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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Oct 31. 2020

일곱 번 이직을 해보니 ‘어느 회사든 다 똑같다’란 말

‘아무 회사든 버티면서 다녀. 다 똑같아’ 이 말에 반대다.

분명 사무실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어하는데, 사무용품에는 관심 참 많다. 귀여운 키보드에 눈길 사로잡힘


이직 참 많이도 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냥 힘들어서 더 이상 다니지 못하겠어서,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서’ 크게는 이 두 가지 이유로 나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 그 이상을 보내는 회사가 너무나 너무나 괴롭다면 더 이상 내 삶을 망가뜨려서까지 다니는 게 무슨 의밀까. (거기 말고 회사는 많지 않나? 말은 쉽게 한다). 지금까지 아르바이트(회사의 형태를 띠는) 포함해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11년부터 거의 9년 동안 7~8곳의 회사를 거쳐갔다. 모든 회사가 정규직 형태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조직에서 경험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회사를 거듭해나갈수록 내 모습을 더 감출 수 있게 됐고, 더 당당하게 말하거나 내 일이 아닌 일에 선을 그을 수 있게 됐고, 팀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해 맞출 수도 있었다.





처음의 직장은 2011년 가을쯤, 수많은 회사가 모여있던 가산디지털단지에서의 홍보대행사였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만큼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서툴렀다. 당시에는 나의 서툼은 보지 못하고 함께 일하는 직원이 너무 까탈스러워서, 회사 규모가 작아서, 가산디지털단지의 분위기가 싫어서, 더 큰 규모의 회사로 가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몇 개월 인턴 생활을 하고 바로 그만뒀다.



이후 국내 규모 탑 3 안에 든다는 큰 홍보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팀장은 카리스마가 있었고 난 그가 무서웠다. 그러나 그만큼 모든 회사의 업무들이 다 새로웠고 즐거움으로 다가웠다. 몸은 힘들었지만, 처음 먹어본 비싼 음식(기자 미팅), 지방으로의 외근(아싸 나도 출장이란 걸 한다), 기자와의 통화, 클라이언트로부터 받는 관대함(어려서 우쭈쭈 해줬던 듯) 등. 아무것도 몰랐던 만큼 대단한 경험을 한 것 마냥 날아다니며 6개월 인턴 생활을 마쳤다. 몇 개월 후에 다시 이 회사의 정규직원으로 들어가 2년이 넘게 엄청난 업무를 하며 대리 직급으로 퇴사하긴 했지만.


위 홍보회사의 인턴과 정규직 사이에 잠시 인천 송도에서 일하기도 했다. 살고 있던 서울에서 편도 2시간은 걸렸고, 난생처음 기숙사 생활을 하며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동산 관련 회사에서 몇 개월을 일하다 그만뒀다. 가족의 강력한 권유로 일했던 만큼 업 자체에 관심이 없는 무지 상태여서 더욱 그랬다. 그 와중에 중국 출장을 갔었는데(심지어 중국 관계자 앞에서 피티를 했었다, 그 출장의 목표였던 중요한 피티를 말이다) 기억이 흐릿하다. 큰 거래 건으로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 앞에서 피티를 한다는 생각에 비행기 타는 내내 발표 자료를 봤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 후 7-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재테크(부동산)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그때 좀 더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정말 당시에는 아주 생소한 분야였다. 마치, 문과생이 코딩 언어를 보는 느낌이랄까.



드디어 크로플 와플을 먹었다. 막상 먹어보니 이미 알고 있는 맛이네!


그 후 비슷한 규모의 큰 홍보대행사로 이직해 2년 정도 근무했다. 청계천 앞이 회사였으면 좋겠다 생각해왔었는데, 막상 그 근처로 가도 낮의 청계천 모습은 자주 볼 수 없었다. 어둑한 청계천 모습은 볼 수 있었지만 그때는 택시 잡고 집에 가기 바빴다. 그만큼 일이 많았고,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청계천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앞으로 어느 회사에 다녀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홍보대행사에서만 생활하자니, 지켜지지 않는 퇴근 시간, 클라이언트(고객사)의 눈치를 보는 생활, 끊임없이 홍보일을 수주해야 한다는 부담감, 안정적이지 않는 월급, 그리고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는 회사 구조. 의 문제도 있지만 내가 진짜 홍보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내가 한 업무가 진짜 홍보인지 뒤죽박죽 섞여서 고민만 늘어갔다. 그러던 와중, 잠시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했던 회사에서의 마케팅 경험은 앞으로의 커리어 방향성 세팅에 도움을 줬다.


회사에는 다양한 부서가 있다. 물류, 영업, 마케팅, CS, 인사, 교육, 재무, 디자인 등등. 오랫동안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일반 회사의 ‘홍보팀’과 일을 했었다. 회사의 구조는 복잡한데 홍보팀의 업무만 대행하다 보니 보는 시야가 좁았었는데, 일반 회사의 마케팅팀에서 일하면서 영업, 물류 등 다양한 회사 내 관계자와의 협업을 하게 되면서 마케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마케팅으로의 업무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경력은 있어서 경력 마케팅 정규직으로의 근무는 어려울 것이고, 큰 회사의 계약직 마케터로 시작했다. 영업, 물류 등 다양한 직군들과 일을 하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한편 재미있기도 했다. 조금씩 회사 전체를 보는 시야를 기를 수 있었다. 홍보대행사라는 ‘대행사’가 아닌 일반 회사에서 일하면서 내 워라벨도 보장받게 되었다.



어떤 회사든 긍정적, 부정적인 면 모두 있는데, 홍보회사에서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워라벨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6시 이후의 근무는 부지기수, 주말 근무를 해도 보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친구와의 약속, 개인적인 시간도 모두 불안정했다. 지금 회사에서 가장 좋은 점은 퇴근 시간이 보장된다는 것. 물론 몇 년 전부터 52시간 제도가 실행되면서 대행사의 근무 여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결론은 어느 회사를 다니든 다 그게 그거다 똑같다 라는 말에 반대다. 상사에 따라, 팀원들의 결속력에 따라, 기업문화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와 맞지 않고 하루하루 출근이 내 일상을 무너뜨린다면 그건 안 좋은 회사다. 그만두기 어렵겠지만, 당장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내 생활이 망가뜨려지고 감당할 수 없는 일상이라면 계속 버티며 다니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근무 여건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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