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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을 삼키지 않는 너를 보며

by 달보


어릴 때 배부른데도 자꾸만 더 먹으라며, 안 먹고 싶은데 한숟갈이라도 뜨라며 거듭 강요하는 어른들의 말이 듣기 싫었다. 대체 내 의사는 안 중에도 없는 건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하니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밥 한숟갈 고이 떠서 아이 입으로 가져갔을 때 바다라도 집어삼킬듯 입을 쩍 벌리며 받아먹을 때만큼 기분 좋을 때가 없고, 인상 찌푸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거부할 때만큼 착잡할 때가 없었다.


입을 크게 벌리며 받아먹어도 삼키는 법을 까먹기라도 한 것처럼 한가득 입에 머금고 있을 때도 있었다. 맛이 없는건지, 안 씹혀서 삼키기 어려운 건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막상 아이를 키워보면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다 안다던데, 나는 워낙 둔해서인지 말 못하는 아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직도 많이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아침 먹을 시간이 되더니 기계처럼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아이를 아기의자에 앉히고 이유식을 데웠다. 반찬 담긴 그릇을 데우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미니 선풍기로 식히는 동안에도 빨리 밥 달라며 떼를 쓰길래 잘 먹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네 숟갈은 잘 받아먹더니 이내 입을 앙 다문 채 밥을 머금기 시작했다. 새로 밥을 떠서 주면 입은 벌리는데, 그 안에는 이미 음식물이 가득 차 있었다. 맛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그냥 안 씹고 싶은 건지 당최 알 길이 없었다. 아이의 눈빛을 지그시 들여다봐도 의중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혹시 몰라 열을 재봤더니 체온은 정상이었다. 체온계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에게 떨어져도 괜찮은 체온계 덮개를 손에 쥐어주었다. 만질 것도 누를 것도 없는 심심한 플라스틱 조각이 뭐가 그리 신기한지 아이는 요리조리 굴려가며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입에 머금고 있던 걸 어느새 다 삼킨 것 같았다. 미리 이유식을 떠놓은 숟가락을 갖다댔더니 넙죽 받아먹었다. 씹기도 잘 씹고 삼키기도 잘 삼켰다. 달라진 거라곤 체온계 커버를 갖고 노는 것뿐인데도 한참 배고팠던 아이처럼 밥을 잘 먹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불편한 감정에 얽매이면 밥맛이 떨어지고, 그런 감정을 묵살할 만한 다른 무언가에 관심을 두면 안 먹고 싶던 밥도 술술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고.


불현듯 든 생각이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을 것 같았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갑자기 결혼 안하냐 취업 안하냐 잔소리하면 입맛이 뚝 떨어지는 것처럼. 밥 생각이 없어도 좋아하는 예능을 보며 몇 숟갈 뜨다보면 밥 한 공기 정도는 뚝딱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관심을 다른 데 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장난감 하나 쥐어주니 순식간에 밥을 먹어치우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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