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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Sep 14. 2022

잡초 꽃 찬양, 쥐꼬리망초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추석이 지났다. 예전처럼 명절 음식을 만들지 않으니 명절 연휴 끝난 지 이틀째인 오늘은 찬거리가 부족하다.

과일 외에 송편과 전 몇 쪽, 생선 몇 마리가 남았을 뿐이다. 돌아보면 딸들과 모여 앉아 송편도 빚고 전도 지지며 갈비찜에 잡채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기름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이 쑤시긴 하지만 그것이 명절이 주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완연한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더니 엊그제부터 많이 후텁지근하다. 한낮엔 가을로 들어서려다 말고 여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덥기까지 하다. 날씨가 가을과 여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비염 증상도 널을 뛴다. 어제저녁 만든 약밥을 갈무리해 넣고 마트에 다녀왔다. 왕복 30분 거리, 그리 빠르게 걸은 것도 아닌데 집에 오니 땀으로 흠뻑 젖었다. 


문을 열어젖혔다. 바람이 바람이 시원하다. 그런데 이 냄새는 뭐지? 페인트 냄새다. 어디선가 페인트칠을 하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은 '냄새나네' 정도로 넘어갈 냄새에도 나는 금세 숨이 턱턱 막힐 듯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창밖을 살피니 이웃 동 10층 옥상에서 페인트 작업 중이었다. 바람이 이웃 동 쪽에서 우리 동 쪽으로 부는 모양이었다. 공사가 언제쯤 끝날지 알고 싶었다. 땀 씻고 쉬기보다는 공사하는 동안 둘레길이라도 한 바퀴 돌아오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추석 연휴 지나자 마자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든 사람에게 예의가 아닌 듯해 망설여졌다. 그래도 작업이 언제 끝나는지 정도는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 공사하는 분을 불렀다. 큰소리로 불러야 해서 민망했지만 용기를 냈다.


"아저씨."

못 들으셨나 보다. 고개를 숙인 채 일만 열심히 하신다.

"페인트 작업하시는 아저씨."

조금 더 크게 소리 내어 부르자 작업자가 페인트를 칠하다 말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일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페인트 냄새 때문임을 알아차리신 모양이다. 역시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30분 정도 남았어요. 문 닫으세요."

"네."


문을 닫았다. 문을 닫으니 맞바람 치던 때와는 시원하기가 천지 차이다. 땀으로 젖은 김에 둘레길 한 바퀴 돌면서 땀을 더 뺀 다음에 씻으라는 뜻인가 보다.





아파트 화단을 깨끗이 정리한 지 얼마나 됐을까. 깎인 풀들이 다시 새싹을 내기도 하지만 깎인 풀들 사이에서 전에 못 보던 풀들이 새로운 얼굴을 내밀고 있기도 한다.


오늘은 또 전혀 새로운 꽃과 눈을 맞췄다. 이렇게 잎도 제법 매끈한 모양을 갖춘 데다 작기는 하지만 무니까지 있는 꽃을 가진 식물이라면 누군가는 분명 이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 물어보면 금세 알려줄 것이다. 사진 몇 장을 찍는데 마음에 맞게 나오질 않는다. 꽃이 워낙 작은 데다 햇살을 받고 있어 그런지 고운 분홍색이 희끄무레하게 찍힌다.




허리가 아프도록 몇 장을 찍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한 어르신이 내가 찍으려는 꽃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뭘 찍으시나요?"

"이름은 모르지만 작은 꽃이 참 이쁘네요. 한 장 찍어 보려는데 제대로 안 잡히네요."

내가 허리를 펴며 손으로 꽃을 가리켰다. 그러자 어르신이 고개를 숙여 꽃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바로 이름을 알려 주셨다.

"잡초예요 잡초."

언제 잡초 꽃을 보았더냐 싶게 이내 자신의 길을 가는 어르신을 뒤로하고 나도 발길음을 옮겼다.


잡초 꽃 하나에 눈을 주었더니 그 주변에 같은 꽃들이 여기저기 많이도 피어 있었다. 이 꽃들만 넓게 피어도 고운 꽃동산이 되겠다.


우리는 특별할 데 없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일컬어 장삼이사, 갑남을녀 등으로 부르곤 한다. 특별할 데가 왜 없겠는가만 서로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나와 비슷한 정도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출세하여 권력이 있거나 명망 있는 이들에 대해 그러하지 못한 이들이 조금 더 나은 대우와 배려를 해 주기 시작한 데서 나온 것은 아닐까.  목숨은 다 평등하다 하면서도 나부터 나보다 잘났다 생각되는 사람에게 칭찬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하게 되니 말이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줄줄 흐르도록 1시간을 걸었다. 이름을 몰라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 잡초 말고 볼 때마다 그이 참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작은 꽃을 피운 잡초를 생각하며 걸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장삼이사나 갑남을녀이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 누군가의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요 어머니며 사랑스러운 아들이요 딸이며 그 외 붙여줄 이름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이제쯤은 이웃 동 옥상의 페인트 작업도 끝이 났으리라.


집으로 올라와 문을 열었다. 이웃 동 옥상에선 작업 뒷마무리가 한창이었다. 장삼이사와 갑남을녀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순간이 있었다. 추석 연휴 다음날 땡볕 내리쬐는 옥상에 페인트칠 하는 남자, 페인트 작업 언제 끝나느냐고 묻는 이웃 동 여자. 후텁지근하던 바람은 기세가 한 풀 꺾여 시원하고 더 이상 페인트 냄새는 나지 않는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잡초라는 이름의 꽃들은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개의치 않을지도 모른다. 장미와 백합이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잡초라는 이름을 가진 꽃은 생각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꽃은 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꽃을 피웠으니 그뿐이다.


글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식물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름을 알고 계신 브런치 작가님께서 '꽃도 꽃은 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꽃을 피웠으니 그뿐이다.'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름을 알고 싶다는 내 청에 흔쾌히 답을 주셨다. 쥐꼬리망초.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약성 연구도 진행 중인 야생화 중 하나라고도 한다. 이름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다. 잡초라고 알고 있었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쥐꼬리망초 작은 꽃처럼 피어나는 듯했다. 


제목과 내용을 약간씩 수정하며 생각한다. 페인트 냄새를 피해 둘레길을 선택하기를 잘했다. 페인트 냄새가 내게 또 하나의 만남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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