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잘 먹고 잘 자기를

by 이서진
"책방 이름은 왜 굿나잇이야?"
"잘 먹고 잘 자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잖아."
"그게?"
"다들 그 기본적인 것도 못해서 힘들어하잖아. 그러니까 부디 잘 먹고 잘 잤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
"잘 먹고 잘 잔다. 인생이 겨우 그뿐인가?"
"그럼 뭐가 더 있나?"

-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은섭과 해원의 대화 중 -

휴직을 하니 마냥 좋았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

심리상담 선생님께서는 유독 내가 '내 시간, 내 마음대로'라는 말을 많이 한다며 계획적인 삶에 왜 이렇게 집착하게 됐는지 같이 알아보자고 하셨다.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짐작 가는 부분이 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내게 집은 천국이다. 분명히 몸은 더 힘들고 내 시간이 부족한 것은 똑같지만 대부분의 일이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등교를 한 후 오후에 다시 집에 오기 전까지. 오전 8시 20분부터 오후 3시까지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다. 청소, 빨래, 음식 장만 등을 내 계획대로 하면 그뿐이다. 누군가 갑자기 침입해 청소를 했는지 안 했는지 점검하거나 내가 끓여 놓은 김치찌개를 두고 맛이 있니 없니 평가하는 사람이 없다.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이 없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냥 하면 되는 것들을 하는 것은 힘들지 않다. 오히려 TO DO LIST를 삭제할 때 느끼는 성취감까지 맛볼 수 있다.


아무튼 그래서 회사를 쉰 후 수면제를 끊으려고 노력했고 결국 휴직 2주 만에 끊었다.

생각해 보니 내일 출근할 필요가 없으니까 굳이 밤에 잘 필요가 없었다. 낮에 언제든지 자면 되니까.

밤에 자야 될 필요성이 없어지니 불면증이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밤마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절뚝절뚝 거리며 걷다가 지팡이를 사서 걷게 됐다. 그러다 손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지더니 물컵을 짚는 게 어려워졌다. 다행히 항상 아픈 게 아니라서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그러다가 2주일 전부터 통증이 심해졌다. 주로 팔, 다리가 아팠기 때문에 통증이 심할 때는 다리를 다 잘라버리고 싶었다. 우울증으로 처방받은 수면제를 다시 꺼냈다. 한 알로 버티던 것이 일주일 전부터는 두 알을 먹어야 잘 수 있었다. 걷다가 울었다. 물을 마시다가 컵을 잡기 어려워지면 또 울었다. 다시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임의로 수면제 양을 늘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집 앞에 있는 정형외과를 갔다.


"왜 대학병원으로 안 가고 여기로 오셨어요?"

동네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의 반문에 뭐라고 답해야 될지 몰랐다.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질문에 '여기저기, 이쪽저쪽, 이때 저때'라고 말씀드렸을 뿐인데.

의사 선생님은 증상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은데 먹고 있는 약이 많아서 일반적인 약물, 물리치료를 하기에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뇌신경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원래 다니던 대학병원으로 꼭 가라는 말씀도.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받던 날.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에 비해 어려 보이던 내 걸음걸이를 보신 교수님은 입원을 결정하셨다. 그렇게 난 입원 하게 됐고 팔에 주렁주렁 뭔가를 달고 있지만 다시 잘 자게 됐다. 치료가 남아있고 그 과정도 조금 아프지만 일단 잠을 잘 수 있게 돼 좋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남주 임은섭이 말한 '굿 나잇'은 아니겠지만 혼자 밤새 뜬 눈으로 아파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굿나잇이다.


오늘밤도 부디 모두 잘 먹고 잘 자기를 바란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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