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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Apr 20. 2024

어린 아재

VOL.15 / 2024. 4월호. 이창호 연재소설_4화

어린 아재

- 이창호




<제4화>



 죄와 벌



 "너무나 사랑한 게 죄였나 봐 떠날까 봐 널 가뒀으니 내게만 보여줬던 네 모습을 혼자 숨겨두고 싶었어... 이젠 보낼게 널 놓아줄게 내가 없는 게 더 행복한 너라면 못난 내 사랑도 못된 미련도 나 혼자 남아 지워갈게~"

 태양과 민훈, 동걸이 나란히 걸으며 SG워너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셋은 지수, 다른 동기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태양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가 셋의 취기를 깨웠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동시에 도착했다.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였고 경찰은 출입금지 라인을 쳤다. 자연스럽게 태양은 경찰관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무슨 사건입니까? 경찰이랑 소방이 같이 온 걸로 봐선 상해가 심하거나, 살인이거나 어느 쪽인가요?"

 "살인사건인데요, 아마 강간까지 한 모양이에요. 근데 누구세요?"

 "아 요 위 골목 주민인데요, 시끄러워서 잠이 안 와서요."

 머리를 긁으며 돌아오는 태양을 보며 민훈과 동걸인 의아했다.

 "형 왜 그래요? 왜 경찰한테 말을 시켜요? 경찰 싫어하잖아요?"

 "싫긴,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서로 도와야지."

 동걸이가 아는 태양은 검찰이나 경찰이 가진 공권력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는 게 이상해 보였다. 태양은 이웃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죽은 여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30대 중반 여성이지만 20대처럼 보였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현관이 열려 있었다는 것. 태양은 혼자 생각했다.

 ‘진미 씨 사건처럼 범인은 문이 열린 걸 알고 들어갔다. 그리고 20대 여성을 노리는 건가, 범인이 같을 수도 있다. 그때 그놈을 잡아야 한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키는 나보다 조금 작은 172∼173㎝로 보였다. 밤길을 다녀봐야겠다.’

 "민훈아, 동걸아 이제 집으로 가자."

 "뭘 그렇게 물어봐요?"

 "아 동일인물 같아서, 문이 열린 걸 알았다잖아."

 "무슨 문이여?"

 "아까 지수가 하는 얘기 못 들었어?"

 "아 지수가 화낸 거요?"

 "어. 가자, 집에 술이 있나∼"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 술자리 화두는 지수가 꺼냈다.

 "아니 글쎄, 태양오빠가 어떤 여자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나섰잖아. 아주 해결사 나셨어, 무슨 벌써 변호사 된 줄 알고 설친다니까 내가 기가 차서 정말..."

 "형 이게 무슨 소리예요?"

 "아 그게 말이야, 내가 새벽에 목말라서 깨서 창밖을 보는데 어떤 남자가 두리번거리는 게 수상해서 바로 뛰어 내려갔지 날 보자마자 도망치더라. 그래서 직감했지, 이건 도둑이구나 근데 놓쳤어."

 "에이, 지수야 이 정도는 민주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거기서 끝나면 내가 말을 않지, 그 여자가 친구랑 술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그 친구랑 같이 성폭행을 당했대.  그래서 그 사람들 집에 가서 안심시키고, 그 여자를 밤에 나 몰래 따로 만나서 상담하고 우는 거 달래주고 웃으면서 대화하고 그랬다니까."

 "오빠! 그건 오버다. 왜 몰래 만나요? 그리고 우는 거 달래주고 그런 거 나쁜 버릇이에요."

 진주가 지수를 거들었다. 태양은 두 사람의 공세에 머리를 긁적이다 말을 돌린다.

 "너네 그거 알아? 일본에서 가장 돈을 아끼는 사람 이름이 뭔지?"

 "말을 왜 돌려요?"

 진주는 더 추궁하려 했지만 지수가 태양의 말을 받아친다.

 "궁금하네, 뭐지?"

 "도나까와 쓰지마!"

 지수만 깔깔대고 웃고 나머지는 태양을 노려보고 있다.

 "형 그게 뭐예요, 그게 뭐가 웃겨요."

 "이게 집에 가서 자려고 누우면 그때 웃긴 거야."

 "아 오빠 진짜 웃겨, 크크크."

 지수는 배를 잡고 깔깔거린다. 진주가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한다.

 "너네 진짜 천생연분이다, 좀 전까지 여자 만나고 어쩌고 하더니만."

 집으로 돌아온 태양과 동걸, 민훈은 둘러앉아 소주 대병을 꺼냈다. 안주는 편의점에서 산 족발과 참치 통조림이다. 태양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동걸과 민훈은 이상함을 느낀다.

 "아니, 형 진짜 왜 그러는 거예요? 무슨 코난이라도 된 거처럼."

 "아 그게 있잖아, 사실 내가 책이든 사람이든 한 번 보면 얼굴을 잊지 않거든. 근데 그때 그 인간 얼굴을 못 본 게 아주 한이 돼서…"

 "그러니까 왜 형이 그 사건에 자꾸 개입하냐고요?"

 "야 내가 변호산거 몰라?"

 "형! 정신 차려요. 우리 대학교 1학년이에요."

 "아 정말 되고 싶다 이거지, 크크크."

 "술이나 마시자, 그나저나 해리가 동걸이 좋아하는 거 같지 않냐?"

 "형 그냥 친구라니까요."

 "아니 친구끼리 단 둘이 영화를 보냐? 민훈아 그렇지, 안 보지?"

 "저도 그때 진주랑 둘이 봤는데요? 흐흐흐."

 멋쩍게 웃은 태양은 술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쫓던 범인을 떠올린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야 기억났다! 머리에 거뭇한 게 뭔지 기억이 났어, 처음에는 점인 줄 알았는데 물고기였다."

 태양은 공책과 펜을 꺼내 물고기 모양을 그렸다. 선을 다섯 번 그어서 만들고 그 안을 검은색으로 칠했다.

 "얘들아 일어나, 빨리! 전철역에서 뒤통수에 물고기 그림 있는 애만 찾으면 돼."

 "형 제발…"

 "가자, 부탁할게. 너네는 저스티스(justice)도 모르냐?"

 "아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네. 크크크, 가자…"

 동걸과 민훈은 못 이기는 척 태양을 따른다. 그들은 경인전철 1호선 동암역 주변에 남자들 머리통만 바라봤다. 간혹 점이 있는 남자들이 있었지만 물고기 그림은 찾을 수 없었다. 실망한 태양을 민훈과 동걸이 달랜다.

 "형 내일 또 나오면 되죠, 지금 어두워서 잘 안 보인 것도 있어요… 꼭 찾아서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하자고요."

 "그래 셋이 힘을 모으면 잡을 수 있을 거야, 이런 게 처음도 아니잖아."

 "형 또 뭔 소리하는 거예요, 이런 거 처음이에요."

 "아 맞다, 요즘 제정신이 아니네."

 세 사람은 사흘간 시간이 있을 때마다 동암역을 오가는 시민들을 지켜봤다. 지수는 태양이 너무 몰입하고 있어 걱정이었다.



<다음화에 계속>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책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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