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회사에서 최종에 오라고 했지만, 다시 지난한 입사과정을 겪을 자신이 없었다. 입사한지 1주일밖에 안됐는데 휴가를 쓰는게 눈치 보이기도 했고, 여기에 적을 두고 싶었다. 그게 나중에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는 말해 뭐하랴.
경영학을 했지만 회계는 잘 안맞았고 홍보쪽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들어간 부서는 카탈로그를 만드는 작업과 브랜드 선정 사업이었다. 당시 보스는 일은 안하고 자주 자리를 비우며 윗사람의 비위 맞추기는 일등인 상사였다. 그가 모시는 상사가 있었는데, 그 상사도 여자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전형적 한량이었다. 입사하고 나서 경직적인 사내문화와 당연하다시피 하던 야근, 까라면 까라는 군대식 문화는 입사한 동기들의 지속적인 퇴사를 불렀다.
한번은 동기랑 이야기를 하다가 '청바지를 입는다고 뭐라고 했다'고 하길래, '무슨 옷입는것가지고 그래?'라며 이해가 안됐다. 지금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회사를 다니는 추세지만, 그때는 그런 복장가지고도 뭐라고 하던 때였다.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 그 동기는 그만 두었고, 낮은 연봉때문인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동기들이 점차 늘어났다.
본부장과 회식을 하는데 그 자리에서 내 보스의 학벌 언급을 하게 되었고, 그건 지난 20년간 뇌리에 박혀왔던 어떤 내 가치관과도 같았다. 하지만 입이 싼 본부장은 그걸 다음날 담배피면서 보스에게 말했고, 학벌 자격지심이 컸던 보스는 그때부터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는 본인이 수능을 보기 전에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간호를 했고, 그래서 대학원을 갔다는 변명같은 말을 했지만, '이 사람은 컴플렉스가 심하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이후론 내 승진을 지속적으로 막았다. 당시 나도 말실수한걸 알지만, 술을 먹은 상태에서의 말을 전달한 본부장을 원망해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