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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많은데, 친구가 없네요

by 달보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공 하나를 두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축구는 어릴 때부터 싫어했다. 그나마 1:1로 겨룰 수 있는 배드민턴은 괜찮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수영을 가장 좋아한다. 기성세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훈계랍시고 던지는 말일수록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 나와 정반대 성향의 친구가 있었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축구를 특히 좋아했는데 일주일에 세 번씩 조기축구를 나갈 정도였다. 그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조기축구에서 만난 이들과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기성세대와 유독 잘 어울렸고, 하는 말마다 어디선가 들어본 '어른말' 같았다.


뭐 하나 맞는 게 없어 보이는 그와는 한때 가장 친했었다. 계모임 멤버들 사이에서도 유독 붙어 다녔고, 서로의 부모님을 챙길 정도로 가까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에게서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본인이 직접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와 관련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거칠다는 점이었다. 특히 식당에서 주문할 때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거 저번엔 서비스로 주던데 이번엔 왜 안 줘요?"


경상도 사투리가 본래 직설적이고 거칠긴 해도 그의 톤은 유난히 날이 서 있었다. 돈을 지불하는 입장에만 서면 그는 무례한 인간으로 변했다. 본인은 손님의 권리를 주장한 것뿐이라고 둘러대지만,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날이 갈수록 ‘긍정’이란 개념을 긍정하고 있는 내게 그의 존재는 불순물 같았다. 그는 친구들에겐 다정했지만 상황에 따라 일종의 악인을 자처했다. 예전부터 나는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다. 하필 그런 이가 내 죽마고우가 되었단 사실이 메스꺼웠다.


사람들이 가까운 관계가 멀어지게 된 사연을 이야기할 때 흔히 '사소한 다툼'을 언급하곤 한다. 우리 사이엔 그런 것조차 없었다. 아주 조용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별다른 갈등도 없었기에 적대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같은 친구들을 공유하고 있는 남남이 되었다. 마치 지구를 사이에 둔 태양과 달처럼, 같은 궤도를 돌고 있지만 서로를 비추지 않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그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 사실이 드러났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그와 영영 멀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편하다. 앞으로 그와 어떻게 지내게 될지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친한 친구 같은 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필요 이상으로 가까운 관계는 피곤하고 부담스럽다. 사이가 돈독해질수록 득보단 실이 많은 것 같았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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