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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의 유희 Feb 15. 2024

시지프스의 돌

시지프스는 미술관에서 유튜브에서 카뮈로 이어진다.

벽에 흔적을 남기며 바위를 밀어올리는 두 손. 바위가 긁힌 흔적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작품의 제목은 [시지프스의 돌] 이었다. 시지프스의 돌이 뒤로 보이는 기둥에 조금 낮은 높이에 또 다른 지저분해진 두개의 손이 또 다른 바위를 밀어 올리다 미끄러진듯한 작품이 보인다. [극사실주의 노동]이라고 한다.

작가의 작품 설명 글을 읽고 나니 설명된 엉킴과 모순은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설명 없이도 주말 아침 무언가 질문을 던지는 입체적인 볼만한 느낌의 전시였다.  


[시지프스의 돌], [극 사실주의 노동] by GIMHONGSOK -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국제겔러리


그런데 왜 기둥의 작품은 [시지프스의 돌]이 아니고 [극 사실주의 노동]일까? 제목의 '노동'이라는 단어가 작품을 보며 비교되어 궁금했던 지저분한 손을 '노동'이라는 단어가 설명해 준다. 작품들로 다시 돌아가 보면 [시지프스의 돌]은 두개의 손은 바위를 힘차게 밀어올리고 있는데 반해, 올리다 미끄러져 내려온 바위를 버티는 듯 한 [극 사실주의 노동]한 모습은 기쁜과 슬픔을 교차해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시지프스라는 이름이 없는 작품이 오히려 시지프스 신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재악당]과 실재악당이 바라보고 있는 [상상악당]

재미있게 작품을 보다가 발 아래쪽에 이녀석(작품)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고양이의 몸에 공포 영화에 나올법한 괴기스러운 얼굴이 붙어있다. 기둥에 숨어서 뭔가를 보고 있는 시선을 따라가 보니 입구 벽 바로 뒤에 회색털의 또 한마리 - 한명이 있었다. 깜짝이야 하고 놀랐다가, 뭔가 얼굴을 흉하지만 가면을 뒤집어 쓴 고양이라고 생각하니 또 귀엽기만 하다.

고양이 인간들의 이름은 실재악당과 상상악당이다. 의미는 모르겠다. 아뭏튼 실재악당이 상상악당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전시의 구성이다. 곳곳의 작품들이 실제 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떤 관계를 이루며 공간에 흩어져 그것을 연결하는 재미를 만들어 주는 듯 한 전시였다.



작품을 보다가 최근에 본 Caset Neistat의 [Sisyphus and the Impossible Dream] 이라는 영상이 떠올랐다. Caset Neistat은 1200만 구독자의 유튜버로 흥미로운 영상들과 스토리를 만드는 특이한 인물이다.

이 영상은 그가 과거에 오토바이 사고로 수술 후 다리에 철심을 넣었고, 이제 뛸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자신은 마라톤을 2시간 59분에 뛸 것이라는 목표, 꿈을 정했다는 이야기 였다. 그리고 영상은 지난 17년간 그가 재활을 하고 지속적으로 마라톤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불가능한 꿈 같았고, 시지프스의 바위가 계속 정상에 도달 못하고 굴러 떨어지듯이 매번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도 17년의 시간이 흘러 40대가 되어 있었다. 20-30대의 체력에도 못한 것을 중년인 그가 못할 것이라 본인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일하고, "열심히" 살라는 외치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자기개발서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역시. 그가 늘 하는 꿈을 쫒고 도전하라는 그의 메시지처럼, 반전 없이 예상대로 17년 만에 그가 마라톤 2시간 59분의 도전에 성공하는 장면으로 영상은 마무리가 된다. 예측 가능했던 스토리지만, 그래도 역시 그의 영상에는 Casey Neistat 스타일의  감동이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결국 시지프스의 바위를 정상에 올리고 굴러 떨어뜨리는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 시지프스는 저승에서 벌로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했다.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다, 원래  신화에 시지프스가 바위를 아무리 산 정상으로 올려도 뾰족한 산 정상에서 바위가 계속 굴러 떨어져 다시 굴려 올려야 하는 끝없는 벌을 받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Casey Neistat 영상 마지막에서 바위를 정상에 올려 놓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찍고 반대쪽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기쁘게 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시지프스 신화에서 다시 반복되는 형벌의 시작되는 장면이 Casey Neistat의 영상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그렇다,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순간이다!


생각이 다시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로 이어진다. (원제:Le mythe de Sisyphe, 영문 제목: The Myth of Sisyphus) '시지프스 신화'는 카뮈가 나의 인생책인 '이방인'을 발표한 1942년에 발표되었다. 


The struggle itself towards the heights is enough to fill a man's heart.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아야 한다.


카뮈는 삶이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이 무의미함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한다. 시지프스에게 주어진 임무-형벌은 영원하고 끝이 없는 것이지만 그는 투쟁 자체에서 가치와 목적을 찾을수 있다고 말한다.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는 세상에서도 개인은 개인적인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카뮈의 실존주의적 관점이다. 그렇다,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순간이니까. 인간은 순간을 선택할 수 있고 행복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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