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에서 다양한 개들과 함께 배우는 생생한 사회화 교육
우리가 말티즈 꼬물이 자두를 운명처럼 만난 곳은 비엔나에서 남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Hundebetreuung Blumau)'라는 유기견 보호시설이다. 자두를 포함한 4형제는 태어나서 6주가 지난 후 엄마 곁을 떠나 이곳에 맡겨졌다. 정확하게 7월 1일에 자두를 데리고 왔으니 이제 두 달 정도 되었다.
나와 내 딸 주니는 진작부터 자두와 함께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엄마와 헤어져 3주 정도 지내면서 정들었던 고향 같은 그곳을 자두에게 다시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강아지 입양을 위해 이틀 동안 머물렀던 보호시설에서 따뜻한 정을 나누었던 다른 개들이 지금도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의 주인아주머니 마리온과 연락을 하던 주니가 기쁜 표정으로 다음 주 수요일 오후에 방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마리온에게 감사의 선물로 맛있는 딸기 케이크를 준비했다. 방문 전날, 자두를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털도 정성스럽게 빗어주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우리는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로 출발했다.
탁 트인 하늘과 아름드리나무를 배경으로 시원하게 드라이브한 후,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비밀스러운 숲길 같은 좁은 도로를 살짝 빠져나오자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가 우리 앞에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씩씩하고 인자한 마리온이 문 밖으로 나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보호시설의 터줏대감인 대형견들도 문 앞으로 몰려와 짖으며 우리를 환영했다.
마리온은 행여 자두가 놀랄까 봐 먼저 온순한 개들만 입구에 풀어놓고 자두가 스스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많은 개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자 겁이 나서 문 바깥으로 피하던 자두가 천천히 주위를 탐색하더니 마침내 어린 시절 함께 보낸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두가 들어가자 대형견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개들이 자두에게 다가가서 냄새를 맡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몹시 당황한 자두는 꼬리를 내리고 우리 곁으로 숨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두에게 관심을 보이던 개들은 각자 볼일을 보며 한가로이 거닐거나 주니 곁에 모여서 쓰담 쓰담해달라고 몸을 비비곤 했다.
어느 정도 적응의 시간이 지나자 이제 자두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그곳에서 다시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마리온이 자두의 친구가 될만한 3개월짜리 어린 퍼피 4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와이어헤어드 비즐라(Wirehaired Vizsla)라는 헝가리 태생의 희귀 품종이었다. 귀엽고 앙증맞은 퍼피들과 한참 즐겁게 놀던 자두는 닥스훈트 암컷과도 눈이 맞아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하며 정신없이 놀았다.
참고로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에 사는 개들 중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녀석은 릴리라는 이름의 불도그와 샘이라 불리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릴리는 20킬로그램의 육중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꼭 주니의 무릎 위에 앉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다리가 불편한 샘은 우리가 만져주면 항상 배를 보이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와 주니는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가 자두에게 정말 좋은 훈데슐레가 될 수 있겠다고 마리온에게 말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어린 강아지들이 나이 많은 개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며 우리말에 적극 공감했다. 훈데슐레가 비슷한 또래끼리의 교육공간이라면,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는 다양한 품종의 어린 강아지와 대형견들이 함께 생활하며 체득하는 생생한 사회화 장소인 셈이다.
어찌 보면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는 다사다난한 우리 인생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방문하기 불과 2시간 전에 주인에게 버림받고 이곳에 맡겨진 셰퍼드 한 마리가 입구 쪽만 바라보며 서글픈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리온은 다른 개들이 성급하게 접근하지 못하게 야단치면서, 조용히 셰퍼드 옆으로 다가가 세심한 손길로 보살펴주었다.
다른 개들이 모두 우리를 반길 때 마당의 긴 의자 아래에 믹스견으로 보이는 개 한 마리가 가만히 누워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우리에게 올 기색이 없던 녀석은 마침 보호자가 찾으러 오자 입구로 달려 나가 세상에 그보다 기쁜 일이 없을 정도로 겅중겅중 뛰었다. 일편단심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믹스견에게 다른 사람이 조금도 관심 있을 리 없었다.
이곳에는 다리가 불편한 샘 말고도 멋지게 생긴 화이트 래브라도 리트리버 성견이 한 마리 더 있다. 알고 보니 다음 달이 출산 예정인 예비 엄마였다. 마리온 말로는 아빠가 브라운 색이어서 브라운과 화이트가 믹스된 귀여운 새끼들이 태어날 거란다. 건강하게 순산하기를 기원하며 우리 곁에 다가온 순둥이 리트리버를 정성스레 어루만져 주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마리온은 9월에도 꼭 찾아오라며 가능한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때 오면 태어난 지 2주 정도 된 레브라도 리트리버 강아지 12마리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 많은 강아지와 대형 개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계속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해주고 싶어 하는 마리온의 배려가 정말 고마웠다.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를 나와 차를 타려다가 아쉬운 마음에 자두와 함께 근처 숲길을 산책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옴직한 신비한 숲길에 들어서니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피톤치드 내음을 물씬 맡으며 자두와 여유롭게 숲 길을 거닐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는 소설 속 앨리스가 우연히 발견한 바로 그 동화 같은 이상한 나라가 아니었을까? 나와 주니는 자두와의 동행이 아름답고 행복하게 이어지길 바라며 집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