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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엔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비움으로써 비로소 알게 된 것

by 달보


우리 집엔 방이 두 개 있었다. 큰 방은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함께 썼고 나머지 작은 방은 내가 혼자 썼다. 그땐 어려서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마침 게임에 푹 빠져 있던 시기였기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어 군대에 입대했고, 첫 휴가를 나와 보니 내가 쓰던 방은 아버지가 사용하고 있었다. 그제야 철이 들었는지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무렵부터 아버지에게 존댓말을 쓰기도 했다. 그동안 미안한 마음도, 고마운 마음도 없이 혼자 방을 차지했던 게 뒤늦게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방을 다시 달라고 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제대 후 나는 여러 면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염원과 함께 새로운 의지도 생겨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나만의 조용한 공간이 절실해졌다. 마치 예전에 게임에 몰두했을 때처럼.


아르바이트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며 공부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보증금과 월세까지 감당할 형편은 되지 않았다. 복학 후 첫 학기엔 무언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몰입했고, 운 좋게 과탑을 하며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 기회를 살려 부모님께 보증금만 내줄 수 없겠냐며, 그럼 월세는 어떻게든 혼자 감당할테니 혼자 살겠다며 집을 나왔다. 그렇게, 나의 첫 자취 생활이 시작됐다.


처음 자취를 시작한 곳은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2만 원짜리 원룸이었다. 몇 년간 그곳에서 잘 지내다가, 나중엔 방 세 개에 주방과 베란다까지 딸린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보증금은 동일하게 200만 원이었고 월세는 30만 원으로 더 저렴했다. 다만 옵션이 전혀 없어서 필요한 가구는 직접 마련해야 했다.


내게 필요한 건 책상과 침대뿐이었다. 다른 건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서 작은 가구들을 얻을 일이 잦아졌다. 마침 다니던 곳이 인테리어 회사인지라 현장에서 버려지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쓸만해 보이면 회사 차에 실어 집으로 가져왔다. 당시엔 1.5톤 트럭을 직접 운전하던 시기였기에 운반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책상과 침대뿐이던 공간에 하나둘씩 가구가 채워졌다.


책상과 침대만 있던 방이 점점 채워지는 게 묘하게 뿌듯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자거나 컴퓨터하는 게 전부였으니, 집에 들인 가구 위엔 온갖 잡동사니만 쌓여갔다. 쓰지 않는 가구들 위로 쌓여가는 먼지가 점점 부담스러웠다. 자주 손이 가는 물건이라면 사정이 달랐을 텐데, 잘 쓰지도 않는 것들 때문에 방이 지저분해지고 청소도 번거로워지니 불편함만 커졌다.


결국 침대와 책상을 제외한 물건들을 도로 내다버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그 과정은 속이 후련했다. 물리적으로는 오래된 가구 몇 개를 치운 것뿐이지만, 마음속 무언가도 함께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버릴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미니멀 라이프를 어쩌다 한 번씩 접하게 되면 깔끔하고 좋아보이긴 했어도, 그런 삶의 방식을 추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물건을 하나둘씩 정리하다 보니, 사람들이 왜 그런 단출한 환경을 꾸려가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여파로 유부남이 된 지금도 내 방에는 여전히 책상과 침대 두 가지만 있다. 꽤 넓은 책상 위엔 노트북 하나만 놓여 있다. 그 외의 것들은 될 수 있으면 올려두지 않는다. 그게 글쓰기에도 좋고, 마음 정리에도 좋다는 걸 여러 번 체감해왔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다른 사람에게 권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혹시 마음이 갑갑한 사람이 있다면 방부터 한 번 정리해보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어질 것 같긴 하다. 생각보다 주변 환경은 우리의 마음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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