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카우리스마키감독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를 보면 남자가 여자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것도 너무 무뚝뚝해서 웃긴다. 핀란드사람들은 대화할 때 미소 짓지 않으며 이상하리만큼 솔직한 것 같다. 친한 사람 한정이겠지만 서로를 디스 하는 게 친분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면 즐거워진다. 마누라한테 술을 많이 마셨다고 맞을 거라고 말하는 부랑자남자는 주인공을 구해줄 만큼 인정은 있는 사람이다. 그는 모든 재산을 강탈당하고 맞아서 과거기억도 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을 얻는다. 그를 도와준 사람은 경찰인데 주인공이 집세를 내지 못하자 키우던 강아지 한니발한테 물라고 시킨다. 하지만 한니발은 주인공을 물지 않았고 감독이 좋아하는 건지 핀란드인이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강아지가 귀여웠다.
주인공은 구세군에서 일하던 여성으로부터 '몰골이 말이 아니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도 별거 아닌데 주인공이 자기 상태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아이가 된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이 어딘가 모자라고 잘 못하고 그러면 도와주고 싶지 않은가.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는 세탁하는 방법을 배우고 근사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구세군 밴드를 본인의 집에 락앤롤등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며 초대해서 결국 새로운 장르를 연주하는 밴드로 만들어낸다. 여성에게 데이트신청하는 것도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비질을 하는 척 밤길에 데려다주겠다고 하고 눈에 뭐가 들어갔다고 하고 볼에 입 맞춘다. 그걸 또 여자는 '내 볼을 훔쳤네요'라고 웃지도 않고 말한다. 기숙사여서 5초 데려다주고 여자는 그가 가고 나서 자기 볼을 쓰다듬는다. 나는 이게 코미디보다 더 웃겼다. 영화 장르가 코미디긴 하더라.
그의 기억이 돌아올 때쯤 길거리에 용접을 하던 사람들을 제치고 그가 직접 하면서 그의 적성이 드러난다. 결국 사장이 세금 내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실력이 좋은 그를 채용하겠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원이 없는 그가 통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은행에 가서 강도를 만나 직원과 방에 감금된다. 구조신청했으니 오겠죠-라고 주인공이 말하자 '구조신청 안 했는데요'라고 너무 태연하게 말하더니 직원은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고 구두로 화재경보기를 깨서 구조신청한다.
신원이 불분명한 그가 경찰에 잡혀 죄인이 되려 할 때, 그는 여자친구한테 전화하겠다고 하며 그녀에게 전화하고 구세군은 지체 없이 변호사를 보내준다. 죄 없는 사람을 48시간 이상 감금하면 경찰책임이란 말에 경찰은 '정신이상자'라는 조항을 찾아 그럴 수 있다고 반박하지만, 변호사는 다시 '정신이상자란 증거가 없으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를 자꾸만 도와준다. 카페에 갔더니 은행강도가 들어오더니 자기는 사실 사장인데 기계를 샀다가 사정이 안 좋아져서 그걸 정부가 압수해 가더니 3배로 다시 팔았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통장이 묶여있었고,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지급정지된 자기 통장의 돈을 강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직원에게 돈봉투를 나눠주라고 말하며 주인공에게도 사례를 한다. 그러더니 그는 상황을 견딜 수 없는지 총소리가 들린다.
경찰이 신원이 없는 그를 수소문한 끝에 그의 와이프란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 이르마의 샌드위치를 받으며 그는 결국 떠나지만, 집으로 왔을 때 그는 기억을 잃기 전에 도박에 빠져 집의 음반도 다 팔고 나락인생을 걷고 있어 아내와도 이혼절차를 밟고 있었다. 아내의 남자친구는 그와 마치 친구처럼 주인공을 다시 역으로 데려다겠다고 하며 그런 호의도 역시 받아들인다. 다시 부랑자 마을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강도했던 사람들에게 습격당하고 있었고 주인공을 다시 본 강도들은 그를 위협하려 한다. 그러자 구세군의 공연을 본 모든 부랑자가 강도를 향해 다가간다.
이르마와도 다시 만난다. 그는 돈도 없고 집도 없었지만 카페에 들어가서 물은 공짜라고 말하는 주인에게 물을 받아서 가져온 한번 쓴 티백을 타서 먹어야 할 처지다. 그런 그를 쫓아내지 않고 주인은 팔고 남은 거라며 어차피 버릴 거라면서 음식을 준다. 오히려 그가 많은 걸 가졌을 때- 아내, 돈, 음반- 등 그는 불행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없었을 때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중한 걸 자꾸 받았고, 과거에 진짜 좋아하던 음악을 팔아 도박을 하던 그는 정말 좋아하던 '음악'을 다시 접한다. 비록 누가 버린 음향기기를 역시 친구의 도움으로 수리해서 집으로 가져온 다음, 그걸 성가대 사람들에게 들려줘서 멋진 밴드를 창조해내기까지 한다.
영화는 네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네가 사람들과의 진실한 관계와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이 있으면 된다고 말해줬다. 그게 더 많은 걸 가지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내게 하는 말인 거 같아서, 나는 미약하지만 하고 싶은 게 있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영화가 끝난 후에 기분이 꽤나 괜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