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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Jan 19. 2024

혼자 호텔 가는 아줌마

나는 남편도 아들도 없이, 혼자 호텔 가는 아줌마다.

호텔로 혼자 여행 다니기 시작한 건 네 번째다.


그 화려한 시작은 2022년 여름!!

https://brunch.co.kr/@lovebero/356

2023년 1분기에 두 번.

그리고 '지금'이다.


한번, 두 번, 횟수가 쌓이면서 호텔 선정하는 데 있어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첫째, 집에서 가까운 곳

여행 중 집으로 돌아간 적은 없지만 갑자기 무서워진다거나 혹은 아들이 갑자기 엄마를 너무 보고 싶을 경우를 대비해 택시로 이동 가능한 거리를 택한다. 아마도 내가 해운대에서 살고 있어서 가능한 조건이기도 하다. 해운대, 광안리, 송정의 해수욕장과 멀게는 영도까지. 해운대에선 조금만 움직여도 여행 기분을 맘껏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의 여행 목적은 혼자, 조용한 곳에서 독서하고 글을 적는 것일 뿐. 이동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로 한다.

둘째, 전망 좋은 곳

네 번의 여행 중 한번 빼곤 모두 2박 3일 일정이었다. 2박 3일 간 혼자 있으면 평화롭고 여유롭고 한적하여 말할 수 없이 좋지만 가끔 심심할 때가 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전망 없는 비즈니스호텔에 숙박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답답했고 그 후론 전망을 확인하고 있다. 호텔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창 밖을 보면 잠시 기분 전환이 되도록 가급적 전망이 환한 곳으로 결정한다. 관광지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덩달아 즐거워진다. 단, 독서에 방해되므로 소음이 심하다는 후기가 있으면 무조건 제외한다.

셋째, 테이블이 있는 곳

내가 여행 오는 이유는 '조용히 글을 적기 위해서'다. 물론,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이유지만. 

폭신한 침대에서 낮잠을 자거나 OTT와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어쨌든 잠시라도 글을 적기 때문에 알맞은 높이와 너비의 테이블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망, 가격, 객실 컨디션이 아무리 좋다 해도 테이블이 없거나 낮은 곳은 제외한다. 의외로 여러 조건 중 이 조건을 맞추는 게 가장 까다롭다. 테이블뿐 아니라 의자도 함께 본다. 테이블과 의자의 높이가 맞지 않으면 오랜 시간 글을 적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여유로운 공간

혼자인데 굳이 여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혼자여서 방이 조금은 넓어야 된다. 주변 관광을 전혀 하지 않고 2박 3일을 방 안에서만 보내기 때문이다. 보통 둘째 날 점심쯤, 물과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잠시 호텔 주변을 나가는 것 외엔 전혀 외출하지 않는다. 방해받기 싫어서 룸청소도 거부하고 사우나, 헬스장 같은 시설도 이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편의시설이 다양한 호텔보다 최근에 신축된 레지던스를 선호한다. 레지던스는 시설이 깨끗하고 호텔보다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일정을 짤 때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이때부터 설렌다.

남편과 친정엄마와 일정을 조율한다. 하지만 최종 승낙권자(?)는 아들이다. 아들은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엄마인 나와 함께 자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번 내 생일 선물로 받은 이틀 자유여행권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이번 여행은 수월히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다음은 숙소선정. 이 부분이 가장 까다롭다. 야놀자, 티몬, 에어비앤비, 쿠팡 등 여러 플랫폼과 블로그 후기를 꼼꼼하게 보느라 나흘정도 걸렸다. 처음엔 해운대 숙소를 예약했다가 취소한 후 광안리 숙소를 예약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선정한 곳은 송정의 한 레지던스였다.

룰루랄라~ 혼자만의 여행 짐 싸기

여행 하루 전부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매일 먹어야 되는 약부터 커피와 핫초코, 마스크팩까지 챙길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귀찮기보단 행복할 뿐이었다. 귤과 사과, 혹시 조명이 어두울까 봐 간이 조명도 챙겼다.

  "엄마는 나 없이 혼자 여행 가는 게 그렇게 좋아? 내가 싫어?"라는 둥이의 투덜거림도

  "엄마 푹 쉬고 와서 둥이랑 더 오래 시간 보낼게."라고 가볍게 넘겼다.


드디어 혼자가 되는 날!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쭉 맑다가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여행을 포기할까?'란 고민은 1도 하지 않고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숙소는 첫 번째 여행조건대로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요금은 8,900원 밖에 들지 않았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호텔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덕분에 비를 전혀 맞지 않고 집에서 호텔까지 '뿅'하고 이동했다.

드디어 방에 입장! 
2박 3일 간 사용할 미니 주방

방에 도착 후 짐을 정리했다. 수납공간이 꽤 많아서 정리가 수훨했다. 캐리어에서 짐을 모두 꺼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 후 베이킹소다 한 알을 넣었다. 20분 정도 놔뒀다가 물을 버린 후 두세 번 정도 물을 더 끓이면 소독된 커피포트 완성! 

커피포트를 세척하는 동안 집에서 야무치게 챙겨 온 귤과 캔커피, 생수를 냉장고에 넣었다. 혼자지만, 혼자여서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먹을 나의 식량들. 화장품을 꺼내 예쁘게 진열한 후 노트북과 책을 꺼냈다.

꺼내놓고 나니 책이 너무 많다. 다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읽고 싶어질 것 같은 책을 모조리 다 챙겨 온 탓이다.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도 늘 이랬다. 수학 공부를 하다 보면 과학이 재밌게 느껴졌고, 과학공부를 하다 보면 국어에 매력을 느끼곤 했다.

책이 없으면 공부의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에 항상 가방에 전 과목 책을 다 넣고 미련하게 독서실을 다니곤 했다.

은희경,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

최근 프랑스 소설에 꽂혀 충동구매 한

마르그리트 뒤라스, 클로디 윈징게르 작가의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두 권에 육아서적까지.

모두 다 읽을 때까지 여기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튿날, 다행히 비가 그쳤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비가 오든 안 오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상관없이 송정 해수욕장엔 서퍼들로 북적거린다. 오늘도 역시 서퍼들이 백사장 반을 채우고 있다. 서퍼들이 입는 옷을 입으면 정말 한겨울, 바닷속에서도 춥지 않은지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블루라인 해변열차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나머지 반을 채우고 있었다. 높은 파도를 등 뒤로 한 채 사진을 찍고 깔깔거리고 간식거리를 사 먹는 사람들 속을 뚫고 나는 당당히 혼자 걷는다.


맛있고 우아한 브런치를 먹고 싶었던 계획과 달리 아저씨 냄새 가득한 돼지국밥 한 그릇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내가 중년의 아줌마인 탓도 있지만 어제 오후부터 내일까지, 밥을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갓 지은 밥과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호텔에서 나오는 물 2개로는 부족한 듯 해 돌아오는 길에 생수, 우유, 빵을 각각 두 개씩 샀다. 


옷을 갈아입고(체크아웃 전까지 외출금지) 책을 본다. 

테이블에서 보다 허리가 아프면 창가 침대에 걸터앉아서 본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TV 앞 소파로 옮긴다. 

늦은 오후, 읽던 책의 페이지가 끝나서야 무라카리 하루키 소설책을 본다.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그러다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적기도, 우유와 커피를 마시거나 아들 둥이와 영상 통화를 한다.

조금 심심한 것 같으면 읽던 책을 바꾼다.

은희경 작가님의 소설책을 읽다가 한 시간쯤 지나면 프랑스 소설을 읽는다.

역시 책을 많이 가져오길 잘했구나, 스스로 만족한다.


내일 아침이면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 아쉽다.

아직도 읽을 책이 산더미인데 다이어리 정리도 해야 되고 복직 후 생활계획도 세워야 되는데.

오늘은 최대한 늦게 잠들고 싶어 저녁에 먹는 진통제는 먹지 않기로 한다. 


부산 그것도 해운대, 해운대 중에서도 송정, 송정 구석에 있는 호텔에서

오늘 밤, 중년의 아줌마, 애 엄마는 아들과 남편 없이 매우 행복할 예정이다.

오늘만은 밤을 지새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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