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0 / 2024. 9월호. 이창호 연재소설_9화
2005년 7월. 태양은 며칠 전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현관이 열려 있고 20대 여성을 노린 범죄, 같은 동네에서 벌어진 유사한 사건…’
"오빠! 뭐 해 몇 번을 불렀는데."
입을 삐죽거리는 지수. 태양은 지수를 달랜다.
"앗! 미안 미안 미안. 그때 얘기한 살인사건 있잖아, 아무래도 전에 성폭행이랑 범인이 동일인 같아."
"아니 이태양 씨, 탐정놀이 그만하시고 지금 집중하세요. 우리 뭐 하러 왔는지 알긴 해?"
"알지∼"
태양과 지수는 청평댐으로 과 MT를 왔다. 둘은 청평으로 오는 무궁화호 기차에서 꽁냥 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목적지에 도착해 잠시 주어진 자유시간에 태양은 골똘하고 있었던 것. 지수는 태양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오빠 금방 바나나보트 탈 건데, 정신 좀 차려! 번지점프도 해본다며?"
"응 번지점프 해야지, 내가 백텀블링 하면서 점프하는 거 보여줄게∼"
태양과 지수는 신나게 바나나보트를 타고 내렸다. 태양은 지수와 눈을 마주친 뒤 번지점프대를 보라고 눈짓을 했다.
"오빠, 진짜 번지점프 하려고? 줄 끊어지면 어떡해…"
번지점프대에 선 태양은 자신이 살던 2025년이 떠올랐다. 아이와 아이엄마, 부모형제, 법률사무소 식구들. 뒤로 돌아 텀블링을 하고 내려다본 강물에는 사람들 얼굴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태양은 강으로 빠지면 2025년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 순간, 태양을 지탱한 밧줄이 갑자기 끊어질 듯 늘어났다. 때문에 태양은 강물에 빠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수는 태양이 떨어진 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녀는 울부짖는 소리를 내었다.
"오빠! 어딨어! 이태양!"
번지점프 운영팀 안전요원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번지점프대 진행요원들은 밧줄을 당겼다. 밧줄이 끊어졌는지 태양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물속에서 안전요원들이 태양의 위치를 찾는 도중, 밧줄에 매인 태양이 물 위로 떠올랐다. 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 털썩 주저앉았다. 안전요원들이 밧줄을 끊고 물 밖으로 태양을 옮겼다.
지수는 바닥에 누운 태양을 끌어안았다. 무슨 일이라도 날까 걱정이 앞섰다. 태양의 어깨를 흔들고 얼굴에 손을 갖다 댔다. 그 순간 태양은 "쿨럭" 소리를 내더니 물을 뱉어냈다. 옆에 있던 민훈이랑 동걸이가 부축해 방 안에 눕혔다. "병원에 가자"는 지수의 말에 태양은 손사래를 쳤다.
"병원보다 잠깐 자고 싶어, 한두 시간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고마워 부탁할게."
"응."
지수는 태양 옆을 지켰다. 민훈과 동걸이는 다른 동기들과 족구를 하러 나갔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 때 태양은 눈을 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졌다. 태양과 지수는 나가서 배드민턴을 쳤다. 동기들과 모여 커플 자전거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빌린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 같이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돼지고기 바비큐와 김치, 채소, 간단한 안주들이 식탁에 놓였다. 막걸리, 소주, 맥주까지 갖춰진 잔치가 열렸다.
태양은 주로 지수와 대화하면서 동걸, 민훈, 진주, 해리, 미진과도 농담을 주고받았다.
"문어가 절대 지지 않는 이유를 알아?"
"문어가 왜 안 져요? 다 이긴다는 뜻이에요?"
"절대 패배하지 않는 이유가 있지!"
"설마, 설마…"
동걸이 이유를 아는 척 말을 꺼내자 태양이 선수를 쳤다.
"문어가 절대 지지 않는 이유는, 무너지지 않으니까 히히히."
지수만 웃고 나머지 동기들은 태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 째려봤다. 그렇게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지는데, 갑자기 태양이 다른 학교 MT 술자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오빠, 어디 봐. 왜 거기 예쁜 여자라도 있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 있어서."
"그만 봐, 저 사람들이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어."
"알겠어."
대답은 했지만 태양은 술을 마시며 잠깐씩 그쪽을 쳐다봤다. 태양이 주시하는 사람은 남자였다. 동암역에서 놓친 그 사람인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술을 마시던 중 그 남자가 무리에서 빠져나오자 태양도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지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태양을 바라봤다.
"오빠 어디 가!"
태양은 성큼성큼 그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