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는 선유도에 있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쉴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공백이 용납되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은 시작부터 고됐다. 국장을 마주하며 오늘은 어떤 일을 처리해야 하지 막막함이 먼저 들었다. 기사를 쓰라고 했지만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경력으로 들어온 기자가 있었지만 그 또한 회사의 체계없음을 욕했다. 같이 하는 식사자리는 점차 불평으로 가득찼고, 더 악화되기 전에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채 한달을 일하지 못하고 다시 실업급여를 받기로 했다.
도서관의 생활은 루틴했다. 항상 정해진 시간에 나가 어머니가 싸준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삶이었다. 어머니한테는 퇴사했다는 말을 할수가 없어서 아침이면 출근하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 집앞의 도서관으로 매일 가는 모양새였다. 그때의 내 차림새는 초라했다. 어머니께 물려받은 무스탕과 메이크업 하지 않은 얼굴에 행색도 좋을 리가 없었다. 한번은 도서관에서 어머니를 봤지만 모른체 했다. 마주치면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졸업하고 패배자처럼 사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땐 만나는 사람들도 형편없었다. 항상 본인을 비관하는 친구를 만나 자기학대를 하기 바빴다. 그런 내가 너무 싫었지만, 그땐 그 친구가 돌파구처럼 느껴졌다. 삶은 너무 받아들이기가 어려운데, 그 친구마저 없으면 삶에서 겪는 고통들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그 친구에게라도 위안받아야, 찾아올 내일을 견딜수가 있었다. 암흑같았던 하루하루였다. 발버둥치고 있지만 좋아진다는 건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 날 믿어주지 않는 부모, 계속된 실패, 타인과의 비교는 날 좀먹는 벌레였다. 가끔 내가 벌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역시 취업은 되지 않았고, 실업급여는 이미 끝났다. 어디라도 취업을 해야 했다. 아무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 지원한 집근처 공사 인턴에 테스트로 지원한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라고 해야할지, 또 인턴이었다. 매일 아무런 할일도 없이 출근해서 토익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이스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 사수 비슷한 사람은 항상 팀장한테 깨졌지만, 그마저도 부러웠다. 그는 맡은 업무가 있어 깨질수라도 있는거지, 나는 회사에서 투명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