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렇게 회사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 나는 지독한 우울에 시달렸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시간이었다. 시선은 멍하게 티비를 보고 있지만 어떤 불확실함과, 소속되지 않았다는 불안감은 날 휘감았다. 가족한테는 회사에 다녀와서 피곤한 척했지만, 그건 회사로부터 오는 피곤함이 아닌 나로부터 오는 감정들이었다. 자아효능감, 자신감 같은건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쁜일은 연달아서 오는건지, 여의도 출장을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 맘에 들어서 그러는데, 번호좀' 평소같으면 거절했을 거지만, 이보다 나빠질 수 없을까 최악의 상황에 썩은 밧줄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는 마침 내 동네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고, 몇번 식사를 같이 했다. 그는 내가 그만 만나자고 하자 스타킹을 달라고 했다. 하다못해 이제 내 인생에 이런 쓰레기까지 꼬이는구나 망연자실 했다.
그렇게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쯤, 날 좋게 본 상사가 하청 기업의 자리가 났다며 지원해보는게 어떻냐고 했다. 그러마 하고 다녀왔지만, 그 기업에선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결국 흐지부지 되었다. 그때에도 이력서는 계속 넣고 있었는데, 천운인지 한 기업에서 서류 합격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엔 느낌이 좋았다.
운이 트이려고 하는지, 그 기업 필기 합격 소식을 듣는 순간 다른 대기업의 서류도 합격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면접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앞선 대기업에서도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먼저번의 기업의 면접을 보고 오는 길에 나 스스로도 내가 제일 답변을 잘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합격되었다고 했다. 그간의 서러움이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합격한 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꿈과 같았다. 모두가 환영하고 격려해주었고, 동기들도 나이스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다니던 중 앞선 대기업에서 최종 면접에 보러 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