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삶은 축복이다.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특별한 존재다. 숨을 쉬고,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고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러나 삶이 늘 축복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들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기대와 현실이 어긋날 때, 우리가 믿어온 것들이 흔들릴 때, 불안과 갈등이 찾아온다. 그럴 때 삶은 깊은 고민과 성찰을 요구하는 여정이 된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더 힘들다고 느낀다.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마음은 더 불안하다. 원하는 걸 하지 못해서, 기대한 삶이 아니라서, 스스로에게 실망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갈등 속에서 특히나 괴로워한다.
가족, 친구, 연인처럼 친밀한 관계일수록 서로에 대한 기대가 크고 실망 역시 쉽게 따라온다. 익숙한 관계에서는 작은 차이도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사소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점차 커지며 서로를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문제의 원인은 상대에게만 있지 않았다. 경험상 모든 갈등의 기저에는 ‘내가 맞다’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컨대 여행할 때 어떤 이는 여유롭게 머물며 순간을 즐기는 것이 맞다고 믿고, 어떤 이는 발길 닿는 곳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여행에 정해진 방식은 없다. 하지만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서운함이 쌓이기 마련이다.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수록 불만은 커진다. 중요한 건 방식이 아니라, 내가 그 차이를 감수할 수 있는지 혹은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문제다.
판단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주변을 분석하고 상황을 평가하며 적절한 결정을 내린다. ‘내가 옳다’는 판단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확신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그 생각이 지나치면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옳다는 확신 속에서 상대를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면 우리는 점점 좁은 시야 속에 갇힌다. 그리고 그 확신이 주는 우월감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이에 관계는 더 멀어진다.
문제는 언제나 내 안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이 이상하다고 여기고, 대부분의 문제가 그들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등은 ‘내 방식대로 되어야 한다’는 기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입장에서 해석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내 인생이니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면 무조건 내가 맞아서 좋을 건 없다. 애초부터 세상에는 절대적인 맞고 틀린 것이 없었다. 갈등이 생기는 건 정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정답을 가리려 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거나, 눈앞의 상황을 왜곡해서 해석할 때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갈등의 주체는 나일 수밖에 없다. '탓'의 비율이 다를 수는 있어도, 내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하나의 관계가 끝나면 우리는 자연스레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된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고 후회하기보다는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을 더욱 평안하게 만든다. ‘내가 맞다’라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대부분의 인간관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설령 그게 그 사람과 멀어지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차라리 그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 멀어질 관계는 결국 어떡해서든 멀어지게 되어 있다.
인연은 단순히 떠나고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새로운 관계가 찾아오기도 하고, 지나간 인연이 다시금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기도 한다. 성장할수록 맺는 관계는 이전보다 더 성숙하고 조화로워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과거의 인연을 돌아보게 되고, 그들이 남긴 흔적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과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관계는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물을 본다.”
– 아나이스 닌
누군가와의 관계가 힘들다면,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내 기준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중요하다. 내 방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관계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맞다’는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삶의 난이도는 낮아지고 마음에 평온이 깃든다. 스스로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없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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