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간절하게 탈출하고 싶다

by 강아

민원인으로 인해 금요일을 엉망으로 보내고 나서 주말은 최악이었다. '운이 안 좋아서 그런 전화를 받은 거야' 그 사람의 신변의 이유가 있어 그런 막말을 들은 거라고 애써 생각했지만 감정을 받은 건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환기하려고 본 영화도 (우울한 내 용인건 알았지만) 더 감정을 가라앉게 만들어서 토요일은 긴 잠을 잤다. 일요일은 애써 사람들을 만났지만 말 한마디 안 하고 혼자 꽁해있던 날이었다. 월요일이 오는 게 지옥같이 싫었다.


출근해서 마주하기 싫은 상사에게 '안녕하세요'인사를 했다. 많은 부분 부조리극에 통탄을 금치 못한다. 안녕하지 못한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야 하는 아이러니. 그래서 과거에 인사를 하지 않았지만 왜 인사 안 하냐는 말에 인사를 할 수밖에 없는 내 처지도 슬프다. 그도 할 말이 있고 나도 할 말이 있었지만 회의가 있고 공사다망하다는 이유로 오전은 그냥 지나갔다.


점심에 집에 가서 에튀드를 연습하는데 최근 연습을 안 했다고 내 손은 정직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 곡을 완벽히 연주할 날은 올까'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의 미스터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감정이 실리지 않은 곡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고로 완벽한 연주는 불가능에 가깝다. 삶의 많은 부분이 불가능한 부분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생각하면 인간의 고통에 눈감을 수밖에 없다. 다 애쓰면서 살아가는 거지.


점심을 먹자 상사는 말했다.

'녹음 들어봤는데 왜 전화를 끝까지 받았어. 중간에 끊지'

전화를 끊는 게 좋은 방법이 란 건 방법론적으로 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상황을 보고 '그때 그렇게 했어야지'라는 결과론적인 말은 상대방도 나도 김 빠지게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이 감정 섞어서 말하잖아요' 수화기 너머의 그는 누가 듣더라도 고압적인 태도로 말하고 있었고, 그런 뉘앙스로 말하는 사람에겐 나도 절대 지지 않는다. 똑같이 삿대질을 하면 했지 '예 제가 알아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하는 말은 절대 못 한다. 그건 그냥 성향의 차이다. 한발 숙이고 들어가는 게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세상엔 '그런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가 있는 것이다.


내가 화가 난 건, 결국 상사가 내게 말한 건 '내가 아닌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 많은 부분 고칠 것을 강요받았다. 그러면서 내가 깎여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것들은 회사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만들었고 그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빨리 도망쳐야 돼'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많은 시도들이 물거품이 될 때마다 나는 또 좌절해야 했고 그런 경험들은 다가올 미래를 부정적으로 그리게 했다.


'주말에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똥 밟았다고 생각해도 기억을 지울 수 없었어요. 저는 전화 싹수없게 받지 않아요. 상대방이 먼저 도발하지 않으면 저도 안 건드린단 말입니다.'


라고 말을 했지만, 결국 날 믿지 못하고 굳이 녹음을 돌려본 상사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두려울 게 없어 '녹음한 거 들어보세요'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녹음을 들어본 상사가 싫었던 것이다. 내가 그상황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부하를 믿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뒤통수 맞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란 사람은 차라리 그런 사람이니까. 나와 다른 사람은 '그런 사람이구나' 이해하면 된다는데 나는 그런 건 아직 잘 안된다. '다른' 사람을 싫어하곤 마는 것이다.


그는 반차를 내고 가버렸고 나는 추가업무부장된 일거리를 하느라 반나절을 보냈다. 간절하게 탈출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