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크트볼프강과 할슈타트에서 자두와 함께 보낸 3박 4일
나와 주니가 꿈꿔왔던 로망이 드디어 실현될 날이 왔다. 강아지와 함께 가족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강아지를 지인에게 부탁하거나 전용 호텔에 맡겨놓고 여행을 떠나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우리가 없는 동안 아이가 받았을 극심한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팠다.
유럽에서는 이런 걱정을 할 일이 거의 없다. 물론 한 달 이상 외국에 여름휴가를 가게 되면 개 보호시설에 맡기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반려견을 데리고 다닌다. 아주 작은 퍼피는 가방에 넣어 다니고, 자두 정도 크기의 강아지는 이동용 켄넬에 넣어서 차로 안전하게 여행한다.
강아지와 함께 여행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호텔 예약을 하면서 반려동물을 허용하는지 체크하는 일이다. 유명 관광도시의 예쁘고 자그마한 부티크 호텔은 반려동물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비해 유럽의 대형 호텔들은 대체로 반려동물 투숙을 허용하는데, 이 경우 반려견 숙박비를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
우리가 투숙하려고 예약한 호텔은 다행히 강아지와 함께 지내는 것을 허용하는 곳이었다. 호텔 본관과 조금 떨어진 호숫가에 위치한 별채 건물이어서 혹시 강아지가 짖더라도 아무 상관없었다. 3박 4일 동안 자두가 먹을 사료와 간식, 장난감 등을 챙기고 나니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중부의 숲과 호수가 많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지역을 잘츠카머쿠트(Salzkammergut)라고 부른다. 잘츠부르크를 비롯해 장크트볼프강, 장크트길겐, 할슈타트, 바트이슐, 그문덴 등이 잘츠카머구트를 대표하는 도시들이다. 우리는 고민 끝에 장크트볼프강과 할슈타트를 이번 여름휴가 장소로 결정했다.
비엔나에서 장크트볼프강까지는 차로 3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아침에 출발하여 중간에 휴게소에서 브런치를 먹고 잘츠카머구트의 거대한 호수지역으로 들어서니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알프스 산맥의 지류와 크고 작은 호수가 만든 자연의 절경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장크트볼프강(St.Wolfgang)은 976년 이 지역에 첫 교회를 세우고 1052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이 작은 휴양도시는 샤프베르크 산기슭에 있는 볼프강 호수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이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유서 깊고 아름다운 호수마을 장크트볼프강에서 우리의 자두는 단연 스타가 되었다. 이곳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은 난데없이 등장한 생후 3개월의 말티즈 퍼피를 보고는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좀처럼 감정을 숨기지 않는 여기 사람들은 붙임성 좋은 자두 앞에서 귀엽다는 뜻의 "쥬스(Süß)!"를 연발하며 발길을 멈추었다. 사실 비엔나 우리 집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두와 동네 산책을 했지만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반겨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나와 주니는 뿌듯한 마음에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숫가 구름 낀 산을 바라보며 산책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비엔나에서 줄 끌고 산책하는 것에 어색해하던 자두는 장크트볼프강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예뻐해 주니 제법 신이 났는지 씩씩하게 잘도 걸어 다녔다.
유럽 사람들은 여행지에 반려견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오히려 관광지에서 여러 종류의 개들을 만날 수 있다. 아직 어리고 호기심 많은 자두는 산책을 하다가 다른 개만 보면 뛸 듯이 반갑게 다가갔다. 덩치 큰 리트리버와 조그마한 말티즈가 어울리는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볼프강 호숫가를 산책하다 보면 강가에 청둥오리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호수도 청둥오리도 난생처음 보는 자두에게는 모두가 신기할 따름이다. 차마 물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낑낑거리다가 엎드려서 멀뚱하게 청둥오리를 쳐다보는 자두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여행 이튿날, 빨간색 샤프베르크 산악열차를 타고 1,783미터 정상에 올랐다. 말 그대로 칙칙폭폭 기적을 울리는 톱니 궤도식 옛날 기차를 타고 산꼭대기에 도착하니 잘츠카머구트의 수많은 호수와 산맥들이 그림처럼 내 눈 앞에 다가왔다.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던 장크트볼프강에서의 추억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할슈타트로 출발했다.
할슈타트(Hallstatt)는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름다운 호수와 소금광산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고대 켈트어로 소름을 뜻하는'할(hal)'과 마을을 뜻하는 '슈타트(statt)'가 합쳐진 이곳은 맑고 거대한 호수에 비친 마을 모습이 데칼코마니를 연상시킬 정도로 환상적이다.
여름휴가 시즌이어서 그런지 우리는 주차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 겨우 차를 대고 나서려는데 바로 옆 잔디에서 자두가 고니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호수를 헤엄치다가 잔디밭에서 한적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던 고니는 난데없는 꼬마 불청객이 등장하자 "쇅~" 소리를 내며 겁을 주었다.
할슈타트에 머문 하루 동안 우리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고생을 했다. 하지만 한참 소나기가 내린 뒤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자 상큼한 공기 냄새가 물씬 풍겼다. 동화 속 마을 같이 아기자기한 할슈타트 거리를 자두와 함께 천천히 산책했다.
통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와 크림 스파게티로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할슈타트의 맑고 투명한 호수를 감상했다. 자두는 옆 테이블에 앉은 어린 꼬마에게 한동안 정신이 팔렸다가 이내 얌전히 앉아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행을 경험한 자두.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적응하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했다.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종류의 개 친구들, 환하게 맞아준 사람들, 호숫가의 고니와 청둥오리, 산악열차와 유람선. 이 모든 것들이 자두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새겨졌으면 좋겠다.
언제나 여행은 새로운 만남과 추억을 남겨준다. 우리에게도 그리고 자두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