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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

by 강아

여느날과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 때가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도 기억이 안날만큼 평범했다. 까페에서 그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그는 뭔가 할말이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했다. 이미 그와의 편안함은 일상이었기때문에 슬슬 권태를 느끼던 참이었다. 그래도 그런 무료함이 흔히 연인사이에서 이뤄지는 단계의 한 부분일것이라 사람들이 말했기에 애써 참고 있었다.


주문을 한다음 빵을 가져와서 한다는 소리가


- 우리 시간을 갖자


였다. 나는 이미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미래를 함께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놓지 않는다면 이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 생각한 내 착각이었다. 내가 시작한 관계였고 어리석게도, 그가 헤어짐을 말한다는건 내 시뮬레이션에 없던 일이었다.


그는 이주의 시간을 갖자고 한 뒤 정확히 보름뒤에 찾아와 다시 헤어지자고 함으로써 마치 빚받을 일이 있는 사람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이유가 뭔데?

눈물 콧물 흘리며 묻는 나에게 그는 -우린 쉬는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달라

라며 매정하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이후부턴 모든걸 혼자 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다녔다.


지난일을 이렇게 적는 이유는 이젠 우리가 헤어졌다는 사실이 떠올려도 '그랬구나' 정도의 아무렇지 않은 굳은살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전 전화해서 잘 지내고 있냐고 내게 물었다.


예전에 그가 그랬듯이 나의 가족의 안부를 묻고 별거 아닌 말에도 웃음지으며 마치 어제도 통화했던 사람처럼 편안한 말투였다.


-지난일이야 잊어. 다신 연락 안했으면 좋겠어


라고 하자 그는 알았다고 했다.



더이상 그를 욕망하지 않았다. 다시 연락한게 단순 호기심이었는지 다시 시작하고자 였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사람의 일은 닥침으로써 결국 당시에는 부정적이라고 생각한 일이 다행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결국 모든 일들이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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