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층간소음 보복을 겪으며
아파트 11층에 아이를 키우면서 항의 연락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도 아랫집에는 항상 예를 다했다. 과일을 박스로 사게 되면 항상 조금씩 담아 나눠 드렸고, 명절이면 작은 케이크를 사드리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며, 시끄러운 줄도 모르고 산다고 하셨다. 맞벌이라 낮에는 집에 없고 아이들은 다 커서 늦은 시간에야 온다며, 걱정말라고도 하셨다. 배려가 감사했다. 당연히 여기지 않도록 거실 전체를 덮을 정도의 매트를 늘 깔고 살았고 아이 방에도 늘 매트를 깔아 두었다. 그리고 아이는 신생아 시절을 제외하곤 늘 8시전에 잠이 드는 아이였다. 뒷꿈치로 못 걷게 했고 잠깐 놀 때에도 매트위에서 놀아야 된다고 늘 가르쳤다. 그렇게 적어도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 자식을 키우지는 않는다는 확실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지금 이 집을 사서 이사 오기 전까지
44평짜리 2층 아파트를 샀다. 우리에게는 첫 집이었고 귀하게 대하고 싶었다.
이사 전에 간단한 도배, 조명 정도만 손보고 들어왔다. 인테리어 시공을 하면서 미리 남편이 인사를 갔다. 백화점에서 신경써서 산 롤케이크를 들고
네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시끄럽지 않으시게 항상 조심시키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다녀오는 남편에게 어떤 분들이냐 물었더니, 대뜸 애 있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소리가 들렸나봐. 아랫 집에도 어린 아들이 둘 있더라. 지금처럼 조심하면서 살면 괜찮을거야. 라고 말했고 우리는 하던대로 시중에서 파는 거의 제일 두껍고 좋다는 매트를 거실에 깔고 살았고 아이방에도 늘 매트를 깔아 두었다. 식탁 의자에는 이삿날 엄마가 다이소에 가서 소음방지 스티커를 다 사서 붙여 주셨다. 조심 할 수 있는 건 다 미리미리 하는게 좋다고 하시며
조심한다고 조심하며 살았다. 그리고 아이는 늘 7시에 일어나 9시면 등원했고 4시에 하원하면 늘 우리와 놀이터를 가거나 산책을 가거나 하며 집에는 5시쯤 귀가했다. 그리고 7시부터는 목욕하고 책 읽다가 8시에 자는 누가봐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다. 조심한다고 조심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던 날 첫 인터폰이 울렸다.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연습을 하는 돌배기 아기 하나, 여자 셋이 모여 거실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잔잔한 음악을 하나 틀어놓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인터폰이 울렸다. 짜증 가득 섞인 목소리에 "아랫집인데요, 지금 너무 시끄러워서 저희 집 애가 울고 있거든요?"라고 "어? 저희 집이 아닌거 아닐까요? 제 친구들이 와 있긴 한데 거실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 중이거든요." "어쨋든 조용히 좀 해주세요. 오늘 뿐이 아니라 너무 시끄러워요.”
오늘 뿐 아니고 우리 때문에
아랫집 아이들이 짜증이 나서 울고 있다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오해를 풀고 싶은 좋은 마음이었다. 벨을 살짝 눌렀더니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내 또래? 나보다 한 두살 많으려나, 여자가 나왔다. "일단 평소에 시끄러우셨다니 너무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늘 들으시는 소음도 저희 집은 아닌 거 같아서요. 재즈 음악 틀어놓고 셋이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떨고 있었습니다." 했더니 "평소에도 진짜 너무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어요"라고 대뜸 지금이 아닌 시점을 대화에 끌어들인다. "네? 혹시 언제 소리가 많이 났을까요?" 했더니 자기 뒤로 우다다 뛰어 오는 아들한테 묻는다. 이제 막 초등학교 들어갔을 법한 정도의 아이였다.
"지난 주말에 내내 엄청 시끄러웠지?" 라고.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해 지금 울고 있다던 아들은 베시시 웃다가 "응? 안 그랬는데?"하니 애를 얼른 집으로 들여 보낸다. 안에서 아이들의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뭐지? 이런 아랫집의 반응은 살면서 처음이었기에 순간 이상하단 파악도 못하고 미안한 마음에 경황이없었다. 우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다 큰 애들이 운다는데
죄송한데 지난 주말에 토요일, 일요일 내내 시끄러우셨냐 물으니 금요일 밤부터 시작해서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정확히 날짜까지 물었고 하루중 언제쯤이 시끄러웠는지 요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있었던 이유는 우리 가족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강원도 여행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말씀하신 날짜 주말에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강원도 여행을 가 있었습니다. 혹시 믿지 않으실까 여기 사진 보여 드릴께요. 아이폰에 찍힌 아이 사진에 기록된 날짜, 시간, 그리고 장소까지 보여 줬더니 "아닌데, 윗집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어쨌든 주말 뿐만이 아니고요, 평소에도 너무 시끄러우니까 조심 좀 해주세요. 그리고 매일 저녁 일곱시에 무슨 소리를 그렇게 내시는 거예요? 아들이 둘이라면서요, 조심을 좀 하셔야죠." 라고 준비된 멘트를 뱉기 시작했다.
지금 시끄럽데서 내려 왔더니
지금 아닌 주말이, 주말도 아니라고 하니 평소에 시끄럽다고?
일단 저희 집에는 다섯살 된 아들이 하나 있구요, 일곱시는 아이 목욕하고 잘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늘 일곱시 반에서 여덟시면 잠이 드는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저희 집은 아닌거 같습니다. 라고 최대한 차분히 이야기 했더니 "아닌데? 그 집 아저씨가 처음 인사 왔을 때 아들 둘이라고 했는데?" ....남편이 없는 애를 하나 더 만들어서 이야기 했을리는 없고
그때 느낌이 왔다.
아, 윗집이 아니고
아랫집 잘 못 걸렸구나.
앞으로 쉽지 않겠다는 쎄한 느낌과 함께 저희 가족도 조심한다고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걸 안다. 그래도 조심하겠다. 하지만 말씀하신 소음이 다 저희집 소리는 아닌 것 같네요. 하고 돌아왔다. 내지도 않는 소음을 뒤집어쓰고 짜증이란 짜증은 다 받았더니 나도 부아가 치밀려던 참이었다. 최대한 자상하게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제가 애들 직접 가정교육하거든요. 학원 안 다니고 제가 가르치는거요. 그러니까 층간소음없게 좀 조용히 해주세요"
좋은 게 좋다고 그 쯤하고 올라왔는데 나와 안면이라도 텄다고 생각하는지 그때부터는 수시로 인터폰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실수로 의자를 끌다 소리를 내도, 집에 놀러온 친구 남편이 주말 대낮에 발망치 소리를 내도, 아이가 매트에서 내려와 조금만 놀아도 인터폰을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번은 죄송하다던 우리도 너무 하시는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가 더이상 미안해하지 않자, 그 이후로는 조그만 소리가 나도 몽둥이 같은 걸로 우리집 바닥, 본인 집 천장을 쳐대기 시작했다. 이 정도쯤 되니 나 역시도 윗집에서 나는 발소리에 짜증이 나고 예민해 지기 시작했고, 사람 사는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배려와 이해는 없고 서로 짜증과 불신으로 또 언제 소음을 내나에 골몰해 있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관리사무소 가서도 몇 번이나 난리를 쳐대는 통에, 관리소장님이 우리 집에 오기까지 하셨다. 아이 등원하자마자 전화가 오셔서 1층에서 너무 클레임을 많이 거는데, 집에 잠시 가봐도 되겠냐고 하시길래, 지금 집도 안 치우고 평소 모습 그대로 보여 드릴테니 오시라고 해서 집을 다 보여 드렸다. 관리 소장님이 오셔서 보여준 그 여자가 적어놓은 소음에는
0월 0일 오후 3시 30분 슬리퍼 안 신었는지 발소리 남
0월 0일 오전 8시 아이방에서 장난감 통 쏟는 소리
0월 0일 오후 6시 물건 떨어트림
0월 0일 오전 10시 식탁 의자 끄는 소리
0월 0일 오전 11시 부엌에서 물건 넘어지는 소리
등이 열개 정도 적혀 있었다. 기가 막혔다. 관리 소장님에게도 오전 7시부터 9시, 오후 4시부터 8시까지가 시끄럽다고 했단다. 누가봐도 엄연히 생활하는 시간이고 생활 소음 정도로 이렇게 클레임을 건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건을 떨어트리는 것도, 아이가 매트 위에 장난감을 쏟는 것도 아랫집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 이게 역 층간소음 문제구나 싶었고 그 종이를 들고 난감해 하는 소장님께, 저희 가족이 말도 안 되는 소음을 냈나요? 적혀있는 시간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집을 점검하실 만한 시간대인가요? 물었다.
'저희 부부는 디자이너 입니다. 눈에 보이는게 중요해서 인테리어도 중요하고, 집 꾸미는 것도 좋아해서 집을 방치하고 조심성 없이 대하는 성인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생각 없이 뛰어도 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희부터가 피해를 끼치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못 됩니다. 매트를 깔고 의자에 스티커를 붙이고 항상 슬리퍼를 신고 살고, 저희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조심은 다 하면서 삽니다. 더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랫집에서 천장을 쾅쾅쾅 치는 영상을 보여 드렸더니, 관리 소장님은 더 화를 내셨고 한 번만 더 집치는 소리 들리면 바로 관리사무소로 연락을 달라며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소장님이 냉정하게 해 준 말씀 때문인지, 그즈음 몇 번인가 뉴스에서 보복 소음을 내면 벌금 3000만원까지 나온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나온 이후로는 천장 치는 일도 없어졌다. 윗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만 있는 줄 알았지 아랫집 층간소음 보복으로 고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일을 이후로 너무 열이 받았던 나는 기본적으로 하는 배려도 모르는 사람이니 그냥 매트 다 치우고 우리 마음대로 살자고 화를 냈더니 선비같은 남편은 그 사람이 안하무인이라고 우리까지 그러면 되냐, 우리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기본은 하고 살자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매트를 싹 치우고 매끈하고 멋진 색감의 우리집 마룻바닥을 훤~히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가. 우리도 기본적인 배려를 하고 조심을 하며 살아야만 한다. 우리가 단독주택에 가서 살지 않는 이상, 이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 까지는 또 사춘기가 되더라도 우리는 늘 뒷꿈치 조심하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부모님들께 가르침 받고 자라온 것처럼.
단순히 윗집이라는 이유로 미안해만 하고 전전긍긍하기만 했다. 역 층간소음 문제로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가끔 출입구에서 마주치면 서로를 모른 척 하며 지나다니는게 영 마음에 걸리긴 한다. 우리 가족은 라인에서 마주치는 모두와 인사를 하며 지내기 때문에 이렇게 지내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편하고, 이렇게 밖에 못 지내는게 영 찜찜하기도 하다. 아이는 여전히 1층 아줌마는 마녀로 알고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한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너 일찍 안자면 1층 아줌마가 떠드는 소리 다 들어, 하면 눈 꼬옥 감고 자는 척 할 정도로
아랫집에서 걸음마 시작한 아이 발걸음 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아이 발에 양말을 신기고 신발을 신겨 산다던 엄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내 집에서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 키우고 싶지 않다. 다만 발 뒷꿈치 소리를 내지 않게 키우고 뛰면 야단을 칠거다. 하지만 아랫집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게 키우고 싶지는 않다. 제발 서로 상식선에서 기본만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가 했던 말 중에
공동생활이 뭐냐고 따져 묻던 말이 생각난다.
맞다. 공동생활은 어느 정도 서로의 생활 소음은 필수불가결하다. 아파트가 절간도 아니고, 다 같이 사는 곳인데 어느 정도의 생활 소음마저 감당을 못 할거면 산 속으로 가셔야지 별 수 있겠냐고 했었는데 제발 상식선에서 적당히, 이해하고 배려를 기본으로 공동생활을 이어 나갔으면 한다.
나도 유아용 매트 없이 살고 싶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