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 시절 만화영화 시리즈물에 푹 빠졌던 추억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주로 TV로 보았고 요즘에는 휴대용 태블릿이나 모바일폰으로 본다는 차이만 있을 뿐. 내가 한창 TV 만화를 즐겨보던 1960~70년대에는 일본에서 만든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우주소년 아톰도,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도, 미래소년 코난도, 은하철도 999의 철이도,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주인공 모두 사실은 일본 국적의 아이였던 것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영되는 영유아 대상 애니메이션 시장을 한국이 선도하게 된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로 서서히 기지개를 켜더니, <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 <안녕 자두야>, <변신자동차 또봇> 등이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유아들에게 한류 애니메이션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난공불락처럼 넘기 힘든 벽이 있으니, 바로 극장용으로 제작되는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다. 20세기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만족시킨 글로벌 양대산맥은 단연 디즈니와 픽사가 이끄는 미국과 지브리 스튜디오로 대표되는 일본이다. 특히 아니메 또는 재패니메이션으로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하며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과 가족 단위의 관객층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요즘 나는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감상한다. 혼자 집에서 조용히 시청하다 보면, 극장 개봉 시기에 아이들과 시끌벅적하게 관람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짧게는 3~4년 전, 길게는 20년 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을 지금 다시 보면서, 처음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가슴 가득 밀려온다. 당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별로라고 생각했던 작품의 놀라운 진면목을 발견하기도 한다.
개봉 당시의 신선한 충격과 차분한 재감상을 통해 나만의 베스트 3을 선정했다. 혹시라도 아직 보지 못했거나 예전에 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이 있다면 꼭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나에게 큰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 대표작품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괴물의 아이>다.
먼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이다. 1941년생으로 올해 80세가 된 이 노감독은 일반 관객뿐만 아니라 당대의 거장들에게서도 존경을 받는 위대한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다. 2002년에 개봉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면서 그의 이전 작품들도 뒤늦게나마 작품성에 걸맞은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국내 개봉 포스터
사실 20여 년 전에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서 처음 보았던 이 작품은 내게 그다지 큰 감명을 주지 못했다. 30대의 나에게는 현실과 유리된 신령들의 세계가 대단한 흥밋거리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넷플릭스로 차분히 다시 감상하면서, 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그토록 대단한 평가를 받았는지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에피소드들의 의미와 등장인물에 담긴 메타포가 가슴 깊게 스며들었다.
애니메이션만큼 인간의 상상이 무한하게 펼쳐질 수 있는 장르는 없다.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얼마든지 묘사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선사하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와 일본 특유의 애니미즘이 조화를 이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찌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정령 신들의 세상을, 생동감 넘치는 어드벤처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완벽한 스토리텔링 속에서 긴장감과 재미, 해피엔딩과 감동을 모두 안겨주었다.
1988년에 제작된 <이웃집 토토로>는 시골로 이사 간 어린 자매의 일상을 소박하면서도 신비스럽게 묘사한 작품이다. 누구나 유년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기에, 도토리나무 요정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 숯검댕이를 보며 자연스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꼼꼼한 작화를 바탕으로 아름답고 잔잔하게 그려진 시골 풍경과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멋진 상상의 세계가 조화를 이룬 이 영화는 몇 번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명작이다.
포스트 미야자키를 대표하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 작품인 <괴물의 아이>는 2015년에 개봉되었다. 괴물들의 세상인 주텐가이와 인간 세상인 시부야를 배경으로 주인공 렌(큐타)이 성장하는 과정을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화려한 액션으로 보는 내내 유쾌한 긴장감을 유지했고, 결말 부분에는 인간의 마음속에 담긴 선과 악의 대립을 진지하게 다루었다.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 <괴물의 아이>
일본과 애니메이션을 합성한 재패니메이션은 이제 명실상부한 글로벌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다. 고유한 문화현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성과를 거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제작환경, 주제 다양성, 스토리텔링, 감독의 역량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물론 이 각각의 요인들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첫째, 제작환경. 일본은 아니메 이전에 망가라 불리는 출판만화 시장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망가를 원작으로 하거나 망가 출신 스태프들이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인다. 사이버펑크의 시조 격인 <공각기동대>와 스포츠 학원물의 상징인 <슬램덩크> 모두 뛰어난 망가 원작이 존재했기 때문에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망가가 조성한 내수시장의 힘이 있었기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아니메 제작도 가능했다.
둘째, 주제의 다양성. 청소년 대상의 순정물, 건담류의 거대 로봇물, 사이버펑크 계열의 공상과학물,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성인 대상 하드코어물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순수한 동심과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담은 가족 대상 애니메이션까지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흥행에도 성공한 아니메는 주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이지만, 그 저변에는 일본 특유의 오타쿠 문화가 존재한다.
셋째, 스토리텔링. 선한 주인공과 나쁜 상대방이 대립하다가 주인공이 온갖 역경과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승리하는 스토리는 진부하고 식상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는 사악한 캐릭터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스토리가 흥미롭게 전개되면, 상투적인 캐릭터 대립 없이도 얼마든지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 감독의 역량.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재적인 크리에이터의 존재 여부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불세출의 인물이 있었기에 재패니메이션이 존재할 수 있었다. 기획, 시나리오, 콘티, 작화까지 1인 10역을 담당하는 그의 작품들 속에는 페미니즘과 반전주의, 자연과의 조화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필적할 수는 없지만,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재능과 열정을 갖춘 뛰어난 감독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우려먹을수록, 발효될수록 제대로 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된장찌개와 김치가 대표적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다만 숙성의 대상이감상의 주체인 우리라는 점에서 갈라진다. 영화를 보는 내가, 마치 음식처럼, 세월에 마모되고 세상 보는 눈이 깊어지면서 과거와 다른 심미안을 갖게 된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이동하면서 같은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변하는 과정은 흥미롭기만 하다.
30대 초보 아빠 시절,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 가서 정신없이 감상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50대 중년의 나이에 혼자 조용히 감상하니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이 몰려왔다. 넉넉한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보니, 아니메 특유의 애니미즘을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얼마나 위대한 크리에이터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미야자키 하아오를 필두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들은 아니메를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대중문화 장르로 승격시켰다. 훌륭한 문화콘텐츠의 특징은 시대를 초월해서 밝게 빛난다는 사실이다. 영화관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 재패니메이션 작품들을 이제 나는 혼자 거실에서 미소 지으며 다시 감상하고 있다. 아니메의 매력에 퐁당 빠진 나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TV를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