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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싸우기

by 강아

연초에 인사발령 나고 나서 원치 않는 업무를 분장받았다.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나 묵살되었다. 3월은 내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다른 사람들 휴가 내고 일 없는 거 뻔히 보이는데 끝없는 숫자의 행렬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4월이 되자 보스는 분장받은 업무에 대한 잔금을 업체에게 주라고 했다.


검수조서를 작성했더니 보스는 '이걸 왜 네가 해? 그쪽 보고 써주라 해'란다. 그래서 전임자에게 하라고 했더니 전임자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이걸 왜 제가 해야 합니까"라고 말하는 그에게 "그럼 제가 해야 되나요?"라고 반문했다. 개저씨들과 싸우는 건 이골이 났다. "추가과업이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검수를 합니까"라고 했더니 이번엔 그의 상사를 데리고 왔다. 개저씨 둘과 싸우는 것도 일 아니다. 사무실에서 소리 지르며 싸웠다. "업무분장이 되었는데 이걸 왜 전임자가 써야 하죠?"라고 말하는 그쪽 보스에게 입에 거품 물고 싸웠더니 내 보스가 중재해 줬다. 나중에 나의 보스는 '근데 타 부서에서 써줘야 하는 거야?'라고 되물었다. 그가 "이거 왜 우리 부서에서 써"라고 했으면서 나보고 그 검수조서를 옆부서에게 전달한 게 아니고 처음부터 쓰라고 한 거냐고 했다. 그는 싸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담당자(나) 불러서 대신 싸우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투견이 됐다. 나는 잃을 게 없었다. 내 이미지나 평판도 더 떨어질 데가 없어서 꼬투리 잡으면 끝까지 물고 안 늘어졌다. 우아하고 나이스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좋게 말하면 얕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게 지난 십 년간 배운 거다.


결국 전임자는 조서를 작성해 줬고 기안했다. 그 이후에 업체에 돈 지급하는 것도 그쪽보스라는 사람이 문서도 제대로 만들 줄 몰라서 업체한테 잘못말해서 다이렉트로 업체랑 대화했다. 업체는 '돈 빨리 지급 못해주면 부도나요'라고 앓는 소리를 했다. 나는 직원이랑은 개처럼 싸우지만 업체한테는 잘해준다. (업체의) 거짓말일지라도 최선을 다해줬다.




그러고 4,5월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 사업건에 대한 완료보고하고 추진계획 세우고 공고를 띄웠다. 작년보다 한 달이나 기한을 앞당겼지만 별도의 수고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과거부터, 한건 당연한 거고 놓친 건 비난받아왔다. 가끔 상위는 전화가 와서 정산 언제 할 거냐고 했다. 원치 않던 업무분장건이었다. 하위로부터 정산을 받아서 완료 보고 쳐야 했다. 4개의 하위는 기한까지 정산보고를 하지 않아서 몇 번을 독촉했다. 그러나 아프다 출장이다 회의다 전화할 때마다 사유는 바뀌었다. "하위가 갖가지 사정을 대며 정산보고를 미룹니다" 보스한테 보고했다. 보스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리스크 관리보다는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 상위한테 또다시 전화가 왔다. "시스템상에는 정산반영을 해야 해요" 하지만 업체에 돈이 나간 시점은 이미 사업기간이 끝난 후였다. 그건 되돌릴 수도 없는 거고 업무를 받은 것도 나는 4월에 받았다. 근데 4월에 나가서 정산을 못해주겠단다. 보스랑 말해보란다.


보스는 반차내고 집에 가있었다. 어제 시스템과 전임자에게 물어봐서 해결방안을 물어보고 보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위는 오전 10시경에 보스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보스는 또 나를 조졌다. 인수인계는 그가 받았으면서 나보고 물었다. "돈이 사업기간 외에 나갔다고 해서 정산이 어렵겠다고 하네?" "시스템에 문의했더니 상위랑 협의하면 문제없다고 말합니다. 하위로부터 문서가 안 와서 지연됐고요." 보스는 다시 상위에 전화를 해서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하며 얼마간 통화하더니 내게는 "보조금법에 의하면 완료 후 2개월 이내에 정산하게 되어있네. 법 위반이야"라고 말했다. 시발 어쩌라는 거야 내가 일을 받은 시점이 4월이었는데. 그때 돈 내보낼 수밖에 없었고 3월 내내 업무수습하느라 정신없던걸 알고 있으면서 내게는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보고해'라고 한다. 그리고 중간에 하위로부터 정산보고가 안들어온다고 중간보고를 분명히 했다. 예전 상사에겐 바로 보고했다가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해달라는 거죠?'라는 말을 듣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찾고 보고할렸더니 이러는 것이었다. 사람 by 사람이겠지만 결국 업무분장을 왜 내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직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추가분장에 대한 대가를 명확하게 해주지 않으며 담당자만 조지는 회사를 나는 참을 수 없다. 요샌 아침에 눈뜨면 눈떴다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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