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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Aug 23. 2020

프라하의 말티즈, 카를교를 거닐다

체코 프라하에서 자두와 함께 여행한 2박 3일

<프라하의 연인>. 지금도 포털 검색창에 프라하를 치면 가장 상단에 뜨는 이 작품은 2005년 가을 국내 시청자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던 TV 드라마다. 프라하를 배경으로 현직 대통령 딸(전도연)과 말단 형사(김주혁)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이 18부작 주말드라마는,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전작인 <파리의 연인> 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평균 30% 이상의 시청률을 올린 <프라하의 연인> 덕분에, 드라마 방영 이후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풍경과 낭만적인 사랑의 이미지가 어우러진 멋진 도시로 각인되었다. 프라하가 동유럽 국가의 많은 도시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은 로맨틱한 관광지로 손꼽히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잘츠카머구트에 이어 올여름 두 번째 여행지로 프라하를 선택했다. 비엔나에서 차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프라하는 코로나19로 인해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된 상태에서 그나마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외국 도시 중 하나였다. 비록 <프라하의 연인>이 아닌 <프라하의 강아지>가 주인공인 여행이지만, 우리 가족은 부푼 기대를 안고 매력적인 도시 프라하로 출발했다.




생각해보니 2012년 프라하를 처음 여행하고 난 후 8년 만의 재회였다. 그때는 친구네 가족과 함께 다녀왔는데 가이드 투어로 주요 관광명소를 정신없이 구경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이번에는 우리 가족만 오붓하게, 자유롭게,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을 여행 콘셉트로 잡았다.


프라하로 가는 1번 고속도로는 차선의 절반이 공사 중이었다. 꼬불꼬불하고 비좁은 임시 차로를 따라 힘들게 운전해서 겨우 도착한 프라하는 8년 전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2박 3일 동안 머물 호텔에 차를 주차한 후, 트램을 타고 프라하 시내 구경에 나섰다.


아빠 품에 안겨 트램을 타고 가는 자두. 프라하에 온 게 무척 기쁜 모양이다.  


서울에 한강이 흐르고 비엔나에 도나우강이 있다면, 프라하에는 블라타강이 도시를 유유히 가로지르고 있다. 우리는 프라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 노천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비엔나에 비해 물가가 싸면서도 음식 맛이 뛰어났다. 어딜 가도 강아지가 목을 축일 수 있는 물그릇을 가져다주는 정성에 한 번 더 감탄했다.


프라하 특유의 붉은색 벽돌 건물과 이제 막 노을이 지는 하늘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따가운 여름 햇살을 피해 어둑어둑해질 무렵 카를교를 찾았다. 카를교는 1402년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6개의 아치가 다리를 떠받히고 있고 30개의 성인상이 다리 양쪽 편에 세워져 있다. 너비 10미터, 길이 521미터의 카를교는 항상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다리다.  


우리가 방문한 밤 9시 무렵에도 카를교를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가족, 친구, 연인 등 관계는 제각각이어도 모두들 밝은 표정으로 카를교의 야경을 즐기며 소중한 추억을 쌓고 있었다. 멀리 프라하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배경으로 자두와 함께 다리를 거닐다가 프라하의 중심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했다.  


바츨라프 광장의 바츨라프 1세 기마상 앞에서 찍은 주니와 자두의 다정한 모습


자유롭게 여행을 하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 속에서 의외의 행운을 얻기도 한다. 제대로 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반대방향으로 가는 트램에 앉아서 절경을 보게 되었다거나,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되었다거나 등등.


프라하 시내 구경을 하러 나가던 참에 비가 제법 내려서 잠시 몸을 피한다고 들어간 카페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경험을 했다. 세상에나 케이크가 이렇게 예쁘고 맛있다니! 게다가 주인아저씨는 얼마나 친절하던지. 우리는 촉촉이 비 내리는 프라하 거리를 바라보며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우리는 너무나 맛있는 케이크 세 조각을 주문했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우리는 프라하를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다.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프라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거듭 감탄했고, 바츨라프 광장의 번화한 대로변을 걸으며 체코의 화려한 현재와 더 위대했던 과거를 생각했다. 천년 이상의 세월을 버텨온 고색창연한 프라하성에 올라 옛 보헤미아 왕국의 영광을 회상하기도 했다.


프라하성 돌 언덕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자두


계속 걸어 다니다가 간간히 트램을 타고 이동한 프라하 투어를 우리 자두는 너무도 씩씩하게 잘 따라다녔다. 바츨라프 거리를 활보하며 지나가는 프라하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말티즈의 매력을 맘껏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자두에게는 이번 프라하 도보여행이 아무래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빠 품에 안겨 프라하 시내를 감상하는 자두의 멀뚱멀뚱한 표정이 우습기만 하다.


아빠 등에 얼굴을 기대고 프라하 시내를 구경하고 있는 자두


프라하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을 하는 동안, 정장 차림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로비 경비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두는 대형 카펫에 시원하게 오줌을 쌌다. 다음날 다시 만난 정장맨은 아직도 남아있는 자두의 오줌 흔적을 가리키며 싱긋 웃어주었다. 프라하에서 내가 만난 체코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친절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엔나로 돌아오는 길을 검색하니 내비게이션이 공사 중인 1번 고속도로를 우회하는 2차선 국도를 안내해 주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번화한 프라하 거리에서 볼 수 없었던 체코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뒷좌석 이동형 캔넬 안에 얌전히 앉아서 조용히 밖을 쳐다보고 있는 자두에게 이번 프라하 여행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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