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엽 Oct 23. 2024

가장 중요한 질문

 내가 누군 줄 알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각각의 질문이 너무나 큰 주제이기에 한 번에 모두 다루지는 못할 것 같고

우선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부터 다루어 보겠습니다


사실 '나'라는 존재는 명확히 잡히지 않는 대상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나의 팔에도, 다리에도, 심장에도, 머리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팔이 내가 아니고, 심장이 내가 아니고, 머리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한자어를 살펴보면 '사람 인'자에  '사이 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들 사이에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뜻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듯 인간이란,

특히 '나'란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 진정한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마틴 부버'라는 독일의 사상가는

이 시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저서,

'나와 너'라는 책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관계를 크게  

    '나 - 너'의 인격적 관계  

    '나 - 그것'의 비인격적 관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이 구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너'와의 관계를 가질 때의 '나'와

'그것'과의 관계를 가질 때의 '나'는

서로 다른 '나'라는 사실입니다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


내가 '너'가 아닌 '그것'과 관계를 맺을 때,

즉 돈이나 집, 국가, 혹은 그 사람 등

3인칭으로 표현되는 그 무엇과 관계를 맺을 때의 나는

'나'의 일부일 뿐이요 나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재산을 소유했을 때의 '나'의 존재는

단순히 재산 소유자로서의 '나'일뿐

본질적인 의미로서의 '나'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나'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과 대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재산이라는 물질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비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회사에 한 직원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그의 상사, 부하 직원, 그리고 업무 상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의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책, 기능으로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그가 맺고 있는 업무 상 관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어떤 사람은 좀 거칠게 일을 할지는 모르나

관계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대문의 벨을 눌렀을 때

어린 딸이 두 팔을 넓게 벌리고

그의 목을 알싸 안으며 "아빠!" 하며 함성을 지른다면

그때의 그 사람은 천하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존재가 됩니다

그때 그는 진정한 '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빠와 딸로서 만난 두 사람은

기능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인격 전체를 총동원한 '나'들로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가 '나와 그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나의 노력에 기인하지 않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가 인격적 관계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상대가 나에게 '그것'이 아닌 '너'로서 관계를 맺어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상대가 '나'의 존재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나와 너 사이의 진정한 관계는 형성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사실 진정한 인격적 관계는

은혜로 이루어지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원하더라도 상대가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충만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나의 여러 가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나에게 반응해 준다면

나는 나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마치 막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사랑을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개념에 눈을 뜰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 되는 것은 은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와 그것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주체이지만

나와 너의 관계에서는 상대가 은혜를 베푸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너'로 대우하시는

'나'로서 우리 앞에 서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위하여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분으로서

혹은 일일이 자기 양의 이름을 부르는 목자로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찾는 분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름 없는 군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대중 속에 자신을 숨겨버리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이 일일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낼 수 있겠는가? 하며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죄의 근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 너'로서의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존재를 인격적 존재로 대우해 주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말로만 '아버지 하나님'이지

정작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자녀로서 대우해 줄 리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 버리는 것,

즉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의 근본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본질이 파악되면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상대와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존재임을 깨달았다면...


그리고 그 인격적 관계란

상대가 나에게 베푸는 은혜에 의해

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고

누리며 즐기는 일뿐입니다


문제 해결이 이렇게 쉽단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를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