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을 포기합니다.

by 이서진

매달 받는 쥐꼬리만 한 월급!

&

동료들보다 높이 올라가는 것! 마치 하늘 끝까지 닿을 것 같지만

실상 회사 밖에선 아무것도 아닌 진급!


월급과 진급!

이 두 가지는 저 같은 월급쟁이들이 회사를 다니는 목표입니다.

그리고 회사가, 직원의 목줄을 조이는 구실이 되기도 합니다.


우선, '월급'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회사에 취직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움직임은 '돈'이 필요합니다.

배고픔을 달래주는 밥을 먹고, 몸을 가리며 멋을 내는 옷을 사고,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지요.


독신이라면 가난하더라도 혼자 참으며 살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돈, 아이들 교육비 등이 필요합니다.

또, 부모님께 용돈과 병원비도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자식, 훌륭한 배우자, 능력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돈'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성적이 좋은 사람이 행복을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압니다.

이처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과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경제활동을(직장생활 등) 해야 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고 봅니다.


직장인에게 '월급'은 자식처럼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인을 '월급쟁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다음으로,

직장인의 목 줄을 죄는 '진급'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진급을 하면 뭐가 좋을까요?


우선 월급이 늘어납니다. 직책에 따라 월급 외 사업추진비가 더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짧게 보면 이번 달 월급이 늘어나서 좋고 길게 보면

월급여를 기초로 산정되는 퇴직금과 연금이 늘어나니 더 좋습니다.


그리고... 돈만큼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물론, 회사 내에서만 통하기는 하지만...)


나는 예전과 똑같이 회사 안을 돌아다닐 뿐인데

직원들이 알아서 저를 대접해줍니다.


시키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제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조금 치사하지만) 식당에 가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팅하지 않아도 되고

물컵에 물을 따르거나 냅킨을 배분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지 제 의견에 귀 기울여 줍니다.

대접받는다는 것!

한번 맛보면 포기하기 힘들다는 '정치'의 마력과 비슷하겠죠.

그래서 진급을 해 본 사람일수록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신의 '직위'때문이지

당신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표시는 아닙니다.

그 직위가 사라지는 순간, 당신이 받은 대접 중 대부분은 사라집니다.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된 인간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퇴직 후에도 내게 속해있고, 나를 빛내주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돈'과 달리

진급 혹은 직위는 조금만 시야를 넓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내 손에 쥐고 있어도 모두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허망한 것이죠.

분명히 내 눈으로 보이고 한 번 만져 본 것 같은데

결국엔 사라지고 허전함만 남기지요.


그래서 저는 진급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잠시 기분 좋을 진급 대신,

퇴직 후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에게 받는 의전으로 인한 짧은 우쭐함 대신에

저는, 가족과 저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진급을 하기 위해서 소비돼야 하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아들과 가정에 집중하고 저의 건강을 찾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아침 7시 30분!

새벽형 인간인 제가 보통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간입니다.


하루 종일 사람과 일에 치인 후 피곤한 상태로 야근을 하는 것보다

맑은 정신으로 일하는 게 효율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출근하지 전까지!

저녁에 도착한 공문을 처리하고 메일을 확인합니다.

드립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신 후 오늘 업무 스케줄을 천천히 세우는

이 시간은 제게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어제도 여느 날과 똑같이 커피를 마시며 업무수첩을 정리하던 중,

팀장님의 자리를 우연히 봤습니다.

딸랑 책상 하나뿐인 제 자리와는 다르게 팀장님 자리에는 개인용 옷장과 캐비닛이 있습니다.

'고작 한 평도 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우린 그렇게도 치열하게 일했었구나...'

서글픈 마음이 들던 중 갑자기 창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늦은 겨울의 해 뜨는 모습!

도시가 밝아지는 순간을 오래도록 남기고 싶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KakaoTalk_20220227_194914776_02.jpg 팀장님 자리에서 바라본 회사 밖 풍경!

사실, 직장인이 진급을 포기한다는 것은

시험 당일, 늦잠 자느라 공부를 하나도 못했다고 호들갑 떠는 여고생들의 깜찍한 거짓말과 같은 것입니다.


포기... 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직급이 조금씩 올라갈수록

한계가 보이는 저의 능력을 감안하다 보니 욕심을 비워졌고 결국 포기하게 됐습니다.


간부님들의 훌륭한 안목이 존경스러운 만큼

제가 버티고 버텨 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도 그분들처럼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문 밖을 보게 된 순간, 처음으로 진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마주 보거나 벽을 등지고 앉는 직원의 자리와 달리

팀장님들 자리 뒤쪽엔 보통 커다란 창문이 있습니다.


내부가 아닌, 외부를 볼 수 있는 창문

잠시라도 회사를 벗어나 외부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

사무실 속 자신만의 공간에 외부와 통하는 곳이 있다는 것!


제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저 창문을 갖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창 밖으로 나갈 것인가?'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이 건물, 저 창 밖의 세상이지 저 좁은 자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역시나, 저 자리를 얻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는 것은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짧은 순간, 팀장님이 오시기 전 그분의 자리를 보며 느낀 것은 바로!

진급을 포기하고 내 생활에 집중하는 게 더 가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최대한 늦게 눈치챌 수 있게 적당한 포장은 해야겠지요. 저 창 밖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앞으로도 전,

이렇게 주인이 없는 자리에서 몰래, 잠시 얻는 평화로움을 위로 삼고

적당히 저를 포장하며 회사를 다닐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을 적고 책도 읽으며,

아들 둥이가 잠들기 전 뽀뽀를 해주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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