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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May 12. 2024

차가운 1인실에서



윤을 만난 건 4년 전이었다. 소개팅을 해준다고 해서 연락을 해서 만나기로 했다. 그가 내가 있는 지역으로 오기로 했다. 초밥을 먹고 싶다고 하니까 '그럼 오시오에서 봐요'라고 했다.


가보지 않은 식당이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지방출장 일정이 잡혔다. 연천과 경기를 찍고 오니 도착시간이 8시가 넘었다. 만나는 시간을 8시로 정해놓은 터였다. 운전 중이어서 전화를 했다.


"좀 늦어도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아 근데 목소리 이쁘시네요. 저도 옷 갈아입고 가면 시간이 얼추 맞을 것 같아요."


해서 8시가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했더니 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초밥집은 룸으로 되어있어 조용했다. 그를 만나던 때는 경매를 하고 있었다. 회사 일은 의미가 없고 오로지 돈만이 의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에선 외출을 내고 경매를 배우러 다니다가 입찰을 참가했다. 처음 입찰은 불당동에 있던 건물이었는데 2차 유찰에 경쟁자가 10명이 넘었다. 가격을 거의 최저로 써서 떨어졌다. 이대로 경매를 접으면 배운 게 아까워서 다음 입찰에는 최저가의 20%를 붙여 썼다. 그랬더니 됐다. 경매장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기분은 왠지 나쁜 일을 한 것 같은 배덕감이었다. 입찰자로 결정되자 대출상담사는 내게 쏟아지듯 명함을 건넸다. 마치 스타들이 시상식에서 내려오면 꽃가루가 날리는 것처럼 그랬다.


이율을 최저로 맞춰주는 대출이모를 통해 비용을 마련했다. 하지만 낙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임대를 맞춰야 하는데 생각보다 잘 나가지 않았다. 기존에는 파나소닉이 들어와 있었는데 경매에 나가자 주인은 짐을 뺀 상태였다. 임대료를 낮췄지만 세를 주기가 쉽지 않아 100개가 넘는 중개사무소에 일일이 문자를 보냈다. 그중 한 사무소에는 박카스를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박한 마진으로 임대를 맞춰주었다. 그게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저는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서 최근 상가를 샀어요."

"오 그럼 제가 입주하면 될 거 같은데요"


그도 코인, 주식 등 다양한 투자를 하는 사람이었다. 재수를 했다는 공통점도 같아서 이야기가 통했다. 그는 말하는 모습이 교양 있고 유쾌했다. 그는 내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근데 나는 물음표였다.




지난 연애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안 만날 수도 없었기에 나간 만남은 내게 '30대의 만남은 조건이구나'라는 명제를 재확인하게 했다. 윤하고 만나서 한 얘기는 대부분이 돈에 대한 이야기였고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시간을 보내야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건지 같은 건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음에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날의 느낌이 그래서 그가 다음 데이트를 신청했을 때 다음날 답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그는 긴 장문을 보냈다.


"그래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즐거운 시간 보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그쪽까지 갔는데 커피도 한잔 안 하고 헤어지는 게 어딨어요. 마음에 안 들었다면 그날 드신 음식값을 1/2 해서 보내주세요. 충분히 예의 있게 말하는 거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기."


밥값 같은 건 그냥 예의상 내가 낼 수도 있었다. 아니, 그가 그렇게 손사래 하며 내지 않아도 내가 낼 수도 있었음직한 금액이었다. 반을 달라고 하면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걸 굳이 이렇게까지 달라고 하는 그 사람이 궁금해졌다.


"돈은 드릴게요.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다시 안 만나게 될 건 아니잖아요. 다음에 우리 한번 더 봐요. 돈은 정중하게 돌려드려요."


그는 예상하지 못한 답에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건강검진에서 혹을 발견하게 되었다. 발견한 곳이 그가 있는 병원이어서 그에게 말했다.


"나 뭐 있대"


"그거 흔해. 떼면 돼"

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태도가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우리 병원에서 해도 돼. 그럼 내가 면회 갈 수 있는데"

"생각해 볼게"


주치병원에 가서 상담하고 수술을 했다. 긴 밤 입원실에 있는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10시간이 넘는 잠을 자며 눈을 뜨면 고통이 맞이하고 있었다. 씻을수도 없었고 움직일 때마다 피통과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했다. 병실을 혼자 써서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소통할 수 없었다. 주기적으로 수치 체크를 하러 들어오는 간호사가 내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나는 내게 각박한 사람이었다. 과로로 몸을 그렇게까지 방치했으면서 '나로 인해 그렇게 됐으니 감내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수술부위가 아무느라 극심한 고통이 새벽에 몰려올때면 온전히 그 아픔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아무도 없었지만 가족 누가 있다고 해도 그 처절함은 나만이 느낄수 있는 것이었다. 보호자는 내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아파서 그러는 거라 추측은 할테지만 실제 그 강도가 얼마만큼인지, 주기의 빈도는 어떠한지는 '나'만 알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외로웠다.


그가 필요했다. 그는 단지 소개팅을 했다 간헐적으로 연락하는 상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게 닥친 불행이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욕망을 들끓게 했다. 막상 그가 아니었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연락을 드문드문이라도 지속하고 있는 상대가 그였다. 동생과 그만 알았던 병명이었다. 마음이 따듯한 동생은 애인과 들러 내가 먹고싶어하던 오렌지주스와 그밖의 것들을 이것저것 사들고 와서 내 초라하고 엉망인 몰골을 보자마자 울음을 떠트렸다. 그녀가 가고 나서 더욱 그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가 와주길 바랐지만 그는 '코로나여서 면회는 어렵지?'라고 했다. 그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를 '나'의 상황으로 모는 대화를 종종 했다. 그도 병원에 근무하고 있어서 면회가 가능하단걸 알고 있으면서도 병원 시스템상 그렇게 못하니까 만날수 없다는 화법을 하는 것이었다.





입원이 끝나던 날은 누구라도 만나고 싶었다. 모든 것이 흑백이던 입원실을 빠져나오자 새 삶을 얻은 것 같았다.


"나 퇴원했어 맛있는 거 사줘"

"뭐 먹을래"

"나 한우"

"ㅇㅋ 노은으로 와"


노은은 그의 병원과 가까운 데였다. 그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해서 서운한 건 없었다. 나는 마침 시간이 있었고, 그의 점심시간을 맞춰 가면 되는 거니까. 만나기로 한 장소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데 막 미용실에서 나오는 걜 마주했다.


"뭐야 머리 잘랐어?"

"응 좀 지저분해서"


라고 말하는 그의 관자놀이에 머리카락이 붙어있었다. 그와 한우집에 가서 고기를 굽는데, 그는 벤츠 차키를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그걸 본 사장이 더 잘해줬다.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았다. 사람들은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욕한다. 막상 부가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보면 친절해진다.


그와 고기를 먹고 난 다음엔 드라이브를 했다. 가고 싶은 카페가 있냐고 해서 근교 카페를 다녀왔다. 그의 까브리올레의 뚜껑을 열고 스피커로 2000년대 음악을 꽝꽝 틀며 노래를 부르며 카페에 갔다. 나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이제 미국에서 온 오퍼레터에 답하고, NC롤리의 아파트를 구하면 됐다. 회사와도 안녕이었다. 막상 회사와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갈등과 반목이 모두 의미 없게만 느껴졌다. 가짜의 삶을 버리고 진짜의 삶으로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얘와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었다. 30대 초반, 예전이라면 결혼을 할 시점이었지만 난 결혼보다 커리어가 중요한 사람이었고 새로운 곳에 가서 새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실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가끔 '놀러 와 밥묵자'같은 말을 보냈다. 그전에 게임초대 톡을 보내놓고 내가 답하면 그걸로 대화를 이어가거나, 내가 답하지 않으면 안부를 묻는 식이었다. 노은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보러 가려고 하니 둔산으로 오라고 했다. 그의 병원이 있는 곳이었다.


"어 나 노은으로 가고 있는데 왜?"

"차가 센터 들어가서 일로 와줘"

그렇게 걜 픽업해서 와동에 있는 초밥을 먹으려고 갔더니 마감이어서 중국집에 갔는데 꽤나 괜찮았다. 그는 여전히 세속적이었다.


"주변형들 결정사 가는데 대놓고 열쇠 세 개 있는 사람 구하더라고."

라고 그는 말했다. 원래 인간들이 세속적인걸 알고 있었지만 기득권층은 더욱 그런 게 심하구나를 간접경험한 날이었다.


 "요새 공들이고 있는 아이가 있는데 남자 친구가 있어. 생일선물 줬더니 감동이라고 그러더라."라고 말하는 그는 나와는 완전히 친구였다. 동시에 내 생일은 그냥 지나갔으면서 서운한 생각도 들었지만 말하진 않았다.


그와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는 주변형들과의 우정이야기만 했고, 그런 게 지겨워지고 말아서 '데려다줄게'라고며 자리를 일어섰다. 가는 길에 옆차가 칼치기를 하며 경적을 울리고 가서 보복경적을 울렸다.


걔의 통속적 태도는 날 서서히 걔와 멀어지게 만들었다. 나조차도 그렇다는걸 부인할 수 없으면서 그런 동질의 인간을 만나면 거부감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가끔 '밥 먹자'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보톡스 맞아야 하는데 한번 갈게'라는 말로 대꾸했다.


하지만 '절대 안되는건 없다'같은 뻔한 말, 인간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는 것처럼 회사상사의 죽음, 할머니의 병환, 회사동료의 결혼 등을 겪다 보니 멘털이 흔들렸다. 누구라도 잡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미칠 것 같았다.


뜬금없이 가겠다고 했다. 그는 오라고 했다. 그간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그럼 내가 불행한 걸 보여줄게'라며 마이너스인  계좌를 보여줬다. 그는 상황에 공감해주는게 아니라 해결방법을 제시해줘서 좋았다. 여자애들을 만나서 얘기했다면 '어머 걔 정말 별로다'라고 했을 것이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사람들은 안도한다는 걸 아는 애였다. 처음에 만나서 '안녕'라고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은 폭소로 바뀌었다. 그는 주변 형들의 결정사 이야기를 해줬다.


"내 번호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는데 가입비가 300만 원이고 성혼비가 600 이래"

"세네. "

"근데 전문직은 회당 10만 원에 나갈 수 있는 거 있대"

"오.. 해봐"


라는 대화는 주변인의 사례로 흘러갔다.

"아는 형이 언론사 딸이랑 만나고 있는데 그 딸은 빨리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데 형은 아직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고민 중이래"

"넌?"

"나도 아직 확신은 없는데. 딩크 30, 아이 60 정도? 아이 낳으면 잘 키울 자신도 없어"

"난 딩크인데 남자는 딩크 원하는 사람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있긴 있어 나만 하더라도. 일단 난자 얼리는 건 생각해 봐"

"요새 친구 만나면 냉동난자 이야기한다"


확실히 또래 친구여서 말이 통했다. 우린 같은 걸 공유하고 있었다.


"나 집 가면 뭐 할 거야?"

"축구 볼걸?"

이런 이야기를 하며 "가자"라고 했다.


"그럼 차 가지러 잠깐 우리 집으로 가자. 나 이사해서 1.5룸이야" 그가 말했다.

"예전에 네집 구경갔을 때 조화 생각난다. 내가 꽃이라도 하나 사줄게"

"아냐. 살아있는 건 싫어"


그의 집은 깔끔했다. 아마 날 만나기 전에 미리 치우느라 병원에서 나오는 게 아닌 다른 쪽에서 온 것 같았다.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현관에서 구경하고 나왔다.


그는 차를 바꿨다고 했다. 그와 동승한 까레라911는 강한 배기음을 냈다. 타자마자 베이비복스의 음악을 틀었다. 너무 익숙한 음색이었다. 그는 '드라이브 좀 할까?' 하더니 둔산동 유흥가를 이리저리 쏘다녔다. 지나가던 행인이 차를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그의 조수석에 앉아있는 동안은 모든걸 잊을 수 있고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머리를 흩뜨려뜨리는 바람, 흘러나오는 음악,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속도를 내는 자동차. 그는 택시가 경적을 울리자 순간적으로 그를 추월했다. 그가 운전할때는 그의 내면의 과격함과 불안함 격정이 모두 풍겨져 나왔다. 그도 불완전하고 실패해서 안도했다.


그는 주차되어있던 내차까지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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