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회사에서 핸드폰의 스크롤을 무한정 내리고 있었다. 날씨는 겨울의 초입에 들어섬을 알리는 것처럼 을씨년스럽게 추웠고 그러자 좋은 코트에 대한 갈망이 들었다. 예전에 도곡동에 살던 친구 안나는 조선일보 광고부에서 일하며 명품담당자와의 미팅에 업추비를 긁곤 했는데 언젠가 그녀를 만났는데 마누엘라를 입고 나온 것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던 인터넷 쇼핑몰 모델이 마누엘라를 카피해 인스타로 팔기도 할 만큼 막스마라는 갖고 싶은 것이었지만 삼백만 원을 주고 사기엔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고나라를 뒤지곤 했다. 불현듯 생각이 날 때마다 들어가 보곤 했지만 금액이 마음에 들면 다른 사람이 먼저 구매를 하기 마련이었고 그렇지 않은 건 백만 원이 넘을 만큼 중고임에도 고가였다. 가격 때문에 나는 구매의지를 갖다가도 섣불리 사진 못했다. 추워진 날씨는 그런 욕망을 다시금 들게 했고 들어간 중고나라에는 육십만 원에 코트가 올라와 있었다.
'단추가 하나 떨어져서 저렴한 가격에 수선해서 입으시라고 올립니다'라고 말한 그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지역이 어디신가요?' 물으니 '대전입니다'라고 했다. 대전이라면 30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고가구매는 절대 송금을 먼저 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가겠다고 했더니 그는 오라고 했다.
'출발합니다'라고 문자를 하고 점심시간을 써서 다녀오면 시간이 얼추 맞을 것 같았다. 가는 길에는 선입금 하지 않은 자신을 칭찬하며 옷을 가져오면 집 앞의 수선집에도 빨리 맡겨야겠다는 것 등을 상상하며 '이제 나도 좋은 코트 하나 갖는 건가' 별 생각을 다하며 그 와중에도 약속한 12시를 맞추기 위해 티맵으로 최저시간으로 운전을 했다. 구매자가 그저께 올렸는데 단추를 달아야 한다는 귀찮음 때문에 구매자가 없었던 것인가 생각하던 와중 눈이 오기 시작했다. '올해 첫눈이네'라고 바라봤을 땐 누구 하나 생각나는 사람이 없단 생각에 쓸쓸했지만 곧 좋은 코트를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만나기로 한 12시에 도착했다. '시간까지 완벽하네' 쾌감을 느끼며 구매자가 알려준 아파트로 도착했다. 그는 '차량번호 알려주시면 입차등록 해놓을게요'라고 말했기 때문에 차단기는 바로 열렸다. 하지만 전화를 하자 전화기가 꺼진 상태라고 했다. 나는 당황해서 몇 번이 곤 다시 전화했지만 들리는 음성은 '전화기가 꺼져있어..'라는 무심한 멘트뿐이었다. 나는 그제야 속았음을 알 수 있었다.
갖고 싶었던 고가의 물품, 그걸 이용한 판매자의 사기임을 알아챘을 땐 차를 운전하며 했던 기대감과 그 옷을 입었을 때의 만족감 같은 것이 푸슈슉 녹아버리는 느낌이었다. 트럭 뒤에 잠깐 세워두었던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허망함이란 감정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 코트를 봤을까, 결국 명품에 관심 없다고 말하면서 싼 가격에 살 수 있단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라고 생각하자 결국 모든 것이 무상함을 알고 있으면서 순간의 미혹에 흔들린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런 사기 때문에 중고거래를 안 하겠다고 몇 번이 곤 탈퇴 했으면서 욕심이 눈을 가린 것이었다.
‘그 옷을 입는다고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리도 그 코트에 집착했을까'라고 생각해보니 나는 사실은 친구가 입은 코트가, 그녀가 사는 도곡렉슬을 비유하는 것 같아서 부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경험으로 다시는 마누엘라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한때의 욕망이 물거품으로 사라졌을 때 인간은 얼마나 허망해질 것이며 삶은 얼마나 많은 경험으로 인간을 깨우치게 하는 것인지 가늠해 볼 뿐이었다. 나는 '모두 허상일 뿐이야'라며 다시 회사로 털레털레 돌아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