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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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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Oct 27. 2024

행성어 서점

무용한 것이 정말로 있는가?

#행성어 서점 #김초엽




실로 오랜만에 독후감을 쓴다. 

유튜브나 쇼츠는 그렇게 보면서도

왜 책은 시간이 없다고 멀리했는지.


사실 한 문장만 읽어도 그 답을 알 수 있다.

마음이 너무 소란하여,

문장 하나하나가

단어 하나하나가 박히는 경험을 뒤로 미루고 싶었달까.


언제나 책이 가장 소중한 친구였던 나는

결국 최고의 도피처이자 

대중교통의 동반자로써 책을 집어들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콘서트를 보러 가는 길의 

시간은 어찌나 아까운지

버스에서부터 읽기 시작해서

2번째로 떨어진 실기를 보고 오는 길에 다 끝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다. 


원래 이 책 자체가 단편집임에도,

김초엽 작가 특유의 방법으로 이야기들이 다소 이어져있는데 

끝 부분을 읽을때는 오랜만에 책을 펴서 

이전 이야기들과 연결이 잘 안 되어서 이해가 잘 안된 부분도 있다. 


그래도 쌉싸름한 분위기와 

끝없는 상상력과 

행성간의 모습들과 그 여운은 어디가지 않고

기억에 남아있다.


가장 좋았던 단편은 "행성어 서점"이다.  

물론 여러 파트가 전부 좋아서 포스트잇은 온 사방에 붙어있지만 말이다. ㅎ


대뇌번역모듈이 생겨 행성간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이국적인 경험을 하기위해서

모듈을 방해하게 만들어 둔 행성어 서점에 사람들은 찾아온다. 


그러나 한 여자는 선천적으로 모듈을 심을 수 없고, 

모두가 읽지 못하는 책을 읽고자 언어를 배운다.  

이런 낭만은 정말 어디서 오는 건지. 


무용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유행인 요즘.

실지로 무용하다는 것이 있기는 한 건지 싶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든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해석에 신이 나고, 

다양하게 살 수 있음에 숨이 트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결국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말이다. 

책이 없으면 너무 지루한 삶이다.


ps. 포스트잇을 떼면서

필사하려고 하는 순간

잊혔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면서.. 

그냥 김초엽 작가님의 모든 글이 좋다


책의 묵직한 시작을 알리던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에서도

꽤 멈춰있었다.


글쎄..

안 주고 싶어도 

주게 되고

그것을 앎에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싶으면서도

더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떠나는 것도 사랑인가 고민한다.

찢어지더라도 끝까지 붙들어야 사랑인가도 의문이고

정답은 없겠지만,

모르겠다.


가면을 완벽하게 쓰지 못한다고 배우고

타인에게 보이는 가면이 화려해질수록 자신에게서 멀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뭐,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체성은 복잡하고,

그것들을 나로 인정할지 아닐지가 아닐까.

어차피 타인은 자신에게 비추어 짐작할 뿐 

상대를 영원히 알 수 없다. 


언어와 표현을 믿지 못한다면

그냥 무한한 평행선일 것이다. 


p.30 


"죽음을 앞두고 그 애는 말했어. '파히라, 내가 당신을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나는 팔을 벌려 그 애를 안았어. 끝까지 않고 있었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의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나를 그 애에게서 떼어냈을 때 나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마비되어 있었고 시트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어. 그리고 그 애는 이미 십 분 전 숨을 거둔 상태였지.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

짧은 침묵 끝에 파히라가 덧붙였다. 

"이제는 아니야."


p.40

언니, 저도 언니와 같은 모델을 쓰면 그렇게 예뻐질까요. 저는 보통 눈을 가지고 있는데, 기계 눈을 가지고 싶어요.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것인지, 리지는 확신이 없었다


p.51 -52

  "처음에 우리가 서로를 알아봤을 때는 그저 우습기만 했지. 그쪽 세계의 나도 주목받지 못하는 한심한 연주자에 불과한데, 다른 세계에 있는 나도 소질 없는 멜론 장수라니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수레를 끌고 시장에 나오는 일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일도 좋아하거든. 집에도 오래된 바이올린이 하나 있단다. 가끔은 내가 상인이 되는 대신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지."

  "글쎄, 나도 형편없는 연주자가 되는 대신 물건을 팔았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싶었지."

...

나는 멜론 장수의 말을,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로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면, 한 세계에서는 멜론을 팔고 다른 세계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같은 존재라면, 어느 세계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건 아주 슬픈 일이어야 할 텐데.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정말로 유쾌해 보였다.


p.57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p.63

  솔직히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망해가는 시골 행성에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팔 수 있는 것이 그런 이국적 경험 말고 달리 뭐가 있을까.

  덕분에 이 서점에 들어선 사람들 중 일부는 감탄하면, 신이 나서, 혹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책을 사서 돌아간다. ... 하지만 나는 팔려나간 책들의 내용이 영원히 미지로 남으리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슬펐다


p.71-72

  "저는 전뇌 통역 모듈 부적응자예요. 시술했던 의사가 뭐랬더라, 가끔 이런 불행한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당신 뇌는 통역 모듈을 설치하기에는 언어를 너무 자기 멋대로 다룬다고했던가? 모듈과 불화를 일으킨다나요. 덕분에 은하계 여행은 평생 꿈도 못 꿨어요. 다른 사람들은 통역 모듈만 설치하고 우주 어느 행성으로든 떠나면 되는데, 저는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언어 사이를 무작정 헤매야 하는 거잖아요. 무서웠어요."


p.72

  모듈도 침범하지 못한 뇌라니. 대단한다는 생각을 나는 속으로만 했다. 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 이곳 행성어 서점의 존재를 알게 됐죠. 그제야 알았어요. 저는 앞으로도 수만 개의 언어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수만 개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조차 읽지 못한 책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눈이 반짝이며 빛났다. 여자는 이 해석할 수 없는 책들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결심했다고 한다. 언젠가 은하계 반대편에 있는 이곳에 와서, 모듈을 설치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책을 읽겠다고. 


p.73

  그날 저녁 서점의 문을 닫고 나는 서가 앞에 섰다. 기분이 좋았고 춤을 추고 싶었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더라도, 나는 그를 만나서 기뻤다. 

  이곳 행성에 수십 년간 살았던 할머니가 쓴 수필집과, 서점의 밤과 낮이 담긴 그림책과, 전뇌 테러를 다룬 서스펜스 소설을 서가에서 골랐다. 먼지를 털어내고 종이 가방에 책을 담고 리본을 묶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두 번째 독자를 만날 책들이었다. 


p.81-82

  "너는 소망이 아니라 실제로 도래할 미래를 보여주는 거였어. 2030년이 가까워지면서 예언 대신 실제로 이루어진 것들이 너를 구성했어. 소망과의 간극, 현실과 기대의 격차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지. 그래서 이제는 네가 2030년 그 자체가 된 거야."

  그제야 내가 진짜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나는 막연하고 아득한 소망이 아니었다. 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요동치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덧씌워 보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달랐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가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이끄는 자가 되었다가 밀려나는 자가 되었다. 소망의 표면 아래 진짜 미래의 모습이 채워졌다. 나는 그 간극을 감당할 수 없던 거였다. 


p.83

  그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볼지 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진짜 나의 얼굴은 나를 예언했던 사람들이나 나를 전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이 바로 나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p.113

  살해당할 운명에서 소년은 본능적으로 도망쳤지만 이곳에서 또 다른 죽음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것은 개체중심적 존재들만이 경험하는 모순이다. 그러나 소년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그 삶 역시 풍부한 감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p.118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햇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p.136-7

  "어차피 가면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르지요. 생각해보세요. 저는 지금 당신을 향해 웃고 있을가요? 아니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게 제 진심일까요?"

  소은은 말문이 막혔다. 

  "가면이 우리에게 온 이후로 우리는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내는 대신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시몬 사람들이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이유랍니다."

...

  "사람들의 가면 뒤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여자가 반문했다. 소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물었다. 

  "저도 언젠가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도 있을까요?"

  "원한다면요. 하지만 보이는 표정에 이미 익숙해졌다면, 그것을 감추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은은 아마도 가면 뒤에서 여자가 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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