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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Apr 28. 2021

문화 감수성, 깊고 푸른 세계로의 초대

문화적 취향을 뛰어넘어 문화 감수성 충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

사람 얼굴이 제각각인 것처럼, 문화적 취향도 저마다 다르다. 클래식 애호가와 트로트 열성팬이 공존하고, 시사 다큐를 즐겨보는 사람과 드라마에 빠져 사는 시청자가 함께 살아간다. 각자 선호하는 문화 장르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고, 우열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더군다나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이 정도의 조언은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당신이 경험한 것보다 다양하고 세련된 문화가 얼마든지 존재한다고.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취향이 아닌 감수성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된다. 개인 차원의 문화 감수성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직접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단련되고 향상된다. 교과목을 단순 암기하는 방식이 아닌,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스스로 평가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물관, 미술관, 서점, 영화관, 공연장을 연인이나 친구끼리 그리고 가족 단위로 즐겨 찾아가는 일상이 소중한 까닭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의 관점에서 본 문화 감수성은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나 인프라를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문화예술 분야의 뛰어난 창작자들을 얼마나 많이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도시들은 경제적인 풍요와 럭셔리 쇼핑보다 품격과 전통이 담긴 문화예술 유산을 자랑한다. 도시를 빛나게 하는 것은 최첨단의 초고층 빌딩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예술가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젊은 시절, 나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즐겨 보며 연출가의 꿈을 키웠다. 극단 자유의 워크숍 단원에 선발되어 6개월 동안 맹훈련을 받고 실제로 공연을 한 경험도 있다. MBC 아카데미에서 연출 공부를 하며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세상은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터 아닌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나에게는, 연기든 연출이든 대본 작업이든 뭔가를 창작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숙성을 위한 숨 고르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연극판에서 너무도 열악한 환경을 직접 목도한 충격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서 '밥벌이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가면서, 여전히 나는 문화예술의 매력에 빠진 채 남몰래 실력을 연마하고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느끼는 문화 경험은 내가 진정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기쁨이다.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문화예술 작품들을 접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느꼈고 삶의 깊이를 더했다. 투자한 시간과 비용 대비 가장 큰 만족감을 안겨준 문화 장르는 단연 영화다. 영화는 나에게 아름다운 판타지를 선사하기도 했고, 가려진 삶의 진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나는 볼만한 영화가 개봉하면 그 즉시 멀티플렉스 극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예매해서 나만의 시네마 천국으로 빠져들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 이준익이다. 2005년 개봉된 <왕의 남자>를 보고 난 후, 나는 엔딩 자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후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에는 걸작과 망작이 뒤섞였지만, 2015년 <사도>, 2016년 <동주>, 2017년  <박열> 그리고 올해 <자산어보>를 연이어 선보이며 그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한 느낌이다. 흑백 필름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를 잔잔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이준익표 영화를 한 번쯤 만나보기를 권한다.     


여유로운 주말 아침, 나는 벅스뮤직에서 잔나비의 감성 충만한 노래를 들으며 브런치를 먹는다. 기분을 업하고 싶을 땐 악동뮤지션이나 아이유의 경쾌한 음악을 선택한다. 가끔 옛 추억에 잠기고 싶으면 이소라의 잔잔한 음색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팬텀싱어> 라포엠의 웅장한 하모니에 심취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BTS나 힙합전사들의 비트 강렬한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인다.  


오페라의 유령(좌)과 위키드(우) 공연장면


클래식과 뉴에이지, 가요와 팝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 JTBC의 참신한 기획으로 탄생한 <비긴어게인>, <팬텀싱어>, <슈퍼밴드> 같은 음악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순간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이다. 뮤지컬과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며 느끼는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오페라의 유령>과 <위키드> 오리지널을 보고, 나중에 국내에서 라이선스 작품을 감상하는 맛은 흥미롭기만 하다.


서로의 문화적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만 편식하면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듯이, 좀 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서 옥석을 구분할 수 있는 문화 감수성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히트 공식을 따른 상투적인 구성이나 뻔한 결말의 유치한 작품을 배제하고,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할 만한 작품을 고르는 심미안을 길러야 한다. 위대한 아티스트는 문화 감수성을 갖춘 안목 있는 시민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파리와 비엔나, 바르셀로나 같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명품 도시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뛰어난 문화예술 작가와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상징되는 파리는 두말할 필요 없는, 세계적인 예술과 낭만의 도시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로서, 19세기 유럽의 중심이었던 비엔나 역시 1년 내내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에서 관객들이 가득 찬 가운데 공연이 진행된다.


비엔나는 도시 면적의 절반 이상을 공원이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도시 중앙의 슈타트파크를 거닐다 보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슈베르트를 비롯한 유명 음악가와 미술가의 동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왕정시대의 국왕과 정치인, 난세의 영웅인 군인보다 문화예술계 장인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과 피카소 미술관을 직접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방문한다.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비롯해서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과감한 색채로 사람들의 눈길을 휘어잡는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람블라스 거리는 언제나 행위예술가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로 흥겹고, 가우디의 첫 작품인 가로등과 피카소가 즐겨 찾은 카페가 거리 한편에서 관광객을 맞이한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레이알 광장에 있는 가우디의 첫 작품 가로등(좌)과 피카소 박물관(우)


시대를 초월한 문화예술 작가들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담긴 작품들을 소중히 간직한 도시는 그 자체로 훌륭한 상품이자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주는 세계적인 명소가 된다. 초고층 스카이라인과 최첨단 서비스를 갖춘 도시에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 것밖에 없다. 도시를 상징하는 거리에 왕과 장군의 대형 동상이 자리 잡고 있고, 기껏해야 작자 미상의 옛 궁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서울에서 문화예술의 향기에 취하기란 불가능하다.


지난 세기말부터 천재적인 대중문화 크리에이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류'라는 K-컬처가 글로벌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국가주의적 산업논리에 매몰되어 있다. 문화를 경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정치와 경제에 온통 관심을 집중한 채, 문화예술을 국민복지 차원의 보조적인 역할로 국한한 국가에게는 피폐하고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평균 이상의 문화 감수성을 구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사람들의 문화 감수성을 높여줄 수 있는 멋진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다. 무대 뒤에서 편한 자세로 앉아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거나 응원하기보다, 직접 무대에 올라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때로는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하고 무관심 속에서 잊힌다 해도, 나만의 문화콘텐츠를 창작하는 '크리에이터'로 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감탄하는 것은 그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전업작가로서 루틴에 따라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소설 쓰는 시간과 수필 등 잡문을 작성하는 시간을 매일 일정하게 구분하고, 틈나는 대로 걷거나 달리며 체력을 기르는데 열중한다. 온갖 유혹에도 좌고우면 하지 않고 절제하며 규칙적으로 사는 방식을 이제는 나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재능과 노력이겠지만.


어느 분야든 진정한 프로페셔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과 함께 목숨을 걸 정도의 열정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무대 밖에서 남다른 문화적 취향과 감성 충만한 관객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한 지난 1년여 시간은 나에게 온몸의 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이제 나는 문화 감수성 가득한 시대를 만들기 위해 크리에이터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려 한다.


사족 하나. 이 글의 제목인 '깊고 푸른 세계'는 1985년에 개봉한 <깊고 푸른 밤>을 오마주 하기 위해 인용했다. 국산영화가 방화로 불리던 척박하고 메마른 문화 환경 속에서도, 이 놀라운 영화를 만든 최인호(원작, 각본), 배창호(감독), 정광석(촬영), 안성기와 장미희(주연)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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