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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Sep 24. 2022

오믈렛 한 그릇

둘째가 다녀갔다.


추석 때는 첫째가 코로나 후유증으로 힘든 와중에 바쁜 일까지 막바지여서 둘째에게 올라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어차피 올라와도 자매가 함께할 시간은 얼굴 잠시 보는 외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추석은 지났지만 언니 코로나 후유증도 거의 가셨고 바쁘게 몰아치던 언니 일도 일단은 마무리되었으니 지금이 바로 추석이라며 신랑은 두고 혼자 다녀갔다.


대게 집이 오늘 휴무일이라 아쉽다며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둘에게 맡겼다. 오믈렛과 스파게티, 고기볶음에 뭔가 따라오는 이름을 잊어버린 음식을 시키고 디저트로 음료수 두 잔도 시켰다. 남편이 도착하고 바로 음식이 도착했다.



먼저 오믈렛 하나를 삼등분하여 먹고 나니 배가 불러 도저히 다른 음식엔 손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음식을 대접하는 둘째를 생각해서 남편도 나도 스파게티 몇 가닥, 고기볶음 한 개씩을 더 집어먹었을 뿐 거의 그대로 남았다. 둘째 역시 다른 음식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세 사람이 조금씩 맛을 봐가며 식사를 하면 좋겠다던 둘째는 엄마 아빠의 식욕이 예전 같지 않은 데 대해 많이 안타까워했음은 물론이다. 


"조금 먹어도 건강만 하면 되지, 나이 들어선 많이 먹는 게 좋은 건 아니야. 딸, 고맙다. 나머진 엄마가 내일 다 먹어 없앨게."





티브이를 켜 두고 둘째와 뒹굴거렸다. 집에선 티브이를 거의 켜지도 않는다는 둘째가 시골집 고치는 프로그램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 프로그램의 등장인물들은 맥가이버들 같았다. 본인들은 숨이 턱턱 막힐 듯 힘들겠지만 보는 사람 눈에는 뚝딱뚝딱 몇 번 만에 뭔가를 새것으로 만들어 놓곤 했으니 말이다.  


코로나 시작되던 해 지은 집 1층 상가가 코로나 끝나가는 만 2년이 넘은 시점에야 세가 나갔다. 마음고생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코로나가 잠잠해지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바깥사돈께선 이번 추석엔 좀 한가하게 다녀가셨는지, 아들 보고 싶어 눈이 짓무를 지경이라시는 어르신은 뵙고 가셨는지, 어머님 건강은 어떠신지...... 자식이라도 다른 속말보다는 가정사에 대한 궁금증이 늘 주를 이룬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면서도 고양이 흉내를 내기 좋아하는 둘째가 깃털 달린 고양이 놀이 기구를 흔들어 보였다.

"이걸로 언니 고양이랑 밤새워 놀 거야, 엄마."

"간지러워."

"12월까진 정신없댔는데 내가 가서 놀아주면 언니도 엄청 좋아할걸."

"그럼, 활력소지 우리 둘째가."


남편이 둘째의 복직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곁들였다.





냉장실에 넣어 두었던 디저트 수박주스와 수박백향과 주스를 꺼내 마셨다. 이가 시리다. 이러다 약 기운에 잠잠해지려던 비염이 도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목구멍이 얼얼해지는 느낌을 오랜만에 즐겼다. 지난여름엔 아이스크림 하나 먹지 않고 잘 지냈다. 대신 시원한 묵밥을 자주 먹었다. 


주스컵 아래 가라앉은 백향과 씨앗을 입안에서 우물거려 골라냈다.

"텃밭에 내년에 심어보려고."


둘째가 질색을 한다.

"엄마, 그러지 마세요. 걍 한 개 사서 심으세요."

"얘는. 백향과 사 먹고 씨앗을 모아도 어쨌든 이렇게 해야 깔끔하게 씨앗을 모을 수 있어요. 식물들의 씨앗들도 동물들의 알처럼 투명한 막에 싸여 있는 것들이 있거든. 이 막을 잘 씻어 두어야 보관하는 동안 곰팡이 같은 것들로부터 안전하단 말씀이야."





언니가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둘째가 일어섰다. 사위가 보낸 소곡주로 불콰해진 남편이 택시를 잡았다. 남편이 둘째를 지하철역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사이 남은 음식들을 정리하고 치웠다. 


식사량이 많이 준 것을 남편도 나도 느낀다. 이런 시기를 나보다 한 세대 전에 맞았던 내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직장 때문에 첫째를 친정에 맡기고 친정 가까이 살던 내게 좋은 것은 대부분 들려 보내시던 두 분 마음을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직장에서 중식을 해결하던 나 역시 많은 음식이 필요치 않아 어머니가 싸 주는 음식을 한사코 밀어내곤 했었다. 


그랬던 나와는 달리 둘째가 내가 싸 주는 샤인 머스캣과 사과, 갓 담근 열무김치 한 종지를 언니에게 전달하기 위해 들고 갔다. 한쪽 어깨엔 노트북과 다른 소지품들이 담긴 가방을 메고 있음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언니한테 열무김치는 오늘 하룻밤 냉장고에 넣지 말고 상온에 두었다 냉장고에 넣으라고 알려주렴."


세상은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지구온난화로 온 땅덩이가 몸살을 앓고 있고 지극히 이기적이다 개인적이라는 젊은이들이 없지 않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더 나은 지구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 딸들이 엄마인 나에 비해 지혜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겠다.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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