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깊은 우울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게 양극성장애가 의심된다고 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런 줄 알았다. 기분이 바닥을 기다가 어느 날은 좀 올라오기도 했다. 사람들도 다 감정의 높낮이를 겪으며 사는 거 아닌가? 하지만 감정의 낮음이 '죽고 싶다'로까지 발전되었을 때는 나 스스로도 좀 이상함을 감지하긴 했다. 사람들은 쉽게 죽음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난 너무 쉽게 죽음을 생각했다.
상사의 죽음 때문이었을까. 그가 죽기 전 내게 보낸 카톡을 씹고 부고를 듣던 날,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얼마 전까지 내게 톡을 보내던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 있는 거야?' 그건 내가 소리친다고 해도 바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거면 기나긴 삶은 왜 살아야 하는 거야?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답을 찾을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을 관찰해도 어떤 큰 뜻이 있어서 사는 사람은 찾기 드물었다. 나는 삶의 유한성이 슬퍼서 술을 마셨다.
내겐 아무 목표도 없었다. 대입 후에도 '적당한 직장만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안일하게 살았다. 물론 그때도 취업은 어려웠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도 취업이 어렵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어려우면 지금 내 행위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 거잖아?'며 합리화했다. 내가 이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불안한 가정환경이라고 하기엔 부모도 피해자였다. 그들은 나보다 더한 환경을 극복하며 꾸역꾸역 가정을 부양한 죄밖에 없는 것이다. 어머니가 내게 준 헌신적인 사랑도 이 세상의 수많은 가정불화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사실 완전히 불우한 가정환경이라기엔 어릴 적 분명 화목했던 순간이나 배드민턴을 치며 웃던 것들은 스틸컷으로 남아있다. 결국 그런 유년시절을 탓하기엔 1. 내가 지금 우울하다 -> 2. 이유를 찾는다 -> 3. 가정 탓이다라는 논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안 좋은 건 크게 생각하고 좋았던 건 망각하는 일련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부모로 옮겨간다면. 할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고 그렇게 취하고 나면 가재도구를 박살 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려웠던 농촌에서 그러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웠던 거 아닌가. 반면 어머니의 가정환경은 부유했던 외할머니가 가난했던 외할아버지를 만나 넉넉하지 않았다는 거 빼곤 대체적으로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런 거 때문인지 몰라도 항상 친가는 불편했고 외가는 그냥 마음이 갔다. 같은 동네에서 만나 중매로 결혼했던 부모님이지만, 객관적인 조건은 친가가 낫다고 해도 외가는 친가가 가지지 못한 가치를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친가가 외가를 무시하는 걸 보면 인간의 계급을 나누려는 행동이 얼마나 의미 없고 또 유치하기까지 한 것인가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게 내 우울의 근원인가. 아버지와 나는 동일한 사람이었다. 결국 그렇게도 욕하던 아버지를 닮아있는 나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싫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 남에게 기분 좋은 말 같은 건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외골수, 책임감으로 인해 고민이 있어도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결국은 완수하고야 마는 장남기질,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즐기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선호하는 것과, 그런 한국이 싫어 외국으로 몇 년간 파견을 나가있다가 오는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다 아버지를 닮아있었다. 아버지의 완고함, 고집, 폭력성은 나 또한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이기고 싶었다. 적어도 아버지보단 많은 부를 쌓아 올려야 했고 아버지보단 성공해야 했다. 어쩌면 아버지를 가장 증오했지만 결국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것도 그였다.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죽일 수 없었다. 아버지가 나의 목을 조르던 그날 나는 차라리 아버지에게 죽임 당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목을 조르던 아버지의 악력은 너무 약했다. 그건 그냥 목을 감았다 푸는 정도의 힘에 그치고 말아서 아버지가 날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아버지의 화를 이기지 못해서 그랬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도 많이 힘들었겠지. 우울증 약을 털어 넣으며 그도 노력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는 그에 대한 연민도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자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밤이 되면 술을 마시러 나갔다. 지독히도 술을 먹던 할아버지처럼.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힘들어했지만 결국 가장 힘든 건 나였다. 대입 이후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절망감, 절대 안 될 거 같은 사람에게 지질하게 매달리면서 날 숭배하는 애들은 매몰차게 떼어냈다.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건 잘 안 가져지고 쉽게 얻은 건 버리고 싶었다. 그런 가능성을 시험하느라 모르는 사람에게 내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들이 내게 갖는 진심을 쉽게 버리고 가지고 놀았다. 그들이 아파하면 내가 이긴 거 같았다. 그러면 또 사냥을 나갔다. 반복의 끝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런 것들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그들이 내게 진심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불장난 같은 거였을 수도 있었으니 피차일반이라고 정당화했다.
죽고 싶었을 때가 있었지만 취업을 하고, 취업을 했으니 결혼을 해야 했다. 그러려면 누구를 진지하게 만나야 하는데 진지하게 만난 사람조차 그의 조건을 보고 만나놓곤 그가 떠나자 피해의식에 젖어있었다. 그의 직업이 아니었음 애초부터 만나지도 않았을 외모였다. 그에게 진심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에게 진심이고자 했던 내 속임수'였단 걸 헤어지고 알았다. 난 그에게 진심인 나를 연기했던 것이다.
그와 헤어지고 만난 윤을 ‘진심을 말하기 위해' 만났지만 결국 '내가 너에게 진심을 말했으니 너도 진심을 말해줘'라는 등가교환에 지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를 찾는 것도, 나의 필요에 의해 그를 요구했던 것이고 그는 그럴 때마다 군말 없이 만나주었다. 결국 똑같이 그 주변에 포진되어 있는 전문직형을 이야기할 때면 '얘도 주변인맥이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류이구나' 지나온 데이터가 다시금 축적된 것도 사실이었다. 축구를 좋아한다면서 집에서 같이 보자고 얘기할 때는 '쓰레기 같은 새끼'라는 생각이 들어 다신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애써 좋은 말로 거절해 놓고선 끝까지 나는 나이스한 사람이지만 너는 폐급이야-를 인식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그가 날 얼마나 같잖게 봤으면 제대로 된 데이트도 하지 않은 채 집엘 가자고 했을까'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말을 들은 이상 그를 손절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조건이나 만나면 입안의 혀처럼 구는 그의 기질이 그를 지인으로 남겨두게 했다. 나는 내가 갖지 못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보면 갖고 싶었다. 내 완고함과 대비되는 그의 다정함, 내가 아버지로부터 느껴보지 못한걸 그에게 느낄 때마다 그를 놓긴 싫었다. 그와 내가 지인인 사이에, 뉴페에게 직진을 하는 걸 보면서 '난 그 정돈 아니었던 거구나' 다시금 확인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순간, 난 지독한 상실감에 절어 있었다. '얘는 끝났네'라고 생각하며 이젠 별 볼 일 없겠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윤 뿐이었다. 진짜 가지고 싶던 사람은 너무 멀리 있었고, 그런 (진짜) 사람을 보러 가기엔 내 자존심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에야 자존심 같은 건 버릴 수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환의) 거듭된 완곡한 거절은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원치 않게 유배온 지방생활 속에서도 어떻게든 서울에 발붙이려고 노력했으나 결국엔 남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인 데다 윤은 내게 확신을 주지 않았다. 나도 윤에게 확신을 주지 않았으니까라고 하면 피차일반이지만 그러기엔 그가 나보다 덜 아쉬웠다. 윤은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만나주었지만 나를 필요로 하진 않았다. 그가 낚싯대를 내게 걸었을 땐 나는 그가 필요하지 않았다. 몇 번의 소개팅을 그가 해주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는 그 상대가 나랑 어울릴 거라 생각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소개를 원하는데 짝이 없는 사람을 찾다 보니 나였던 것이었다.
최근 만나 힘든 걸 토로하며, 윤 때문에 웃을 수 있었지만 끝까지 믿음은 없었다. 떠보는 듯한 말, 집에 들렀다 갈래라는 지겨운 멘트, 갑자기 잡은 손목, 그의 집까지 가서 구경시켜 주겠단 말에 현관에서 한 발짝도 들어서지 않으니 그도 포기했지만, 끊임없이 내 외모를 칭찬하고 '자기 일 가지고 있고 성실하고 너만큼 이쁘면 돼'라고 말하는데 헤어질 때 날 보는 그의 눈이 동태눈이었다. 진심인 사람을 만날 때 느껴지는 눈빛을 알아서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은 또 고독했다. '고마웠어. 연락할게'라고 윤에게 대화를 마쳤지만 연락하겠다는 말은 연락을 안 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이건 환에게 배운 거다. '연락할게'라고 말하면 그의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단 걸 기다리는 동안의 무력함을 통해 배웠다. 그러고 보면 환은 잔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