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4
제주도에서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해 준 아내 지인의 어머님은 마라탕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아내 지인의 어머님은 가게로 밥 먹으러 오라며 수차례 얘길 했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걸 꺼려하는 우리 부부가 밥값을 계산하려고 하면 극구 말릴 걸 알기에 선뜻 발걸음하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한 번은 꼭 가야겠단 마음이 들 만큼 계속 오라고 하셔서 마지못해 들르게 되었다.
마라탕은 유독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지 가게 안의 손님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다.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는 학생도 있었고 숙제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평소 출퇴근 길에 보이는 마라탕 집에도 학생들이 어슬렁거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마라탕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들만의 문화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도 했고 노을이 지고 있어서 맥주 생각이 나는 참이었는데 마침 어머님이 맥주도 한 잔 하라는 말씀을 건네셨다. 안주로 내어주신 건 마라샹궈와 꿔바로우였다. 마라샹궈는 마라탕의 볶음 버전이었고 꿔바로우는 마라탕 가게에서 파는 탕수육 같았다. 한입 먹자마자 '와 맛있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어도 먹을수록 중독되는 맛이었다.
아내 지인은 아내와 비슷한 시기에 둘째를 낳았고, 그 아이를 자주 돌보던 어머님은 현이에게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셨다. 현이를 볼 때마다 어쩜 이리 순하냐며 웃으시더니 문득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결혼 참 잘했네."
다소 뜬금없는 발언이었다. 어머님과는 스치듯 마주친 게 전부였는데 생각 이상으로 우리를 눈여겨보신 것 같았다. 사실 현이가 순하다는 얘기만큼이나 우리 부부가 보기 좋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툭 던져진 그 한마디가 유난히도 따뜻하게 들렸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마라샹궈와 꿔바로우, 거기에 곁들인 칭타오의 맛까지 괜히 더 깊어지는 듯했다.
배관 막힌 화장실에서 현이를 씻기는 일은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틀만 지나면 다른 숙소로 옮긴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조금만 더 버티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놈의 '마지막'이라는 건 알게 모르게 사람 마음을 조종하는지, 미루기만 하던 조깅이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현이를 재우는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가 냅다 뛰기 시작했다. 육지를 옮겨놓은 듯한 도심을 벗어나고 싶어 어두운 쪽으로 무작정 향했다. 그러나 부실한 체력 탓에 마음을 접고 돌아서는 찰나에 어떤 골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도를 켜서 확인해보니 숙소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내심 찾고 있던 돌담길도 보이길래 지체할 거 없이 방향을 틀었다.
일부러 어둡고 외진 곳을 골라 달려왔건만 막상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오히려 겁이 났다. 내가 상상하던 ‘그나마 제주도 느낌 나는’ 장소인 건 분명했지만, 가로등 하나 없는 그 길은 누가 납치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밤길이 무섭다니, 그런 감정은 ‘전설의 고향’이나 ‘이야기 속으로’를 보던 어린 시절에나 겪을 줄 알았다.
‘여기서 납치라도 당하면 우리 가족은 누가 책임지지?’
‘사람 좀 지나가라 제발.’
그렇게 속으로 되뇌고 있던 찰나에 맞은편에서 정말 사람이 걸어왔다. 그런데 이번엔 또 ‘혹시 괴한이면 어쩌지?’ 하며 경계부터 하고 보는 내 모습이 참 웃기기도 하고 모순적이기도 했다.
어둡고 음침한 골목을 지나고 나니 낯선 숙소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나온 게 후회됐다. 막연한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바닥난 체력을 끌어올려 최대한 빠르게 숙소로 달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에서는 어디가 불편한지 잠을 못 자고 울며 떼쓰는 현이를 달래느라 아내가 애를 먹고 있었다. 괜히 나갔다는 자책감과 그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돌아와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복잡하게 얽혔다.
평소 잘자던 현이는 그날따라 1시간가량 울어댔다. 숙소가 불편해서였을까. 내일 모레부터는 더 좋은 숙소에서 묵는다는 사실을 애써 떠올렸다. 굳이 감수하지 않아도 될 불편함을 감내하며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아내에게 늦게나마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며 숙소를 옮기자고 제안한 건 곱씹어볼수록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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