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 Sep 11. 2022

추석 전날, 일상에 감사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이른 아침 30분 정도 걸었다.

날이 날이니만큼 집안에 느끼한 기름 냄새 풍겨도 좋을 날이다.

박대가 익는 동안 전 몇 가지 지지고 불고기 볶아 식혀 조금씩 쌌다.

첫째 네로 향하기 직전 남편이 단지 방앗간에서 송편 두 팩을 샀다.


"배는 깎아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배는 깎아 두면 물기가 빠져 맛없다는 남편이 하는 말이다.

"배도 못 깎아 먹을까 봐 걱정이세요?"

"못 깎아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안 먹을까 봐 그렇지."

"그럼 도착해서 당신이 깎아 주세요. 에이에스 너무 심한 아빠셔."


귀성길 차가 밀린다 싶은 때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첫째란다.

남편이 전화기를 건넨다.

"슬그머니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뭔가 통했나 보네."

"아, 정말?"

"엄마가 전화 안 받았니?"

"아니, 아빠한테 전화드렸어요. 왜 서운해요?"

"서운하긴. 엄마가 전화 안 받아서 아빠한테 했나 그랬지. 집에 드가지 않고 바로 올 거야."

"아냐, 엄마. 5분 정도는 괜찮아요. 얼굴은 보고 가셔야죠."





남편이 말했다.

"아빠한테 할 말 있다고."

"그래? 왜 전화로 하지?"

"다 했어. 아빠를 이해할 나이가 됐다네."

"그래요. 아빠를 이해할 때도 되긴 했지. 이젠 엄마 손길에서 벗어나 스스로 살아가다 보니 가족 부양을 위해 애쓴 아빠를 이해할 때도 되긴 했지."

"그런가 봐요."

"왜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말들 하잖아요. 어려선 엄마만이 최고인 줄 알지만 어느 시기가 되면 아빠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고. 언젠가 둘째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첫째가 현관문을 열었다.

서둘러 들어가 냉동실과 냉장실에 넣을 물건을 분류하여 넣었다.

첫째가 제게 들어온 선물을 나눠 싸 건넸다.

앉지도 않고 물 한 잔도 마시지 않고 화장실에도 들르지 않고 돌아서 나오는데 첫째가 말했다.

"아빠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아빠에게만 전화를 드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뜻이다.


"그럼 두 분 말씀 나누실래요? 먼저 나가 있을까요?"

"벌써 다 나눴어요."

"아빠 용돈 현찰로 드렸구나."

"네, 엄마껜 지난번에 쏴 드렸으니까."

남편이 바지 주머니를 툭툭 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래, 잘했다. 엄마가 안 나눠 드려도 되겠네. 통장에 아직 그대로 있어."

"그러실 것 같았어요."

"어쩐지 아빠가 아까 그러시던데. 배도 깎아다 주어야 먹을 것 같은 딸이라고."

"아빠 최고."





둘째와 통화했다.

"명절 지나고 엄마가 몇 가지 보낼게. 버스에서도 휴게소에서도 식사가 가능하다는데 우리 둘째 그냥 올라오라고 할 걸 그랬네. 명절에 시댁에만 계속 가게 해서 미안해."

"아냐, 엄마. 언니 바쁜 거 끝나면 나도 올라가 볼 거야. 그때 봬도 괜찮아요. 코로나도 조금 더 물러가 있을 테니까 조금 더 안심이지 뭐."


곰탕 2인분 사다가 0.5인분 남기고 남편과 둘이 맛있게 먹었다.

명절 기분 내보겠다고 곰탕을 먹으면서 송편과 전도 함께 올렸다.

곰탕 따라온 김치가 보기엔 맛있게 생겼는데 배추는 간이 덜 들었고 무김치는 무가 맛없는 무다.

장마 끝이라 모든 것이 그러려니 하고 먹었다.


장마뿐인가.

일찍 든 추석에 태풍까지 겹쳤으니 맛이 있네 없네 자체가 사치다.

일상이 감사한 날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직접 나눌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보태야 할 감사한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안 오십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