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나는 나름 잘 나가는 문학소년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백일장 장원을 비롯해 다수의 글짓기 상을 수상했고, 교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훗날 소설가로 명성을 날린 국어 선생님이 감탄할 정도로 글 솜씨를 인정받은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책 읽는 시간이 행복한, 감수성 풍부한 학생이었다.
이후 나는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공공 연구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분석력과 논리성을 겸비한 리포트작성을 요구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예전에 내가 자부심을 가졌던 문학적 소질은 논문 집필이나 연구활동에 되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글을 쓴다'는 행위와 결과물은 동일하지만, 과정과 스타일이 전혀 다른 글쓰기 방식 사이에서 슬기로운 해법을 찾으려는 나의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뜨겁게 차올라서 마침내 경계를 뛰어넘을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이 임계점이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은 임계점 근처까지 도달했다가 결국 포기하고 사그라드는 사람들과 악착같이 노력해서 결국 임계점을 돌파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로 양분할 수 있다. 문제는 임계점까지 가기 위해 절차탁마의 기나긴 자기 수련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충분한 내공 없이 섣부르게 경계선을 넘어섰다간, 호된 질책과 비판 속에서 깊은 좌절의 늪에 빠지게 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좋은 필력의 기본은 방대한 독서에서 만들어진다. 만화책이나 위인전 수준의 책 읽기로부터 시작된 나의 독서 편력은 삼국지와 세계명작선을 거쳐 어느덧 직접 마음에 드는 작가를 선택하여 책을 사서 읽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 시절, 나의 문학 감수성을 자극했던 작가는 최인호, 이문열, 조정래 그리고 은희경이었다.
'영원한 청년 작가'로 불리는 최인호는 모차르트와 비견될만한 천재 소설가였다. <불새>와 <깊고 푸른 밤> 같은 그의 작품을 정독하며 은유와 직유가 교차되는 경쾌한 문장들을 직접 필사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이문열은 초기와 말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작가다. 그의 초창기 작품인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레테의 연가> 등은, 읽으며 전율을 느낄 정도로 깊이 있는 지식과 탁월한 서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말년에 보여준 그의 모습은 보수를 넘어 극우 전사에 가까웠고, 그에 대한 나의 관심도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은희경의 <새의 선물>, 젊은 시절 나에게 충격을 준 대표적인 소설이다
조정래는 문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묵직하게 입증했다. 글은 책상 앞에서만 쓰이는 게 아니라 철저한 고증과 발로 뛰는 자료조사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불후의 대작 <태백산맥>을 읽으며 배울 수 있었다. <새의 선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은희경은 나에게 힐링을 주는 작가다. 위트와 풍자가 담긴 재기 발랄한 문체의 그녀 작품들은 나에게 너무 맛있어서 아껴두고 천천히 먹고 싶은 간식 같은 그런 존재다.
어디 이들뿐이랴. <현대문학>과 <창작과 비평> 같은 문예지와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탐독하며 단편소설의 매력에 푹 빠지기도 했다. 우연히 발견한 개성 넘치는 작가의 글을 접하고 놀라운 필력에 감탄할 때도 많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1Q04>를 통해 몽환적이면서 강한 흡입력을 지닌 글의 매력을 음미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으며 작가가 지닌 무한한 상상력의 끝은 과연 어디일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지금 나의 글쓰기에는 이 모든 위대한 작가들로 받은 감동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은는이가' 같은 조사를 사용할 때에도 몇 번씩 고민하고, 상투적이거나 반복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글. 과시적이지 않으면서도 지적 재미를 주고, 읽으면서 함께 고민할 수 있게 하는 문장. 글쎄, 마음은 저 높이 올라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나의 글은 영 신통치 않다.
대학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사회과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나의 글쓰기 방식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형용사와 부사를 비롯해 주관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일체의 표현방식이 금기시되었다. 주어와 목적어, 술어로만 구성된 차갑고 건조한 문장을 사용해서 분석한 결과를 차분히 설명해야 했다.
논문 중심의 발표와 토론 과정에서, 검증되지 않은 과도한 주관적 표현과 근거 없는 개인 주장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 한때 문학청년의 꿈을 키우던 나는 예비 사회과학자로서 학문 글쓰기의 기본과 관행을 존중하기로 했다. 감정의 미묘한 흐름을 포착하기보다는, 각주와 참고문헌에 근거하여 정제된 논리를 구사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파묻힌 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한자식 개념과 어색하기 짝이 없는 번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동료 학자들이 안타깝게 보였다. 군데군데 비문과 오문이 뒤섞였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논문을 발표하는 교수들의 무딘 문장력을 지적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니 당연한 거 아니야? 내용을 봐야지 왜 사소한 표현을 보고 그래?"
당시의 혼란스러운 나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었던 작가는 강준만과 유시민, 고종석이었다. 사회과학자로서의 이성적인 힘과 논리가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닌 미려한 표현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사회과학 서적은 우리 마음속 두꺼운 얼음을 산산이 깨어낼 수 있는 도끼 같은 존재여야 한다. 기자이자 교수였던 리영희가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수행한 바로 그 역할을 강준만은 <김대중 죽이기>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환시대의 논리>와 <김대중 죽이기>는 내 마음속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이 큰 영향을 끼쳤다
글을 쓰는 방식에 정답은 없다. 누구에게는 이성을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고, 다른 누구에게는 감정을 표현하는 소중한 수단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10대와 20대 시절에 나는 문학적인 글쓰기를 선망하며 소설과 에세이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30대와 40대에는 이성과 논리를 무기로 세상을 분석하고 작지만 의미 있는 제언을 하고자 노력했다. 이제 나는 50대로 접어들었다.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글쓰기,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습작은 무엇일까?
2020년 6월 17일은 내 글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며 세상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로부터 1년 이상이 지났다. 1주일에 1~2편씩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내 브런치에는 이제 90편 이상의 소중한 나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일상을 소재로 한 감성 에세이부터 시사경제를 다루는 칼럼까지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차곡차곡 나의 글 창고를 채우고 있다.
가급적 쉽게 읽히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쓰기를 지향하지만, 좀처럼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 학문 글쓰기를 연마하면서 몸에 밴 현학적인 문체와 딱딱한 문장을 퇴고 과정에서 부단히 고치려 하지만, 기대만큼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만의 시각이 담긴 나만의 문장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는 항상 "무엇을 쓸 것인가?"에 집중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다. 결국 최선의 방법은 나의 글쓰기가 습작이 아닌 집필이라는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표현을 가다듬고 문장을 구상하며 꾸준히 필력을 연마하는 것밖에 없다. 진열대에 배치된 책들과 테이블에 앉아 독서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종이 냄새 풀풀 나는 대형서점에 나의 책도 함께 놓여 있는 그날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