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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Apr 27. 2024

복도의 끝에서

VOL.15 / 2024. 4월호. 편집장의 단상_3

복도의 끝에서



 어릴 적 학교 복도는 유달리 어두웠다. 창들이 있었음에도 해가 지면 조금의 빛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마치 깊은 동굴처럼 어둡고 길었던 복도의 끝. 입시 경쟁에 지치고 미래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던 열아홉 살 적, 한밤에 찾은 학교 건물의 그 캄캄한 터널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고 온 물건이었을까. 칠흑을 달래줄, 한 번도 먼저 켜보지 못한 인생의 전등 스위치인가. 아니면 왠지 내게는 허락되지 않을 것 같던, 저너머 반대편의 머나먼 출구 같은 것.  


 그 뱀처럼 길고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는 건 몹시 두려운 일이었다. 언제나 가깝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한낮의 친구들은 사라지고, 호랑이 같이 무섭던 선생님들도 보이지 않고. 그 밤의 복도에 나는 오롯이 홀로 서있었다. 내 곁을 맴도는 건 뼈저리게 시려오는 무한한 고요. 침묵. 바람의 그림자들뿐. 그래서였을까.


 밤의 골목을 지나갈 때,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건 저너머의 빛 덕분이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의 가로등과 저 골목 끝에 홀로 켜 있는 가로등의 빛. 이쪽의 빛과 저쪽 빛 사이 아무리 무한한 어둠이 길게 이어져 있더라도, 반대편 어둠 속에서 선명한 빛이 불을 밝히고 있을 때, 나는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어둠을 삼키고, 이를 꽉 물고, 천천히,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용기 낼 수 있었다.


 언제나 그 빛은 반대편에 있었다. 저 멀리, 길고 긴 복도의 끝 너머. 유리창 너머. 학교 건물 너머. 지금의 너머. 밤하늘을 지나 저 아득한 시간 너머에.


 *


 나와 너무나도 다른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어릴 적 바랐던 반대편의 환한 빛 하나를 생각한다.


 길은 여전히 어둡고 길다. 내가 천천히 쪽을 향해 걸어갈 때, 어떤 소리 들린다. 너 역시 반대편 내가 있는 곳의 빛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음을. 어둠 한가운데에 있더라도, 그리하여, 빛과 빛이.


 입구이자 출구. 출구이자 입구.

 그건 서로의 생을 길게 이어 붙인 하나의 길, 또 다른 세계였다.


 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마다,

 나는 또 한 번의 생을 사는 것 같았다.  



(이번주 '눈꽃의 에세이'는 작가 사정으로 '편집장의 단상'으로 대체합니다.)


<숨 빗소리_ 4월_ 편집장의 단상>


숨 빗소리 - 발행인 겸 편집장. 스쳐가는 장소에서 건져 올린 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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