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하는 피.

by 이서진

몇 달 전부터 신경정신과 진료와 병행해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 상담을 받는다.

나에게만 집중된 50분. 처음에는 상담이 참 좋았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우울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과거의 경험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그것만 찾으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셨다. 평소에 프로이트 보단 아들러 심리학을 더 옹호하는 나였지만 확신 있게 말씀하시는 선생님과 상담목표에 믿음이 갔다.

단지 내가 마음이 약한 것이라고, 그래서 남들 다 겪는 일을 이기지 못하는 거라던 사람들에게 난 증명하고 싶었었다. '이것 보세요! 다 원인이 있다고요!'라고.


그런데 상담이 진행될수록 점점 힘들어졌다.

나의 말과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를 관찰하는 선생님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원래 몸을 가만히 놔두지를 못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소용없었다. 내 우울함의 원인을 반드시 찾아 내고야 말겠다는 선생님의 굳은 의지. 내 몸에서 아주 작은 떨림이라도 포착되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날 울리고야 만다.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은 데서 갑자기 울음이 터지는 게 나조차 당황스럽고 부끄럽지만 그렇게 된다.


상담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오늘은 절대로 울지 말자'라고.

아무리 치료라지만 생판 모르는 남 앞에서 우는 건 참 민망하기 때문이다. 한 주간 내 기분이 어땠는지 무슨 꿈을 꿨는지. 이런저런 질문에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손등을 꼬집어가며 안 울려고 애썼다. 시계를 보니 11시 40분이었다.

'잘하고 있어. 10분만 잘 버티면 울지 않고 상담을 끝낼 수 있어.'라고 나를 격려했다.


"자, 그럼 저번에 서진님이 고른 그림카드 얘기를 마저 해 볼까요?"

3주 전, 20여 장의 카드 중 4장의 그림카드를 뽑아놓고 미처 다 보지 못한 카드가 있었다. 뇌신경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느라 3주 만에 보는 그림카드였다.

"저번에 고른 4장의 카드 중 3장만 함께 봤었고 이 카드가 마지막으로 남았었는데 기억나실지 모르겠네요"

라고 말하며 선생님이 그림카드를 뒤집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와락 눈물이 터졌다. 결국 오늘도 울었다.

40분간 억누른 감정이 더해져 울음이 점점 커졌다. 역시 오늘도 나에게 진 것 같은 느낌.

"서진님 이 카드를 보니 어떤 느낌이 드나요? 왜 울게 됐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요?"

"그냥... 너무 답답해 보여서요. 그런데 제가 이 카드를 뽑았을 때는 화목한 가족으로 보여서 뽑은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답답해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날 울게 만든 그림카드는 아무런 죄가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따뜻하고 행복한 카드일 수도.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있는 화목한 그림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 큰 엄마와 큰 아빠로 보이는 중년부부 한쌍. 그리고 손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새배 중인 남자아이까지. 모두 다 웃고 있는 행복한 그림.


훌쩍훌쩍 참아 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꺼이꺼이 10분을 꽉 채워 울었다. 상담센터를 나서자마자 건물 앞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상담만 받으면 대성통곡을 하듯 울기 때문에 항상 그 벤치에서 쉬다 간다. 격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에너지가 쫙 빠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동선에 늘 벤치가 포함된다.


갑자기 우는 나를 가만히 보시던 선생님은 내가 오늘 울게 된 이유도 앞으로 함께 찾아보자고 말씀하셨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혼자인 놈들이 있다.
네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니도 똑같다.
우리는 있다 아이가 누구랑도 같이 못 산다. 네 엄마도 결국은 못 버티고 갔다 아이가.
피가 그런 기다. 피가.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하는 피지.
-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제10화 中 -

몇 주간을 계속 울다 보니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울게 된 이유가 있긴 한 걸까? 없는 것 같다.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하는 피. 그냥 그런 피를 가진 사람.

나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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