 마주친 자두는 겁이 나서 연신 짖어대기 바빴다.


비엔나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몰타에서 길을 걸어가다 보면 다른 개들을 종종 만났다. 그럴 때마다 자두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냄새를 맡고 반가워했다. 몰타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관광객들에게도 자두는 항상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호텔 로비에서는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체온을 항상 체크했다. 우리와 함께 다니는 자두는 체온 체크하는 직원과 어느새 친해졌는지 볼 때마다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저녁 식사 후 호텔에 머물면서 자두와 야간 산책을 하는 코스는 호텔 밖 거리를 걷다가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와 야외수영장 근처를 거니는 순서였다. 호텔 바깥에 있는 거리 잔디밭을 걷다 보면 자두는 용변을 시원하게 해결했다. 비엔나 잔디에 비해 몰타 잔디는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고 조금 더 억센 편이었다. 무사히 배변 미션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몰타의 야경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바깥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바라본 몰타의 야경


호텔 야외수영장 인근 모래밭에서 한창 모래파기 놀이를 하다가 잠시 포즈를 취한 자두


밤 산책을 하다가 호텔 야외수영장에 살짝 발을 담근 자두


호텔 3층에는 야외수영장으로 나가는 출입구가 있다. 나와 주니는 매일 밤마다 야외수영장 근처의 잘 정돈된 산책로와 모래밭에서 자두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엔나에서는 마음껏 즐기지 못한 모래파기 놀이를 몰타에서 원 없이 게 된 자두는 마냥 행복해 보였다. 자두가 정신없이 모래밭에서 뛰어놀고 있는 동안에 나와 주니는 썬베드에 누워 몰타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무수한 별들을 감상했다.


2020년이 저물어가는 12월의 끝자락에, 우리는 자두와 함께 몰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따뜻한 크리스마스 추억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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