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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Dec 22. 2023

글에 가까워지기

휴직 기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단편소설 두 편을 적었고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

우체국 직원에게 받은 등기번호 영수증만 남겨진 채,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등기조회결과,

나의 소설이 담긴 등기우편 봉투는 '배송실수'라는 핑계를 댈 수도 없도록

각 신문사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에게 잘 전달이 됐다. 눈치도 없게 말이지. 

역시나 연락은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글에 대한 반성뿐이다. 애초에 소설이 아니었을 수도.


그래도 소설을 마무리한다고 혼자서 바쁘긴 했나 보다.

글을 넘기자마자 독감과 폐렴으로 계속 골골거렸다.

코로나 후유증(?)인지 독감에 걸리면 꼭 폐렴을 연이어 앓는데 이번에도 내게 독감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폐렴이 문제였다.

폐렴은 보통 '고열'이 나는데, 난 노인성(?) 폐렴에 가까워 열이 나지 않는다고.

의사 선생님께선 열이 나지 않아 덜 위험할 수도 있지만, 초기치료를 놓치고 천식과 함께 심해질 수 있다며 입원을 권유하셨다.


입원 생활이 심심해 글을 적고 싶었지만 

브런치 빈 화면을 봐도, 한글 문서 빈 페이지를 봐도 딱히 적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 '작가의 서랍'을 보게 됐다.

나의 경우, 글감이 떠오르면 브런치 앱을 켠 후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쓴 후 작가의 서랍에 저장을 해두는데 그렇게 쌓인 글이 100개도 넘게 있었다. 2년 전에 임시저장해 둔 글, 사진까지 다 넣어 편집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발행하지 않은 글, 각 종 명언들과 독서 감상문, 단편소설 등. 


순간, 이곳에 쌓인 글들을 지우면 새로운 글이 써질 것 같았다.

거기에 쌓인 글을 지워야지 새로운 글감이 떠오를 것 같았다.

글 목록을 일일이 클릭해 들어간 후 다 읽고 지우기를 무한 반복했다.

링거를 꽂은 팔이 불편해 반나절만에 '작가의 서랍' 속 글이 모두 지울 수 있었다.


말끔하게 비워진 '작가의 서랍'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곧 채우고 싶어졌다.

YES24어플을 켰다. 

유명한 작가님의 초기작품부터, 최근 베스트셀러 소설, 신인작가 당선집 등 소설책 스무 권을 주문했다. 


병원 침대에서 우연히 김영하 작가님의 유튜브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됐다.

작가님은 글을 적기 전에 나름의 절차? 의식이 있다고 하셨다. 손톱깎기처럼 간단한 것들인데 창의인 글쓰기 작업에 돌입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셨다. 아무리 작가님이라도 항상 글이 잘 적히진 않을 테니. 이것저것 간단한 것들을 하면서 주변을 정리하고 글에 집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캐캐묵은 내 글을 몽땅 버린 후 작가님들의 좋은 글들을 읽고 있으니

다가오는 2024년엔 좀 더 좋은 글을 적을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오늘 내가 했던 어떤 것들이,

글에 가까워지는 과정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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